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명, 운명, 그리고 우연

2막. 초승


운명은 극복할 수 있지만,

숙명은 반드시 이루어질 인과라 했지요.


그 말을 듣고

오랫동안 생각했습니다.


나는 당신과 숙명이길 바라지 않습니다.

반드시 만나야 했다는 말은

당신의 뜻과 무관하게

우리가 이어졌다는 뜻이니까요.

그 어떤 강요도, 억지도

우리 사이에 두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과 운명이라 부르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 무거운 이름으로

우리를 가두고 싶지 않으니까요.

서로의 선택도 바람도 없이

정해진 길을 따르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니까요.


그래서 이렇게 생각하려 합니다.

당신과 나—우리는,

수많은 인연을 스쳐 온 끝에

우연 속에서 마주한 필연.


그저 자연스럽게,

아무 의무도 없이,

그러나 분명한 의미로

함께 나아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