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 새장

by 수미


“네가 드디어 미쳤구나”


아일랜드에 가겠다는 말에 엄마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어지간한 일은 한번 해보라고 말하는 엄마도 아일랜드 여행에 대해선 선뜻 ‘GO’를 외치지 않았다. 찌푸린 표정의 엄마를 안심시킬 말을 골랐다. “아영 씨가 가서 살고 있으니까 지금 여행 가면 딱 좋지.” 엄마는 심란한 표정을 거두고 말했다. “김 서방은 뭐라고 해?”


엄마는 종종 딸의 상황이나 욕망보다 사위의 입장을 먼저 고려했다. 책 작업이 한창일 때는 “김 서방이 고생 많겠네”, 남편과의 갈등에 대해서 말할 때는 “그래도 김 서방만 한 사람이 없다”라고 말했다. 왜 딸보다 사위의 입장을 고려하느냐고 서운해하면 ‘김 서방을 챙기는 일이 곧 너를 위한 길’이라고 달래주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마치 남편에게 종속된 느낌이 들었다. 과격하게 말하자면 “김 서방은 뭐라고 해?”라는 질문이 “주인의 허락은 맡았니?”라는 말처럼 들렸다. 부부를 운명 공동체라고 규정지으면서 기혼자가 자유롭게 사는 일은 행복한 결혼 생활과 위배된다는 듯 보는 낡은 시선.


많은 엄마들이 ‘결혼하고 나를 잃은 것 같다’, ‘나를 찾고 싶다’고 말한다. 자유로웠다면 갈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잃지 않았다면 찾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한동안 아이를 낳고 ‘나다워지는 일’에 몰두했다. 한 존재를 위해 기꺼이 내가 사라지는 일은 놀랍고 숭고한 일이지만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애타게 바랐다.


여전히 나로 존재하는 일은 투쟁이다.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건 머뭇거려지고 욕망을 실현하는 일은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나는 글쓰기 작업을 지속하고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내 행동을 가족에게 설득해야 한다는 부담스러운 압력을 느꼈다. 그동안 다양한 기혼 여성의 삶을 목격하면서 용기를 얻었지만 내 마음속에는 엄마와 아내라는 의무가 오래된 유적처럼 존재했다.


여성이 원하는 일을 마음대로 하는 것이 진정한 여성 해방이라지만 자유를 말할수록 내가 갇힌 투명한 새장이 실감 났다. 새장에서는 돈 냄새가 났다. 아일랜드 행을 결심했으나 실현이 쉽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경제권이 나에게 없다는 것이다. 다섯 명의 가족 구성원이 생활하는 데 필요한 대부분의 돈을 남편이 벌었다. 가사와 돌봄을 더 높은 비율로 맡고 있어도 남편의 ‘돈벌이’와 비교하면 어깨가 펴지지 않았다. 남편이 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일로 받은 스트레스를 풀 때나 손님을 대접한다고 먹기 싫은 술을 마시고 와서 토하는 걸 보면 도무지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는 말이 다시 나오지 않았다.


‘내가 돈을 모아서 가야지’라고 거듭 결심했다. 하지만 글쓰기로도 쿠팡으로도 어렵겠단 판단이 들자 몹시 침울해졌다. 남은 선택지는 남편에게 여행비를 지원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었고 그건 세상에서 가장 쉬운 방법이자 어려운 일이었다.


끙끙되다가 리에 작가를 만났다. 창원에서 무하유라는 공간을 운영하는 화가인 리에 작가는 도무지 나로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 고민이 있을 때 생각나는 사람이었다. 그의 담백하고도 명랑한 조언 덕분에 용기를 낸 일들을 떠올렸다. 리에 작가님이 좋아하는 파스타를 먹으러 식당에 갔다. 따듯하고 맛깔난 파스타가 우리 앞에 놓였다. 나는 아일랜드에 갈 수 없다는 절망에 빠져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도 환하게 웃질 못했다. 아일랜드 행은 철없는 꿈이었다고 현실을 너무 몰랐다고 자조했다. 리에 작가님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일랜드에 가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해요. 비행기 티켓 끊어줄 수 있어!”


리에 작가님은 서로 사랑하므로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북토크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며 소감을 말하던 남편의 모습을 말했다. 남편은 옆에서 작업을 지켜본 소감을 이야기하다 우는 바람에 소감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로 자리에 돌아갔다. 리에 작가님은 남편의 눈물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감상을 말했다. 자신이 본 것은 ‘진짜 사랑’이었다고.


“작가님이 행복해야 모두가 행복합니다. 남편 분은 작가님의 행복을 바라는 사람이에요. 그러니까 아일랜드에 갈 수 있다!”


그 말을 하는 리에 작가님은 결연하기까지 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남편의 사랑을 믿는 이유 중 하나는 글 쓰는 나에 대한 존중이었다. 연애 시절, 친구들과 카페에서 연극을 올리기 위해 연습할 때 남편은 퇴근 후에 와서 가상의 관객 역할을 맡았고, 청년 작가들의 팬클럽을 만드는 기획을 했을 때는 혼자 정장을 입고 와서 자리를 지켰다. 부족한 작가의 역량을 토로할 때면 “글 쓰는 당신은 언제나 프로였어”라고 격려해 주는 사람이었다. 나는 남편이 고마울수록, 남편에게 미안해질수록 오히려 호언장담하곤 했다.


“이게 진정한 투자지. 한 집안에 부자 나는 것만큼 작가 나는 게 대단한 일 아니겠어?”


어떤 날은 남편을 가스라이팅하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한국 사회에서 창작자로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지역에서 창작자로 살아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남편도 나도 잘 알았음에도.

리에 작가님을 만나고 온 저녁, 퇴근한 남편을 향해 맨 정신으로 외쳤다.


“곧 책의 시대가 온다. 내 시대가 온다.”

“뭐?”


남편이 씻으러 욕실에 들어가다 말고 휙 고개를 돌렸다.


“뭐라고 했어?”

“내 시대가 온다고!”

“네 시 돼서 온다고? 오늘 뭐 외출해?”


남편은 도무지 ‘수미의 시대’라는 것을 상상해 본 적 없는 얼굴로 되물었다. 속수무책으로 웃음이 터졌다. 비애가 적절히 배합된 웃음이었다. 민망하고 쑥스럽지만 또박또박 다시 말해줬다.


“아니, 내 시대가 온다고. 책의 시대가 올 거란 말이지.”


겨우 뜻을 알아들은 남편이 “에이... 난 또 뭐라고” 하고 김 빠진 얼굴로 돌아섰다. 비장한 선언이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머쓱하게 뒤돌아서 국을 데우고 반찬을 꺼내 저녁을 차렸다.


편안한 옷으로 환복 한 남편과 부엌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우리는 맥주 한 캔을 따서 나눠 마시며 대화했다. 나는 아일랜드에 가기 위해서 어떤 시도와 부침을 겪는지 털어놓았다. 그리고 마침내 당신이 비행기 티켓 값을 지원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 말을 하는 데 참 후련했다. 예상치 못한 시원함이었다. 비로소 내가 가진 하나의 조건을 인정한 느낌이었다. ‘남편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남편은 담담하게 “그렇게 원하는데 가야지”라고 말했다. 내가 경제적으로 의존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그게 남편이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나는 의존과 자유가 서로 반대편에 있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의존에 대한 두려움이 걷히자 아이러니하게도 자유로워진 기분이었다. 나는 투명 새장의 문을 열었다. 밖에서 걸어 잠근 줄 알았던 새장의 문은 쉽게 열렸다. 낡아서 삐걱 소리가 나는 투명 새장의 문을 걷어차고 나왔다. 시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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