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오후. 아영의 등을 보면서 계속 걸었다. 노트북이 든 백팩 하나만 둘러맨 나와 달리 아영은 자신의 몸보다 큰 자전거도 끌었다. 자전거 앞에 달린 바구니에는 뭉툭한 비닐봉지가 있었다. 봉지 속에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납작 복숭아 두 줄이 담겨 있었다. 아영은 물이 가득 찬 물병까지 꽂은 무거운 백팩을 메고 두 손으로는 낡은 자전거를 끌었다.
걸어서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일터지만 자전거를 타면 절반쯤 시간이 단축됐다. 걸어서 가게를 오가는 아영의 사연을 듣고 동료는 버려도 상관없는 헌 자전거가 있다며 흔쾌히 줬다. 덕분에 아영은 신나게 출근할 수 있었다. 자전거는 아영의 출퇴근을 도와주는 고마운 이동수단이었다.
오후 3시. 세 아이의 스포츠 캠프가 끝나는 시간이자 아영의 퇴근 시간이었다. 나는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시간을 보내다 아영을 만나 함께 집까지 걸어갔다. 수영장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15분이 걸렸다. 하지만 그건 유유자적 혼자 걸을 때의 이야기였다. 배낭을 메고 자전거를 끌고 가면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꿋꿋하게 자전거 핸들을 잡고 가파른 오르막길을 걷는 아영의 뒤에서 말했다.
“제가 자전거 좀 끌고 갈게요.”
돌아온 대답은 단호했다.
“아니요! 이건 제 짐이에요.”
마치 자전거를 끝까지 혼자 끌어야 아일랜드에서 살아갈 수 있다고 악마와 계약이라도 한 사람처럼 아영은 굳건했다. 도와주는 것이 선을 넘는 일인가 생각에 빠진 나는 한 번 더 설득했다.
“아니 맨날 도와주는 것도 아니고 한 번만 도와주겠다고요. 한 번만 끌겠다고요.”
겨우 3주 남짓이지만, 내가 있다 사라진 자리에 들어찰 아쉬움 때문일까. 아영은 잠시 생각하더니 가장 힘든 구간에서만 도와달라고 했다. 정확히 말하면 ‘다음 고비’에서 끌어 달라고. 고비는 금방 찾아왔다. 완만한 오르막길의 경사가 높아지는 구간. 나는 바통터치하듯 자전거핸들을 넘겨받았다.
그냥 걸어도 힘든 오르막을 자전거를 밀고 가자니 더 빨리 숨이 차올랐다. 좁고도 가파른 오르막길은 난이도가 있었다. 5분도 안돼서 힘이 부쳤다. 파란색 자전거는 색깔 덕분인지 겉보기에 가벼워 보였는데 꽤 무겁다는 점이 이상한 배신감으로 돌아왔다. 바구니에 담긴 납작 복숭아 두 줄의 무게도 미웠다. 비록 한여름까지만 먹을 수 있는 복숭아, 달디 단 복숭아라고 할지라도. 조금이라도 무게를 줄이는 게 현명한 방법 같았다.
아영은 일을 마치고 수시로 장을 봐왔다. 식재료를 자전거 바구니에 담고, 핸들에 걸치기도 했다. 신선한 재료로 맛있는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덕분에 아일랜드에 살면서 나도 다양한 음식을 맛봤다. 아영은 칠면조 가슴살로 돈가스를 만들고, 돼지고기 목살로 제육볶음을 만들었다. 마라샹궈, 떡볶이도 단골 메뉴였다. 대강 좀 해먹이면 안되냐는 말을 에둘러 식사 준비에 참 정성이라고 말했더니 아영은 말했다.
“잘 먹이기라도 해야죠.”
그 말속에는 아이들의 하교 후 시간을 길게 가지지 못하는 미안함이 숨겨져 있었다. 비교적 출퇴근 시간이 유동적인 유라 커플이 남매의 등하교와 체육관 수업 픽업을 돕고 있었다. 덕분에 아영은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그 고마움과 미안함을 식단에 쏟고 있었다. 그러니 대충 좀 먹자는 말은 아영에게 통하지 않았다.
호기롭게 자전거를 끌겠다고 했지만 후회가 드는 참이었다. 속도가 점차 느려지고 땀도 삐질삐질 났다. 아영이 눈치챈 듯 금세 뒤따라 잡고는 말했다.
“언니, 이제부터 내가 끌게요.”
나는 자존심 때문에 “아니에요, 좀만 더 끌게요.” 거절했지만 몸은 제안을 받아들이라 말하고 있었다. 결국 몇 걸음 못 가 슬쩍 핸들을 아영에게 넘겨주었다. 아영은 다시 핸들을 잡고 씩씩하게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올랐다. 뻘쭘한 나는 뒤에서 잔소리처럼 말했다.
“장 볼 거 있으면 미리 메시지를 보내라고요. 시티 가서 장 봐올 테니까.”
“저 바구니 안에 아무것도 담으면 안 된다.”
나는 자전거를 금방 넘겨줬다는 민망함과 덧붙여 잔소리처럼 말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식재료가 담긴 자전거를 끌고 오르막길을 오르는 아영의 시간을 생각했다. 누가 도와줄 수 없고,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15분. 잠시지만 ‘내 짐’이라고 인식해야만 꿋꿋해지는 시간을 내가 방해한 건 아닐까 하는 옅은 우려까지.
“아영 씨 순례자길 만들어야겠어요. 자전거 끌고 올라가는 길.”
나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말했다. 좀 더 말하면 깐족거리는 것 같아서 그만뒀지만, 목적지까지 도착한 사람에게는 시원한 아일랜드 맥주를 주는 것까지가 상품이었다. 매일 새벽 네 시에 일어나 아침식사와 아이들 점심 도시락을 싸고 일터로 향하는 아영. 하루에 여덟 시간 식당에서 일하고 돌아와 수영장에 갔다가 저녁을 먹고 밤 아홉 시면 잠드는 아영의 하루하루를 생각했다. 자신이 페달을 밟지 않으면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않는 매일을.
다음날, 같은 오르막길. 우리 앞에 다섯 살쯤 돼 보이는 어린아이들이 자기 덩치보다 큰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고 있었다. 계단 옆 자전거 통행로에 자전거를 놓고 핸들을 잡은 채 천천히 올라가는 모습을 보며, 아영이 웃으며 말했다.
“언니, 보이죠? 저렇게 조그만 아이들도 혼자 자전거 끌고 갈 수 있어요.”
우리는 앞서 걷는 어린아이들의 뒤를 따라서 걸었다. 각자의 짐을 들고 묵묵히. 물론 가파른 ‘고비’에선 자전거를 나눠 끌기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