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막. 그믐
SNS 팔로워 1000
카카오톡 친구 1000
사람들은 내가 친구들이 많다며
부럽다고들 한다
갓생 산다고 날 떠받들여 준다
하루에도 수백 개씩 올라오는
인스타그램 속 빨간 원
수많은 카카오톡 프로필
하지만 먼저 연락할 순 없었다
-
아침에 눈을 뜨고 제일 먼저
스마트폰 화면을 켠다
잠들기 전까지도 손에서 놓지 못했던 폰이
밤새 내 자리를 지켜준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내 손에 돌아온다
눈곱도 그대로인 채
눈을 찌푸리고 화면 속에서
흘러넘친 빛을 담는다
알림은 많다
하트, 댓글, 스토리 멘션, DM, 톡…
단톡방도 늘 조용하지만은 않다
웃고 떠들고 사진을 보내며
자신들의 일상을 공유한다
나는 그 사이에서 답장을 하거나
가끔은 이모티콘을 보내곤 한다
그러면 나도 그 사이에 있는 것만 같았다
-
그런데 팔로워들 중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이들은 몇 명이나 될까
카카오톡 친구들 중
내가 오늘은 진짜 힘들다고 말할 때
바로 답이 올 친구들은 몇 명일까
아마 숫자보다 한참 적겠지
그럼에도 사람들은 나보다 화면 속 나를 더 믿는다
너 진짜 인기 많다- 너 인싸잖아-
그 말이 칭찬일 줄 알았다
그래서 웃었다
웃어야 할 것 같아서
-
난 먼저 연락할 수 없다
연락처도 있고, 프로필도 많고,
대화창도 많지만,
그런데 누군가를 고르려면
손가락이 마냥 멈춘다
누구에게 보내야 할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내가 먼저 연락하면,
아무 말 없이
내 몇 마디를 끝으로 그 채팅방이 멈출까 봐.
그게 너무 두렵다
그럴 바엔
아무 말도 안 하는 게
차라리 낫다
-
나는 가끔
카카오톡 친구 목록을 끝까지 내려본다
프로필 사진과 상태 메시지가 달라져 있고
그 옆에는 예쁜 이모티콘이 붙는다
나는
그 모든 변화가
나랑은 상관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친구인데
연결돼 있는데
왜 이렇게 먼 건지
나도 잘 모르겠다
-
인스타그램 속 빨간 원들은
다들 오늘도 행복하다
나는 그걸 넘기면서
습관처럼 반응을 누른다
하트를 누르면
관계가 유지되는 줄 알았다
그런데 하트는
누르기 쉬운 만큼
가볍다
그냥 스쳐 지나가기 민망해서
누르는 무언의 약속
그 모양과는 달리 그 뜻은 정말로 가볍다
가벼워서
내 마음까지 가벼워지는 게 아닐까
-
팔로워 1000, 친구 1000
합치면 2000
근데 이상하게
내가, 또는 내게
기대는 사람은 0명 같다
연락할 사람도
부를 사람도
바로 떠오르는 이름도
0
-
가끔은 생각한다
내가 인싸가 아니라
그냥 많이 저장된 사람이 아닐까
수많은 사람의 목록 속에
한 줄로 존재하는 사람
찾으면 나오긴 하는데
굳이 찾지는 않는 사람
-
새벽에
카톡을 켠다
단톡방은 여전히 굴러가고
여전히 떠들고
여전히 살아 있다
나도 살아 있는 것 같다
그 안에서는.
반면
내 방은 조용하다
너무 조용해서
핸드폰 진동이 멈추면
숨소리만 들린다
내 숨소리만, 들린다.
-
연락을 해볼까
정말 딱 한 명에게라도
그냥 속 시원하게 털어놓을까
나는 고심하며 한 명을 고르고
대화창을 연다
한참을 본다
그런데 어떤 문장도
완성하지 못했다
뭐 해, 요즘 뭐 하고 지내?
한 번 볼까? 시간 돼?
많은 상황을 시뮬레이션해봤지만
막상 무언가를 고르진 않는다
보내는 순간, 내가 너무 솔직해질까 봐
보내는 순간, 내가 너무 외로워 보일까 봐
그래서 결국
창을 닫는다
-
2000 그리고 0
화면 속에서는
사람이 넘쳐나는데
내 손끝에서는
아무도 시작되지 않는다
내 주위에는 그 무엇도 없다
나는 오늘도
남들의 스토리를 보고
남들의 상태를 읽고
남들의 사진에 하트를 남긴다
내가 먼저 연락할 수 없는 게 아니라
먼저 연락했을 때
아무도 내 편이 아닐까 봐
그게 무서워서
그냥 0을 선택하는 걸지도
-
내일도 빨간 원은 뜰 거다
카톡 목록도 끝이 없을 거다
내 숫자도 그대로일 거다
2000
그리고
아마도
0
그래서 나는 오늘도
화면을 켠다
사람들이 많아서
외롭지 않게 보이려고
하지만
보이는 것과
사는 것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