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 정도 잤을까. 부산스러움에 눈을 떴다. 아래층에서 음식 냄새와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계단을 타고 올라왔다. 일층으로 내려가자 아영이 오늘 비치에 가는 게 어떠냐고 물었다. 옆에 서 있던 마이클은 이렇게 날씨가 좋은 주말에는 꼭 바다에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렇게 우리는 코크에서 자동차를 타고 30분 거리인 킨세일 비치에 가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내 눈물지었다. 누구 먼저랄 것도 없이 연신 하품을 했고 서로의 눈가에 맺힌 눈물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장시간 비행의 피로와 숙취 덕분이었다. 하품을 하면 눈물이 맺히다 못해 주르륵 흘러내렸다. ‘차라리 집에서 잠이나 잘 걸’ 짙은 후회가 밀려왔다. 장기 여행에선 페이스 조절이 중요하다는 지인의 조언이 문득 생각나기도 했다.
‘첫날부터 너무 무리하고 있어...’
게다가 버스는 거북이처럼 움직였다. 코크 사람들은 죄다 킨세일 해변에 가는 것인지 길이 꽉 막혔고 설상가상 멀미도 했다. 아영은 창밖의 햇살을 보며 말했다.
“아일랜드에선 주말에 이렇게 날씨가 좋은 날이 드물어요. 올해 두 번째인가? 항상 비가 오거나 흐리니까 이렇게 햇살 좋은 날에 아일리쉬들은 너무 행복해해요. 단지 날씨만으로요. 이런 날에는 꼭 비치를 가야 한다고 말해요.”
속으로 좀 유난 아닌가 싶기도 했지만 얼마나 자주 비가 내리길래, 얼마나 햇빛이 귀하길래 의구심도 들었다. 내게 눈을 뜰 수 없게 강한 햇살은 언제나 피하고 싶은 것이었으니까. 아영은 구릿빛 피부가 아일랜드에선 아름다움의 상징이라고 말했다. 햇살을 많이 보는 사람, 즉 휴양지에 즐겨 가는 사람이라 부자인 이미지가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동양인인 우리는 축복받은 유전자였다.
‘제발 빨리 좀 내렸으면.’ 버스에서 유체이탈을 꿈꾸는 동안 정류장에 도착했다. 시원한 공기를 쐬면서 걸으니까 비로소 살 것 같았다. 아영은 “킨세일 비치는 정말 바다밖에 없어요. 완전 쌩 비치예요.”라고 설명했는데 눈앞의 풍광을 마주하니 실감이 났다. 공공 화장실이나 편의점, 카페, 파라솔도 하나 없는, 말 그대로 生비치의 풍광. 킨세일비치는 해운대나 광안리처럼 파라솔이 즐비한 도심 휴양지가 아니라 한적한 시골 바닷가를 연상시켰다. 모래사장에는 벌써 도착해 텐트를 치고 누워서 햇빛을 즐기는 유라와 마이클, 모래 놀이하는 아이들이 보였다.
킨세일 비치의 바람은 매우 찼다. 마치 킨세일이라는 이름을 잊지 말라는 듯 매섭게 바람이 불어왔다. 짧은 수영복 대신 레시가드를 입고 온 것이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옥수 씨가 싸 온 김 주먹밥과 무말랭이를 앉아서 나눠 먹었다. 주먹밥은 간이 거의 안 되어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을 만했다. 맛이 중요한 게 아니라 허기를 달래줄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코크에 온 지 겨우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빵이 아니라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게 감격으로 느껴졌다. 유라의 친구가 줬다는 짭조름하고 씹히는 맛이 좋은 무말랭이를 씹다 보니 영혼마저 풍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무말랭이를 아껴 먹으며 바닷가를 바라봤다. 다시 봐도 여름 바다의 낭만과는 동떨어진 느낌의 바다였다. 물놀이를 하기에는 몹시 야생적인 바다. 바람도 찬데 더 찬 바닷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게 통 내키지 않았다. 동시에 멀미를 감수하며 왔는데 들어가 봐야지, 지금 아니면 외국에서 언제 바다수영을 해보겠어라는 마음이 상충했다. 나는 슬쩍 아영의 마음을 떠봤다.
“아영 씨, 바다에 진짜 들어갈 거예요?”
“들어가야죠!”
아영은 단호했다. 수영 강사가 입을 법한 두꺼운 레시가드를 껴입은 아영은 모래가 묻은 손을 털고 일어났다. 나는 아영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갔다. 뒤따르는 자는 그나마 속이 편한 법이다. 준비운동을 하며 밀려오는 물에 살짝 발을 담근 나는 소스라치며 물러났다. 마치 겨울 바닷가에 발을 담근듯한 냉기. 한여름의 한국 바다에서 시원함을 느꼈다면 킨세일비치는 냉수마찰과도 같은 충격을 줬다.
“이거 안 되겠는데...”
아연실색하는 나를 보고 아영이 해맑게 웃었다. 그도 물의 온도가 익숙해 보이진 않았는데 이렇게 외쳤다.
“언니, 오늘이 제일 따뜻한 날이에요.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더 추워요.”
내일이 더 따뜻할지 아영 씨가 어떻게 알아요... 아영의 좌우명 중 하나는 ‘과거를 돌아보지 않는다’였다. 내일 바닷가에 오더라도 아마 아영은 똑같이 말했을 것이다. 오늘이 제일 따뜻한 날이라고. 나는 뒤돌아 다시 텐트로 향하거나 몸을 담그지 않는 선택지를 떠올렸지만, 강렬한 유혹은 앞장서서 걷는 아영에게서 왔다.
“망설이면 더 추워요. 그냥 들어가야 해! 바로 들어가기 힘들면 뒤돌아서 뛰었다가 다시 들어가요.”
우리는 모래사장 쪽으로 몸을 물렀다가 다시 물 쪽으로 나아가기를 반복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비명을 지르며 더 깊숙이 몸을 담갔다. 아악! 비명이 절로 나왔다. 한 발자국 뗄 때마다 ‘남 의식하지 않기로 유명하다는’ 아일리쉬들의 시선을 느꼈다. 그들은 여유롭게 수영을 즐기며 흥미롭게 우리를 보고 있었다. 뭘 봐. 아이리쉬 독한 쟁이들아. 나는 따뜻한 날씨에만 수영을 즐기는 코리안이다. 나는 연약한 피부 껍질을 가지고 있어.
“아일리쉬들은 겨울에도 바다 수영한대요. 이 온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아영은 끝없이 마인드셋을 유도했다, 나는 결국 ‘그만 좀 해요!’ 하고 빼액 소리 질렀다. 그러자 아영이 넘어가라 웃었다. 그리고 아영은 첨벙첨벙 바닷물에 들어가 마침내 입수를 했다. 나도 이를 악물었다. 까짓것 해본다. 딱 한 번만 헤엄쳐 본다는 결심이 섰다. 나는 어엿한 수영 중급반이었다. 평일 새벽 수영 강습을 3년 넘게 다니고 있었다. 하지만 파도가 없는 수영장에서의 수영 연습은 파도치는 바다 수영에 통하지 않았다. 계속 밀려오는 파도 앞에 서자 어느 방향으로 수영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영 씨, 근데 어느 방향으로 수영해요?”
“아무 데나요!”
여러 번 바다 수영을 즐겨본 아영에게는 요령이나 기술이 있을 줄 알았는데 딱히 없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일단 수경부터 썼다. 수경을 쓰자 세상이 좀 더 다르게 보였다. 마치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의 화면처럼. 타원형의 프레임 속에 세상이 가득 찬 느낌. 현실 같지 않은 기분. 나는 이를 악물고 결심했다. 딱 한 번만 헤엄치자, 딱 한 번만 바다에 손을 뻗고 일어나자.
그렇게 물속으로 들어갔고 파도와 함께 몸이 두둥실 떠올랐다. 역시 수영장에서 배운 영법은 적용되지 못했다.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쉬어야 하는데 밀려오는 파도에 숨을 쉴 수 없어서 벌떡 일어났다. 발이 닿는 수심에서 수영을 했지만 허둥지둥이었다. 덕분에 짠 바닷물이 코와 입으로 다 들어왔다.
전신을 바닷물에 담그고 나니까 정말 상쾌했다. 온몸의 감각이 다 깨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수경에서 물줄기가 뚝뚝 흘렀다. 바닷물이 흐르는 수경으로 본 세상은 또렷하지 않았다. 세상을 너무 정확하게 보는 것보다 때로는 흐리게, 불분명하게 보는 게 아름답다고 느꼈다. 나는 다시 바닷가에 몸을 담갔다. 이번에는 두 번만 더 손을 저어보자. 그다음에는 세 번만 더! 언제 파도가 밀려올지 모르는 바다에서 나는 둥둥 떴다. 헤엄쳤다기보다 허우적거렸을 뿐임에도 불구하고 해 봤다는 기쁨이 너무 커서 입이 떡 벌어졌다. 최고다. 너무 시원해. 너무 상쾌해!
그때 아영이 나가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아니, 왜 벌써요?”
“오래 있으면 감기 걸려요. 내일 일해야죠.”
아영은 결연한 표정으로 모래사장을 향해 이미 발을 내디뎠다. 바다에 들어온 지 10분도 안 된 것 같았는데. 아영은 나간다고 했다. ‘멀미하면서 차 타고 킨세일까지 왔는데 뽕을 뽑아야지. 벌써 나간다고?’ 나는 굳건하게 ‘저는 좀 더 할래요.’라고 고집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둥둥 떠있다가 일어서기만을 반복했을 뿐인데 몸이 으슬으슬 추웠다. 아영의 조언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직감했다.
모래사장으로 걸어 나온 내게 아영은 타올을 건넸다.
“바다의 프레쉬함을 느끼고 쉬면 돼요. 저도 처음에는 계속 수영하는 게 바다 수영인 줄 알았는데. 짧게 수영하고 쉬는 게 바다 수영이래요.”
사람의 마음이란 게 참 이상해서 모래사장에 앉아있다 보니 다시 바다에 들어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우리는 텐트 근처에서 햇볕을 쬐며 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