조금은 우쭐하고 싶다. 사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Why Fish Don't Exist)> 제목을 봤을 때, 이 책의 메시지에 대한 감이 왔다. 하지만 이 책은 확실히 '못 보던 책'은 맞다. 소설이 아닌 에세이인데도, 이런 식의 구성과 반전이 담긴 책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에세이인데도 탄탄한 논문 한 편을 읽은 듯했다. 막판 반전이 모든 것을 뒤집었다고들 하지만 책을 잘 뜯어보면 힌트는 곳곳에 숨어 있다. 삽화도 힌트다.
그 감의 배경은 엄마가 늘 나에게 해준 말 때문이다. 나도 모르게 사람들에게, 나에게 딱지를 붙이며 힘겹게 살아갈 때마다 엄마는"분별하지 말아라"는 말을 수시로 건넸다. 남들이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 가에 관심을 갖지 말고, 나도 마찬가지로 함부로 남을 규정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만의 얄팍한 분류 기준에 누군가를 가두려는 행위는 가장 중요한 걸 잃을 수 있는 짓이라고. 나의 이 같은 매일매일의 철학적 되새김질을, 이 책을 읽고 과학적인 카타르시스로 승화시킬 수 있었다.
이 책은 작가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란 생물 분류학자의 삶의 태도에 이끌려 그를 깊이 파고들었으나 알고 보니 그는 우생학의 강력한 지지자였고 그의 분류 역시 틀렸다는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내용이다. 제목에 나오듯 어류, 물고기라는 명칭은 철저히 계층 사다리 맨 위를 딛고 선 '사람'이 편의상 만들어낸 분류였다. 물고기들이 어류로 뭉뚱그려지기엔 너무나 많은 다양성과 복잡성을 지니고 있다. 물고기 입장에서 상상해보자면, 땅 위에 딛고 사는 동물들을 모두 '지(地)류'라고 묶어내는 일과 비슷할 것이다.
궁극적으로 작가는 우열을 나누는 기준의 무의미함과 그 위험성에 대해 말한다. 변이와 다양성, 이 점이 <종의 기원>을 쓴 진화론자 찰스 다윈이 세상에 인식시키려 애써 온 관점이었으나 우생학자들은 진화론을 과학적 외피로 삼아 자신들의 영역을 공고히 구축해냈다. 나치의 홀로코스트 이후, 우생학은 서서히 가짜 과학 요소가 많다는 점이 인식되며 쇠퇴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우린 여전히 우생학의 시대에 살고 있다. 피부가 희고 검다는 건 누가 판단하는가. 사회적 발명품에 지나지 않는 기준들이 여전히 우리 자신들을 서열화 중이다. 그 무의미한 기준을 당신과 내가 언제쯤 부술 수 있을까. 오늘도 "분별하지 말라"는 엄마의 뜻을 곱씹으며 내 속의 박혀 있던 편견의 선을 지워보는 중이다.
p.227
"별이나 무한의 관점, 완벽함에 대한 우생학적 비전의 관점에선 한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지 않아 보일지도 모른다. 금세 사라질 점 위의 점 위의 점일 뿐이다. 버지니아주 린치버그에 있는 한 아파트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 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은 의미일 수 있다. 어머니를 대신해주는 존재, 웃음의 원천, 한 사람이 가장 어두운 세월에서 살아남게 해주는 근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