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여긴 다른 건 몰라도 펍 문화와 맥주가 너무 좋아요. 겨울에는 날씨도 흐리고 금방 어두워져서 사람들이 펍 안에만 있어요. 펍에서 공연을 자주 하는데 사람들이 술 마시다가도 공연이 시작되면 다들 조용하게 음악만 들어요. 그리고 음악이 끝나면 태연하게 다시 대화를 이어가요.
가끔 아영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나는 특히 아일랜드 펍 이야기를 좋아했다. 아일랜드의 도시든 시골이든 어딜 가나 볼 수 있는 펍은 각종 모임과 다양한 대화가 오가는 커뮤니티이자 뮤지션들의 라이브 공연을 볼 수 있는 장소이기도 했다. 나는 자그마한 펍에 앉아 음악을 듣는 아영을 상상했다. 그리고 어느새 그 장면 속에는 아영의 옆자리에 앉아 맥주를 홀짝이는 내가 있었다.
하루하루 아일랜드에 대한 열망이 깊어지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남편과 함께 저녁을 먹다가 불쑥 말을 꺼냈다. 관리비 명세서와 쑥국과 짧아진 아이들의 옷 이야기에서 껑충 다른 세계로 점프하듯이.
“아일랜드에 가고 싶어.”
“돈 있어?”
“없지.”
잠깐의 정적.
“뭐, 이제 아영 씨가 와도 된대?”
남편이 되물었다. 아일랜드행을 그래도 마음먹을 수 있던 이유 중 하나는 숙박비 고민을 덜 수 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 왕복 티켓값만 한 사람당 백육십만 원. 거기에 숙박비용까지 합치면 여행 떠날 결심이 수그러들었다. 숙박은 당연히 아영의 집에서라고 편하게 생각했던 나는 남편과의 대화를 통해 그것이 얼마나 안일한 생각인지 깨달았다.
“아직 말은 없는데...”
“아영 씨 언니도 괜찮대?”
그랬다. 아영은 두 아이와 사는 것만이 아니었다. 언니네 커플과 함께 단독 주택에 살고 있었다. 1층은 언니네 커플. 2층에는 아영과 두 아이. 만약 내가 그 집에 머무른다면 ‘2층의 두 방 중 한 군데에 머물지 않을까?’ 하는 해맑은 짐작이었다. 하지만 아영은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딱 한번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제가 아일랜드에 자리 좀 잡으면 놀러 오세요.
나는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고 말할 때보다 한층 더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니, 아직 놀러 오란 이야기는 없는데.”
남편은 웃었다.
“초대하지 않았는데 가면 완전 불청객이겠는데.”
남편은 내가 서프라이즈로 아영의 집에 방문한 상황을 연기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과묵한 영업사원인 그는 나를 놀릴 때면 제법 재수 없는 희극인으로 변모하곤 했다.
“룩앤미! 아영 씨 내가 왔어요. 애들도 데리고 왔지요. 짜잔. 세 명이나 있지요.”
오, 쉣, 겟아웃! 남편은 가상의 아영, 아영의 언니, 언니의 애인까지. 1인 3역의 연기를 펼쳤다. 그는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고 나는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따라 웃었지만 솔직히 짜증이 났다. 체육관에서 배운 암바 기술로 남편을 단번에 제압하고 싶었다. 잠시 기절시킨 후 통장과 도장을 갈취해 아일랜드로 날으고 싶었다.
정리하자면, 아일랜드행은 나의 의지만 있어선 어려웠다. 아영의 초대가 있어야만 가뿐해지는 일이었다. 나는 아영의 초대를 기다렸다. 하지만 평소에도 우리는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는 사이가 아니었다.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아영에게 ‘사진 자주 보내요.’, ‘인스타그램도 자주 해주세요.’라고 당부했지만, SNS와 친하지 않았던 사람이 갑자기 바뀔 리 없었다.
아영은 아무리 기분이 좋아도 지킬 수 없는 약속은 하지 않는 냉철한 사람이기도 했다. 꽤 낭만적인 약속인 ‘우리 꼭 다시 만나요.’ 같은 말은 일절 하지 않는 사람. ‘보고 싶다’는 말도 아꼈다. 나는 그런 아영을 이해하면서도 내심 아영이 먼저 만나고 싶다고, 만나자고 말하길 애타게 바랐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메시지가 온 것이다.
[저 취업 비자받으면, 아일랜드 놀러 와요!]
‘취업 비자받으면’이라는 강력한 단서가 붙긴 했지만, 드디어 정식으로 아일랜드 초대 의사를 밝힌 것이다. 그동안 적응하기 위해 애쓰는 아영의 마음이 혹여 흔들릴까 봐, 보고 싶다는 말도 삼갔던 나는 입꼬리가 쭈욱 올라갔다.
이제 아영은 아일랜드 생활에 적응한 걸까. 누군가를 보고 싶을 만큼 마음의 여유가 생긴 걸까. 마치 이 말만 기다린 사람처럼 기뻤다. 동시에 내게 없는 것을 떠올렸다. 비루한 개인 통장 잔고가 가장 먼저, 언제 다 갚을지 감감한 아파트 대출금, 올망졸망한 세 아이의 모습이 연이어 생각났다. 세 가지는 내가 부지런히 사는 이유인 동시에 쉽게 멀리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시원하게 당시 통장의 잔고를 공개하자면 딱 백만 원이 있었다. 나는 항상 개인 통장에 이백만 원 이상 있는 삶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백만 원은 나의 것이고 나머지 백만 원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것으로 뒀다. 친구들이 급하게 돈이 필요하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근사하고 비싼 식당에서 시원하게 한턱내고 싶을 때 남편의 눈치를 보지 않고 돈을 쓰고 싶었다. 그러니까 비상금인 셈이다.
착잡한 마음으로 은행 앱의 잔고를 쳐다봤다. 아일랜드 행 비행기 편도 티켓만 끊을 수 있는 금액. 그때 메일함에 반가운 소식이 들어왔다. 인세 보고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