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팅과 엔조이 사이

by 수미


코크의 세 사람, 마이클, 유라, 아영은 한국에서 온 세 사람을 절대 가만 둬선 안된다고 느끼는 듯했다. 특히 마이클은 아일랜드의 모든 펍을 다 구경시켜주고 싶어 하는 사람 같았다. 덕분에 어떤 밤에는 골웨이의 펍을 여섯 군데나 들리기도 했다. 아일랜드에는 낡음이 자부심인 것처럼 오래된 펍이 많았다. 유행하는 인테리어에 맞춰서 꾸준히 리모델링하는 한국의 가게들을 떠올리면 몇 십 년, 몇 백 년일지도 모를 역사를 그대로 보존하는 아일랜드의 오랜 펍이 신기했다. 부러진 의자도 역사라고 생각하는 아일리쉬들이 멋있기도 하고 미련해 보이기도.


어쨌든 아일랜드는 술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최고의 여행지였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변하는 날씨, 갑자기 내리는 비. 그럴 때마다 펍은 ‘뭘 망설여. 한 잔 하면서 날이 개기를 기다려’라고 말해주듯이 열려 있었다. 아일랜드에서 취하는 건 당연한 권리처럼 보였다. 게다가 어린이들은 입장만 해도 마이와디(음료)를 무료로 줬다. 펍에서의 환대를 기억하는 어린이는 자연스럽게 펍을 사랑하는 어른이 되지 않을까.


어느 날은 다 같이 볼링장이 있는 펍에 놀러 갔다. 다인원은 스포츠 게임을 즐기기에 좋았다. 우리는 네 명씩 팀을 짜서 볼링 경기를 했다. 너무 오랜만에 해보는 볼링이라 어정쩡하게 공을 잡고 굴렸다. 공이 ‘쿵’하고 큰 소리를 내며 레인을 따라 굴러가다 이탈했다. 모든 핀은 멀쩡한 정렬을 유지했고 나는 민망해서 어깨가 쑥 올라갔다. 마이클이 다가오더니 공 굴리는 법을 알려줬다. 좀 더 멀리 던지라는 것 같았다. 아영도 “괜찮아요. 잘했어요.”라고 독려했다. 우리는 각자의 점수에는 불만족하더라도 상대방의 점수에 대해선 관대한 편이었다. 나 역시 다른 사람들에겐 꿋꿋하게 괜찮아, 잘했어.라고 외쳐 줄 수 있었다.

“수미, 쇼타임!”


내 차례가 되자 마이클이 외쳤다. 쇼타임, 그 말은 이렇게도 느껴졌다. ‘잘하든 못하든 단지 너의 시간일 뿐.’ 볼링 핀 하나를 맞추든 두 개를 맞추든 또 엉뚱하게 굴러떨어지든 그냥 이 시간을 즐기라는 말처럼 들렸다. 땡큐, 나는 최선의 대답을 하고 공을 굴렸다. 또 레인을 벗어난 공이 우당탕탕 굴러갔다. 물론 앞으로 핀을 맞출 기회는 열 번도 넘게 있었다. 핀 하나라도 맞추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공을 고르고 있을 때, 마이클이 말했다.

“수미, 엔조이!”


그리고 나는 다음 차례인 마이클에게 돌려주듯 외쳤다.


“마이클, 파이팅!”


낯선 아일랜드의 볼링장에서 울린 파이팅. 파이팅은 직역하면 경기에 나와서 ‘싸우자’지만 한국 사회에선 격려, 지원의 뜻도 품고 있었다. 나는 잠시 이 말이 아일리쉬인 마이클에게 하기 적절한가에 대해서 고민에 빠졌다. 파이팅은 한국인인 나에게 퍽 친숙한 응원법이다. 평소 동료가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앞뒀을 때도, 계주에 나가는 친구를 응원할 때도, 위로가 필요한 친구에게도 ‘파이팅’을 외쳐주곤 했으니까. ‘파이팅’은 ‘엔조이’에 비해 전투적이고 용맹한 응원처럼 느껴졌다. 파이팅이란 응원을 받은 마이클은 ‘쇼타임’과 ‘엔조이’를 번갈아 쓰며 사람들에게 힘을 북돋았다.



아일랜드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가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걸 알고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들려준 적이 있었다. 그의 친구는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일한 오랜 경력의 셰프라고 했다. 하루는 친구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 가장 일을 잘하냐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단연 코리안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코리안은 쉬는 법이 없는 워커홀릭이라는 이유였다. 씁쓸하기도 자랑스럽기도 한 이야기였다.


아영도 불꽃같은 파이팅을 품고 살고 있었다. 주변의 반대를 뚫고 아일랜드에 온 만큼 더 열심히 살았다. 덕분에 자국민도 하기 어렵다는 취업도 했다. 물론 강한 의지만으로 부족한 일들이었다. 때로 운이 따랐고 언니와 마이클, 가게 사장까지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아영은 그들의 선의와 노력을 생각해서라도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고 굳건히 믿었다. 가게에 지각한 적도 없었고, 휴가를 낸 적도 없었다. 동료들은 왜 쉬지 않냐고, 휴가를 떠나지 않냐고 묻곤 했다. 컨디션이 괜찮냐고 묻는 동료들에게 아영은 언제나 ‘아임 오케이’라고 대답하는 사람이었다. 아영은 열심히라도 하지 않으면 굳이 외국인인 자신을 쓸 이유가 없을 거라고 믿었다.


나는 아영이 일하는 빵집을 가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아영이 보내준 사진과 이야기를 통해서 내 멋대로 상상했던 것이다. 빨간 글씨의 가게 상호, 초록색 문, 손글씨로 메뉴가 적혀 있는 곳, 아침에 출근하면 따뜻한 라떼를 내려주는 곳. 서둘러 라떼를 마시는 아영을 보면서 ‘천천히 마시라고, 이 라떼를 다 마시고 우리의 일이 시작되는 거라고’ 말해주는 곳.


하루는 몰래 옥수 씨, 유라와 함께 아영이 일하는 가게를 찾아간 적이 있다. 마치 공개 수업날 아이 학교를 찾아가는 마음이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곳을 직접 가본다는 설렘이 컸다. 가게에는 식사 대용품처럼 보이는 큼지막한 사이즈의 빵과 샌드위치가 눈에 띄었다. 여러 스콥에 담겨있는 브로콜리, 적양배추, 오렌지 등이 들어간 각종 샐러드와 소스, 달달한 디저트도 있었다. 아영은 그곳에서 매주 새로운 샐러드를 만드는 일을 맡고 있었다.


우리는 은근히 우리를 알아보는 사장이 있기를, 아영의 가족이라 눈치채고 커피 정도는 서비스해주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각자 먹고 싶은 커피와 당근 케이크, 소시지빵, 오트밀이 든 요거트 등을 푸짐하게 샀다. 계산을 마치고 나서야 매니저인 로라가 유라를 알아봤다. 나중에 듣기를 코크의 한 가게에 한국인 세 명이 동시에 나타나는 일은 희소해서, 로라는 아영에게 달려가 한국인 세 명이 나타났다고 말했다고 했다.


곧 머리에 남색 두건을 두르고 정갈한 조리복을 입은 아영이 나타났다. 이상하게 뭉클했다. 이를테면 코크의 명소는 내게 이런 곳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시간과 삶이 흐르는 장소. 일하는 도중에 나온 아영과 긴 대화를 나눌 순 없었다. 하지만 거리에 서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아영의 일상에 내가 있을 수 있다는 실감이 참 좋았다. 아일랜드를 떠나던 날, 아영은 이렇게 메시지를 보냈다.


아일리쉬는 엔조이지만 한국인은 파이팅이죠,우리 그 사이에서 잘 살아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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