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두 권의 에세이를 낸 작가다. 출판사에선 3개월마다 인세 내역을 메일로 보내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메일을 열었다. 그리고 첨부된 인세 내역을 찬찬히 살펴본 나는 지그시 입술을 깨물었다. 일억 삼천 오백 육십칠만 원... 이면 좋겠지만 숫자는 단출했다.
‘이걸로는 아일랜드 못 가겠는데.’
문득 두 번째 책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 출간 직전에 봤던 타로 점이 생각났다. 타로샘은 두 번째 책이 물을 건널 것 같다고 했다.
“해외 진출하는 걸까요? 책 판권이 팔리려나?”
들뜬 목소리로 되물었다. ‘물을 건넌다’는 말이 불러오는 희망은 엄청났다. 그만 그렇게 믿고 싶을 만큼. 해외 진출. 네 글자를 떠올리면 구름 위를 걷는 것만 같았다. 중국어와 일본어로 번역된 책 <우울한 엄마들의 살롱>을 상상했다. 표지는 제법 이국적인 냄새가 풍길 것이다. 그렇게 아시아 진출, 북미와 유럽, 아프리카까지 진출할 수 있다면 어떨까. 내 영혼은 이미 책으로 만든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고 있었다.
타로를 보고 온 날, 남편에게 호들갑을 떨며 말했다. 오늘 내가 타로를 봤는데 말이야. 글쎄, 책이 물을 건넌다네? 솔직히, 한국 엄마들만 우울한 거 아니잖아? 동아시아 쪽에선 좀 먹힐 만도 하거든. 대만, 중국, 일본 한번 노려본다! 흥분에 들떠 랩 하듯이 말을 쏟아내는 나에게 남편은 차분한 한 방을 날렸다.
“어디 해외에만 물이 있나...”
“뭔 소리야.”
“낙동강에도 물이 있고, 한강에도 물이 있는데.”
매일 일희일비하는 예민한 창작자를 반려자로 둔 남편은 침착함, 무던함과 벗하며 살았다. 그는 나에게 묵직한 예방 주사를 꾹 놓아주었다. ‘설레발 금지’라는 이름의 백신이었다. 그는 나의 너무 높은 기대가 불러올 더 큰 좌절을 염려했다. 사람의 마음이 참 간사했다. 책을 쓸 때만 해도 ‘세상에 무사히만 나와준다면 땡큐야.’라고 말하고 다녔건만 책이 나오자 ‘그래도 잘 팔리면 좋겠다’라고 간절히 바랐다. 5쇄 정도는 너끈히 팔리길 바랐다.
하지만 인터넷 서점 판매 지수만 봐도 어려울 것이라 짐작할 수 있었다. (수줍게 밝히자면 2쇄는 찍었다. 하하) 물론 극적인 반전을 꿈꿔볼 수도 있었다. 유퀴즈에 출연해서 책을 머리에 얹고 관절 꺾는 춤을 추거나, 책방을 운영하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적극 추천 리뷰를 써준다면! 아니야, 그걸로도 부족하다! 블랙핑크, 방탄소년단, NCT, 아이브가 #우울한엄마들의살롱 #애매한재능 이렇게 책 제목을 해시태그하고, 눈물셀카 인증샷을 올려주면 가능할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른다면 아일랜드로 가뿐하게 떠날 수 있을 텐데.
세상에 필요한 책을 썼다는 자부심은 천천히 모습을 감추고, ‘착각’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책이 잘 팔릴 거라는 건 순전히 나의 착각이었는지도. 그즈음 무기력이 몸을 빨아들였다. ‘출간 블루’라고 부르는 우울감이 몸을 장악한 것이다. 나는 출간 블루가 기대만큼 책이 잘 안 팔리는 작가들의 병임을 직감했다. 하지만 출간 후의 약속을 하나씩 수행해야 했다.
그중 하나가 일주일에 한 번씩 7주 동안 도서관에 가서 글쓰기 수업을 하는 거였다. 아침마다 없는 힘을 짤짤 쥐어짜내 도서관으로 향했다. 무엇보다 수강생들 앞에서 글쓰기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참 힘들었다. ‘함께 글 써요’라는 말하는 것은 민망한 거짓말이었다. 글쓰기 수업에서 글쓰기 동기 부여도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수강생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당시 나는 누군가를 독려할 상태가 아니었다. 입으로는 ‘내 삶을 해석하는 짜릿함’을 떠들면서도 속으로는 비관에 젖어 있었다. 7주의 수업을 모두 끝내고 나는 ‘휴업’을 선언했다.
아영을 만나기 위해선 아일랜드에 가야 했고, 아일랜드에 가기 위해선 돈이 필요했고, 돈을 마련하려면 책을 팔아야 했다. 이 불행의 버뮤다 삼각지대에 빠져 있을 때, 마음속에 진실의 목소리가 공명했다.
‘그러니까 수미야, 처음부터 꿈꾸지 말았어야지. 꿈꾸지 않으면 좌절할 일도 없잖아.’
지붕에 닿는 게 목표라면 나는 황당하게 짧은 사다리를 가진 사람처럼 느껴졌다. 마치 아일랜드가 환상의 세계, 어디에도 없는 섬처럼 느껴졌다. 어쨌든 나는 갈 수 없는 곳이니까. 뉴스나 책에서 아일랜드에 대한 뉴스, 소식을 볼 때마다 마음이 따끔거렸다. 아영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영의 열망과 꿈을 누구도 쉽게 이해해 주지 못했을 것이라는 고독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과거 아영의 모습이 내게 겹치는 느낌이었다. 자신의 간절한 꿈이 ‘철없는 짓’, ‘현실을 모르니까 하는 말’로 비칠 때마다 아영은 얼마나 움츠러들었을까. 뒤늦게 아영을 이해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럴수록 아영이 참 보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