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에 가자

by 수미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아일랜드에서 먹고 마시고 기념품 정도는 살 여비 마련하기. 돌고 돌아 선택한 방법은 결국 글쓰기였다. 나는 구독료를 받고 글을 전송해 주는 메일링 서비스를 계획했다. 메일링 서비스로 학자금대출을 너끈히 해결했다는 한 작가를 흐뭇하게 떠올리며.


물론 메일링 구독 서비스를 시작하기 위해선 강력한 전제 조건이 있었다. 구독자가 있어야 했다. 물론 내가 나에게 구독료를 지불하고, ‘나에게 메일 쓰기’를 통해 메일링 서비스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 메일링 서비스의 제목은 ‘천년의 고독’이 될 것이다.) 세 달 연재의 목표금액은 이백만 원. 제목은 쉽게 정했다. 직설적이고 명료하게 《아일랜드에 가자》로. 구독자의 흥미와 다양한 재미를 위해 코너도 구성했다. 아일랜드에 가기 위한 좌충우돌을 담은 에세이, 수영 일기, 편애하는 것들의 소개, 단편 소설까지 준비했다.


의지의 반대편에는 불안과 걱정도 있었다. 나는 메일링 서비스를 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다. 형식이나 방법 등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결정적으로 연재를 위해 비축해 둔 글도 없었다. 다시 머뭇거려졌다. 이렇게 생각만 많고 주춤거릴 때는 역시 서동요 기법이 최고였다. 마치 쿠팡에 가겠다는 결심이 서지 않을 때 쿠팡에 갈 거라고 앵무새처럼 떠들었던 것처럼 다시 내용만 바꿔 떠들기 시작했다.


“아일랜드 여비 모으려고 메일링 서비스할 거야!”


언제나 그렇듯 친구와 가족들은 말리지 않았다. 또 재미난 구경을 하겠구나 하는 기대마저 보였다.


“그래? 한번 해봐!”

“좋은 방법이야.”


친구들은 마치 인생의 캐치프라이즈가 나이키 광고인 것처럼 말했다. Just Do It! 그렇게 나의 첫 메일링 서비스, 《아일랜드에 가자》가 시작되었다. 이웃에게 의뢰해 홍보용 포스터도 만들었다. 한 달에 글 8편, 구독료는 만원이었다. 인스타그램에 구독자 모집을 글을 올린 나는 신청자의 수를 계속 확인하고 싶었다. 마치 포춘쿠키를 까보는 설렘이었다. 반나절이 지났을 때 신청자는 모두 8명이었다.


“8명이라니 솔직히 한 명도 신청 안 할 줄 알았는데”

함께 신청자의 숫자를 확인한 딸이 말했다. 신청자가 없을 거라는 예상은 너무한 것 아니냐고 했더니 딸은 논리정연하게 반박했다.


“인스타그램이란 앱을 모두가 사용하는 게 아니잖아. 아무리 엄마 글을 읽는 사람이라고 해도.”


무척 재수 없었지만 수긍가는 말이었다. 딸은 물었다.


“엄마라면 친구가 올린 모집글에 쉽게 신청할 거 같아?”

“그러게. 조금 귀찮을 거 같기도.”


속으로 열 명 이하의 구독자가 모이면 정중하게 환불해 드릴 생각까지 했던 나는 조금 부끄러워졌다. 게다가 신청 폼에 적힌 메시지를 보니까 울컥하기까지 했다. 신청 양식의 마지막에 마련한 주관식 문항, <수미에게 하고 싶은 말>에서는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응원이 있었다.


- 책을 통해 응원받았고 저도 응원을 보냅니다
- 꿈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으로부터 아일랜드에서 올 편지를 기대하며:)
- 아일랜드를 시작으로 달까지 갑시다! ^-^


한 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구독자는 메일링 서비스 구독 신청 이유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애 셋 있는 여자가 아일랜드 간다고 하면 미쳤다고 생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더 응원하고 싶었어요! 못 갈게 어딨어. 한번 가보라고요.“


메일링 서비스는 첫 달 64명의 구독자가 신청했다. 마지막 달에는 75명까지 늘어났다. ‘아일랜드 혼자 가는 거 아냐, 같이 가는 거야!’라고 쓴 한 구독자의 메시지처럼 64명의 구독자와 함께 아일랜드로 떠나는 기분마저 들었다. 신청 폼에 남긴 메시지를 기운이 없을 때마다 찾아 읽었다. 그리고 다짐했다. 반드시 재미난 글을 써서 당신들에게 보내겠다고.


나는 사랑스러운 구독자의 이름과 메일 주소를 꼼꼼하게 주소록으로 옮겼다. 느낌이 참 묘했다. 책을 쓸 때도 독자에게 가닿는다는 것을 염두에 두지만, 이번에는 독자의 존재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다. 수신인과 발신인의 이름이 명확하게 드러나서일까.





메일링 서비스를 하는 과정은 이렇다. 일주일에 글 두 편씩 마감 - 매주 월요일에 편집자인 하재영 작가(이하 재영)에게 공유 - 화요일쯤 편집본 받기 – 수정하기 – 완성 - 메일 보내기.


이것을 반복한다. 메일링 서비스에 편집자가 있다는 건 독특한 케이스였다. 재영은 첫 책의 추천사로 인연을 맺은 작가였다. 우리는 창원, 경주, 부산, 서울 등에서 만나 술을 마시며 우정을 쌓아갔다. 우리의 대화는 책, 여성, 정치와 같은 심각한 주제에서 시작해 한심한 이야기로 끝을 맺곤 했다. 어째서인지 서로의 한심함을 나눌수록 가까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나의 메일링 구독 서비스 계획을 들은 재영은 어차피 자신도 볼 글이니 미리 보면서 간단한 교정을 봐주겠다고 나섰다. 그도 다음 책 작업으로 열을 올리는 중이었음에도 말이다. 재영 덕분에 안심하고 썼다.


그동안 문필업 하청업자로 사는 동안 타인의 의도와 목적이 담긴 다양한 글을 썼다. 분명히 내가 쓰는데 ‘내 글’이라고 말하기 애매한 글도 많았다. 관공서 매거진, 자서전, 때로 자신의 논조를 살린 칼럼을 대신 써달라는 제안도 받았다. 나는 오롯이 쓰고 싶은 글로 돈을 번다는 체감을 메일링 서비스를 하면서 느꼈다.


처음부터 끝까지 어떤 글을 보낼지, 어떻게 구성할지 생각하며 하루를 보내는 날들은 어릴 적 꿈꿔왔던 작가라는 삶과 가장 일치한 것처럼 느껴졌다. 작가가 중간 유통을 거치지 않고 바로 원고료를 받는 경제적 이점과 실험적인 글도 마음껏 쓸 수 있다는(물론 구독자의 흥미와 니즈도 살펴야겠지만) 자율성이 장점이었다. 하지만 독자와 직접 소통하면서 생기는 문제에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는 고충도 있었다.


구독자가 제출한 메일 주소에 오류가 있는 경우는 예상할 수 있었지만(다행히 예비 메일 주소를 받아 두었다)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문제도 있었다.

외로움이다. 원고를 발행하는 책임감에는 구독 서비스에 대한 다양한 반응(무반응까지도)을 혼자 감수해야 한다는 것까지 포함이었다. 어떤 날은 마치 창가에 서서 텅 빈 운동장을 향해 종이비행기를 접어 날리는 기분이 들었다. 종이비행기가 누군가의 앞에 떨어지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메일 발송’ 버튼을 누르고 나면 이 글들이 구독자의 메일함으로 순식간에 전송됐다는 사실이 바로 믿기지 않았다. 세상은 평소보다 더 조용해진 것 같고, 심장은 더 빨리 뛰었다. 마치 작은 사고를 저지른 기분이 들었다. 수시로 수신확인을 했다. ‘사람들이 이걸 정말 읽나?’ 싶어서다. 나의 집착을 보고 남편을 비롯한 친구들은 메일을 열람했다고 해서 글을 다 읽는 것도 아니며, 어떤 사람은 일부러 모아뒀다가 읽기도 할 거라고 일침을 가했다. 나의 정신건강을 우려한 조언이었다.


간혹 구독자의 답장이 왔다. 댓글처럼 짧은 답장부터 A4 세 장은 될 만큼 긴 답장도 있었다. 비행기 표를 끊었다고 쓴 날에는 자신도 덩달아 떨린다는 소감을 전해줬고, 기혼 여성의 자립에 대한 고민을 보낸 분도 있었다. 인스타그램에 인상 깊은 문장을 공유하는 분도 있었고, 카톡으로 소감을 알려주는 분도 있었다. 그리고 답장의 피로함을 고려해 묵묵히 메일만 읽고 있다고 말해준 분도 있었다.


피드백에 일희일비하지 말자고 다짐하지만, 힘이 나는 일이었다. 자신의 감상과 이야기를 써서 보내는 수고와 용기를 생각하면 답장은 굉장히 근사한 기적처럼 느껴졌다. 나는 되돌아온 종이비행기를 소중하게 바라봤다. 그리고 새 종이를 꺼내 다음 종이비행기를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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