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공에서 ‘CORK’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연착륙하는 비행기의 굉음을 들으면서 나는 가방을 움켜쥐었다. 아영에게 ‘조금 있다 만나요.’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곧 아영을 만나는 상상만으로 눈물이 맺혔다.
떨리는 마음으로 입국심사대에 섰다. 심사관은 어디에서 머물 것인지, 무슨 이유로 왔는지 물었다. 유럽에서 팔레스타인 난민이 사회 문제로 대두되던 때라 입국 심사가 까다롭다는 이야기를 들은 후였다. 나는 아영의 집 주소를 보여주며 여행이라고 거듭 말했다. 마침내 심사관에게 좋은 여행이 되길 바란다는 말과 함께 여권을 건네받았다.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가방 깊숙이 여권을 찔러 넣고 앞을 바라봤다. 이제 유리문 하나만 통과하면 아영을 만날 수 있었다. 입국 심사를 통과하자마자 뛰어나간 로니의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디어 만났구나.
아영을 얼른 만나고 싶은 마음과 다르게 걸음은 좀처럼 빨리 나아가지 못했다. 스무 시간을 날아 도착한 아일랜드 코크. 곧 아영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았다. 자정을 앞둔 코크 공항은 한적했고 입국하는 사람을 마중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그래서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보였다. 웃으면서 “언니!” 하고 나를 부르는 아영의 모습이.
점퍼를 입고 머리를 하나로 묶은 모습은 어제처럼 익숙해서 웃음이 났다. 우리가 만나는 장소가 창원의 주택, 공원에서 아일랜드 코크공항으로 바뀐 것 말고는 변한 게 없다는 착각이 일만큼. 우리는 가볍게 포옹했다. 그리고 잠시 멈춘 음악을 재생하듯이 자연스럽게 대화했다. 배는 고프지 않은지, 소박한 공항 전경에 대해서, 비가 내리고 더 쌀쌀해졌다는 날씨에 대해서. 그리고 아영은 이미 자신이 할 일을 알고 있는 사람처럼, 캐리어를 나눠 끌었다. 마치 한겨울에 나눠 먹기 위해 사온 귤 봉지를 재빨리 들어줬던 것처럼.
“아영 씨, 근데 여기 뭔가 타는 냄새가 나요.”
나는 킁킁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코크공항에선 예기치 못한 냄새가 났다. 혹시 근처에 불이 난 건 아닌지 경각심도 들었다. 아영은 웃으며 설명했다. “아일랜드에선 여전히 장작 때는 집이 많아요.”, “여긴 한국보다 사회 인프라가 부족해요. 아마 완전 시골이라고 느낄걸요.” 마치 어릴 적 자란 의령군 칠곡에서 맡았던 냄새와 같았다. 저녁 무렵까지 놀던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갈 때. 좁은 골목에서 매캐한 냄새가 나곤 했다. 아궁이에 불을 지펴 밥을 짓거나, 나무 장작으로 불을 때는 곳들이 있었다. 낯선 아일랜드라는 땅에서 나는 익숙하고도 오래된 냄새.
차를 댈 곳이 마땅히 없어 주변을 배회하던 유라가 곧 나타났다. 아영의 언니였다. 우리는 재빠르게 트렁크에 짐을 실었다. 손이 야무진 아영이 커다란 캐리어와 짐이 충분히 들어가도록 정리에 나섰다. 로니와 릴리는 재잘거리며 끝없이 수다를 떨었고, 아직은 어색한 유라와 나는 비행하며 있었던 일들을 화제 삼아 이야기를 나눴다.
유라는 “배는 안 고파요? 가서 한 잔 해야죠!” 하고 말했다. 고마운 환영 인사였다. 캄캄한 밤에 잔비까지 내리고 있어서 풍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나는 계속 창문을 봤다. 낯선 풍경에 빨리 정을 붙이고 싶은 사람처럼. 적막한 풍경 속을 15분쯤 달려가니 뾰족한 지붕의 집들이 펼쳐진 동네가 나타났다. 아영과 유라가 사는 집이 있는 곳이었다.
집 앞에 마중 나온 사람이 있었다. 마이클이었다. 유라의 파트너이자 축구팀 셀틱과 스탠딩코미디, 맥주를 좋아하는 아일리쉬였다. 들떠 보이는 표정으로 인사를 건넨 마이클은 짐을 함께 옮겨주었다. 나는 마이클에게 반가움과 고마움(당신들의 집에 초대해 줘서 고맙다, 짐도 옮겨주고)을 모두 담아 말했다. 땡큐.
이층 집은 아영, 아영의 두 아이 진과 릴리, 유라와 파트너 마이클. 다섯 명이 살기에 충분해 보였다. 문제는 여기에 나와 로니, 옥수 씨도 합류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모두 합쳐 여덟 명이 20일 동안 동고동락해야 했다. 아일랜드 행을 확정 짓고 난 후, 아영은 조심스럽게 부탁했다. 혹시 여행길에 자신의 어머니도 함께 모셔올 수 있냐는 것이다. 두 딸이 사는 아일랜드에 가고 싶어도 혼자선 엄두가 안 난다는 어머니의 사정을 듣고 거절하긴 어려웠다. 이쯤에서 앞으로 일어날 부대낌과 피로를 예상할 수 있었겠지만, 아직 우리는 2년 만의 해후의 감동과 낭만에 젖은 상태였다.
나는 한국에서 차근차근 준비한 선물을 캐리어에서 꺼냈다. 각종 라면과 김, 과자를 꺼낼 때마다 환호성이 터졌다. 나는 이것이 집의 출입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꽤 많은 양을 먹거리로 챙겨 왔다 생각했는데 여덟 명의 입을 생각하니 부족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일랜드의 여름은 저녁 9시가 넘어도 해가 지지 않았다. 남아있는 빛 때문인지 설렘과 흥분 때문인지 잠도 오지 않았다. 대강 짐을 푼 우리는 식탁에 앉아 맥주로 목을 적셨다. 옥수 씨는 잠을 자기 위해 금방 일어섰고 마이클, 유라, 아영은 계속 술을 마셨다. 마이클은 멀리서 온 손님을 반긴다는 듯 갖가지 술을 꺼냈다. 한글로 ‘돌고래’라고 적힌 소주잔에 위스키를 따라주며 주의사항을 말했다. ‘스트롱’, ‘리럴’, ‘슬로우리’ 도수가 세니까 천천히 조금씩 마시라는 것이다.
우리는 기네스 맥주와 위스키를 번갈아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비행기에서 옆에 앉은 외국인에게 좌석 교환해 달라고 했다가 거부당한 일, 암스테르담 공항에서 쥐를 본 일, 환승을 걱정했던 일, 입국 심사에서의 긴장... 지난 불안과 걱정이 모두 술자리의 즐거운 무용담이 되었다. 그들은 마치 어떤 이야기도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 같았다.
마이클은 한국말을 적당히 알아듣고 말하기도 했다. 가끔씩 스탠딩 코미디언으로 무대에 선다는 그는 관객들의 시리어스함이 힘들 때가 있다며 외로움을 고백했다. 나는 공감하며 강연자로 사람들 앞에 설 때, 사람들을 웃기거나 집중시키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안다고 말했다. 물론 아영의 통역을 통해서. 한국어와 영어를 오가며 통역하는 아영의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새벽 두 시를 넘기자 사람들이 하나둘씩 일어났다. 그리고 식탁에는 마침내 아영과 나, 둘만 남았다. 우리는 소리가 새어나지 않도록 주방의 문을 닫았다. 그리고 새 맥주캔을 따서 잔을 채웠다. 마치 처음처럼, 아무리 해도 질리지 않을 것만 같은 건배를 했다.
“언니, 이 얼마나 믿지 못할 투샷이에요.”
믿지 못할 투샷. 아영은 영화과를 다녔던 사람다운 소회를 내뱉었다. 우리는 같은 공간, 같은 시간에 함께 있었다는 놀라움을 다시 실감했다. 이 놀라움은 몇 번이나 반복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동안 쌓인 이야기를 어디부터 풀어야 할지 알지 못했다. 바로 어제의 이야기부터 몇 개월 전, 일 년 전, 삼 년 전을 오가는 이야기를 두서없이 이어갔다. 나는 담백하고 자연스럽게 ‘곧 봐요.’라고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음을, 맥주잔을 들어 건배할 수 있음을, 이 익숙한 일을 다시 하고 한다는 감격으로 고양됐다. 우리는 사이좋게 빨간 빛깔의 레드에일, 스미딕스를 들이켰다.
그리고 고요한 새벽, 아영은 오래 간직한 듯한 이야기 하나를 꺼냈다. 놀라웠지만 나도 막연하게 예감한 이야기를. 우리의 이야기는 잠을 잊은 채 오래오래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