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쿠팡에 일하러 갈 거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말이라도 뱉지 않으면 절대 가지 않을 것 같아서다. 평소 ‘일 벌이는 데 선수’인 나지만 이번에는 쉽게 행동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솔직히 말하면 가기 싫었다. 그럴수록 내 목소리는 더 커졌다. 쿠팡 갈 거야! 급기야 부모님과 함께한 식사 자리에서도 나는 앵무새처럼 떠들었다.
“일주일에 두 번 물류 센터가서 일할 거야.”
엄마는 단번에 그것 역시 좋은 일이라고 했다. 영감이 떠오르지 않을 땐 새벽 어시장에 가서 다양한 사람들을 보라고 권하는 사람답게. 뭐든 새로운 일을 하면 나중에 쓸 게 생길 거라고 장담했다. 아빠는 다소 심각한 표정이었다.
“작가가 그래도 되나...”
아빠는 뜸을 들였다. 생각이 많아지는 표정이었다. 아빠는 일찌감치 내가 다섯 권의 책은 내야 작가다워진다고 예언한 사람이기도 했다. 솔직히 누군가는 쿠팡을 반대하길 바랐던 나는 아빠의 반응을 기대했다. 어떻게든 글을 쓰면서 돌파구를 찾아보라고 독려해 주길 바랐다. 하지만 일당이 얼마인지 들은 아빠는 슬쩍 태도를 바꿨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괜찮네.”
내 주변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공통점. 내가 무얼 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뜯어말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혼을 결심했을 때도, 책을 쓴다고 했을 때도 모두 ‘그래, 한번 해봐’라고 했다. 망설일 때는 인생에는 ‘아니면 말고’ 카드가 있다며 넌지시 독려해 주기도 했다.
이후에도 나는 ‘쿠팡’이라는 말이 가벼워질 때까지 말하고 다녔다. 그럴수록 마음속에서 쿠팡은 수상하게 무게를 더해갔다. 혼자만의 의지로는 자신이 없어진 나는 쿠팡 물류센터에서 함께 일할 동료를 찾아 나섰다. 혼자 있는 걸 꽤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고독하게 물건을 찾고 포장하다 보면, 본능적으로 낯익은 얼굴이 그리울 것 같았다. 점심이라도 같이 먹으면 좋을 텐데. 하지만 모두가 보류 또는 거절 의사를 밝혔다. 사람 좋은 얼굴로 다들 먼저 해보라고 했다. 고질적인 통증을 이유로 들었다. 오래 의자에 앉아 글 쓰는 동료들은 손목에 건초염이 있거나 허리 디스크가 있었다. 까딱하면 병원비가 더 많이 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다.
단 한 사람만이 함께 하자는 뜻을 밝혔다. 이웃인 인남이었다. 우리는 쿠팡에서 일하는 지인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끌어 모았다. 창원에는 네 개의 쿠팡 물류 센터(줄여서 ‘쿠팡’)가 있었다. 고정 아르바이트가 부담스러운 사람, 투잡을 하는 직장인에게 용이한 일터. 그리고 누군가에겐 주 일터였다. 인남의 지인은 회사에 다니다가 대인관계의 스트레스를 이유로 쿠팡에서만 3년째 일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폰을 꽂고 혼자서 일한다는 게 장점이라고 했다. 인남은 그에게서 들은 업무 팁을 빠르게 공유해주었다. 감사하게도 관리자가 친절한 물류센터를 콕 집어 알려주기까지 했다.
철저히 대비하는 마음으로 검색창에 [창원 쿠팡 단기직], [창원 쿠팡 알바]를 검색했다. 이왕이면 잘 알아보고 가고 싶었다. 꼼꼼하게 블로그 후기를 읽었다. ‘이틀 일하고 몸살 남’, ‘밀려드는 물량에 정신을 잃어버림’을 지나서 ‘생각보다 할 만해요’라는 후기가 나올 때까지 읽었다.
나도 20대까진 몸 쓰는 일에 자신 있었다. 창원 LG 에어컨 제조 공장에서 단기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일을 잘해서 주로 남자들이 맡는 유리 운반 파트에 배치됐다. 도너츠 가게에서 아르바이트할 때도 빠릿빠릿하고 청소도 잘해 점주님의 총애를 받았다. 쿠팡도 막상 하면 잘할 거라고 믿었다. 동시에 세 아이를 낳고 균형이 깨진 몸이 걱정스러웠다. 발목이 안 좋아서 달리기도 못하는데, 괜찮을까. 주기적으로 침을 맞고 주사를 맞는 손목이 물품의 무게를 버텨낼 수 있을까.
걱정이 스멀스멀 피어오르자, 나는 과감하게 실행 단계로 넘어갔다. 앱으로 원하는 날짜에 근무 신청을 할 수 있었다. 면접도 필요 없는 간소화된 채용 방식이 좋았다. 일당까지 바로 조회해 볼 수 있었는데 낮 근무는 세전 78,880원(2024년 기준) 이었다. 참미 작가님이 말한 금액은 80,000원이었는데 고작 1,120원 차이지만 앞자리가 다르다는 게 무척 실망스러웠다.
아침 7시 30분 통근 버스를 타고 퇴근해서 집에 돌아오면 저녁 7시였다. 실제 근무하는 시간은 휴게 시간 1시간을 제외하고 7시간이었지만 하루를 꼬박 쏟는 셈이었다. 나는 그 시간에 할 수 있는 일을 떠올렸다. 오전은 양보할 수 없는 작업의 황금시간대였다. 가장 집중이 잘되고 컨디션이 좋은 오전에 글을 쓰는 게 평일 루틴이었다. 새로운 글을 쓸 수 있는 가능성과 78,880원을 바꾼다는 게 좀처럼 내키지 않았다. 비로소 78,880원이 적은 금액으로 느껴졌다.
인남의 지인은 여름을 피하라고 조언했다. 물류센터에는 냉방 시설이 없다고 했다. 법적으론 창고로 규정돼 환기와 냉난방 시설을 갖추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 노동자들은 더위와 추위, 먼지 속에서 일해야만 했다. 이를 무릅쓰고 일할 수 있는 사람만이 계속 일할 수 있었다. 고용의 문이 활짝 열려 있고 문턱이 낮은 일터라고 해서 위험을 기꺼이 감수해야 하는 건 아님에도. 그럼에도 쿠팡은 나처럼 돈이 급하게 필요한 사람에게 쉬운 선택지로 인식된다. 소비자 입장에선 신속과 효율의 상징인 쿠팡이 노동자 입장에 서자 달리 보였다.
나는 쿠팡이 매일 출근해야 하는 일반적인 일터와 달리 비교적 자유로운 형태로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결코 좋은 일터가 아니라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마음속에 심란함이 들어찼지만 애써 무시했다. 쿠팡은 비행기 값을 벌기 위한 (글쓰기를 제외한)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으니까. 업무 신청을 완료한 나는 셔틀버스를 탈 수 있는 정류장과 집의 거리를 확인했다.
다음날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접수는 됐으니 대기하라는 말이었다. *출근 확정 아님. 여섯글자가 친절하게 적혀 있었다. 곧 다가올 노동의 시간을 예감하자 불안이 치솟았다. 내게 쿠팡은 희망이자 절망이었다. 그래도 사람들에게 뱉은 말이 있으니까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진짜 ‘해냄’으로써 남편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어 주고 싶단 생각도 했다. 하지만 진실은 손바닥으로 가려지지 않았다.
솔직히 가기 싫었다.
몇 시간 후, 다시 문자가 왔다.
[마감 안내]
지원하신 0월 0일 (수) 주간 티오 마감으로
안내해 드립니다. 꾸준히 지원주시는 지원자 분들께 대단히 감사드립니다. 다음에 재지원을 부탁드립니다.
탈락이라니. 쿠팡을 신청하면 당연히 일할 수 있다고 믿은 건 오만함이었다. 이틀 연속 지원했으나, 두 번 다 마감이 완료됐다는 문자가 왔다. 나는 떨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짐작했다. 일하고 싶은 사람이 많아서? 신입이어서? 통근버스 타기 애매한 위치에 살아서? 나이 때문에? 쿠팡은 누구에게나 보장된 일자리가 아니었다. 다시 검색해 보니 떨어진 사람의 이야기가 꽤 나왔다. ‘정 안 되면 쿠팡 가면 되지’ 너스레를 떨었던 것이 부끄러웠다. 한편 내가 쿠팡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쿠팡이 나를 거부했다는 사실이 씁쓸하면서도 안도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