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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쇼 Aug 22. 2021

복지, 대량생산, 기본소득

이동권 불평등 해소방안은, 전 국민 택시비 vs 철도, 버스노선 신설

쓰다 만 글들을 다시 뒤척인다. 회사를 옮긴 뒤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다. SNS나 카톡을 통해 '정치적' 발언을 제멋대로 쏟아냈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한 자 한 자 매우 조심스럽다. 


그래도 여기서는 내 마음대로 써보려고 한다. 나의 의문들을 쏟아내고, 공식적인 글로 풀어낼 원천을 만들어보려 한다. 기승전결 같은 건 없다. 의식의 흐름대로다. 대선을 앞두고 생긴 여러 가지 고민들. 어쩌면 이 자리가 나의 취재 계획을 세우고, 취재 주제를 만들고, 기사를 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여럿의 지혜를 빌리고 싶다. 나는 아는 것이 많지 않다. 똑똑하지도 않다. 그저 ‘상식’이라는 여의도판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을 얻고자 한다. 학습을 지향하지만 아카데믹한 글은 아니다. '의식의 흐름대로'에 방점을 찍었다. 무릎을 탁 치는 그런 글보다는 그냥저냥 저런 이야기도 있구나, 하는 수준을 지향한다. 

가끔 세상사는 앞으로 나서고 싶지 않을 때 혼자 나서게 되더라. 바닥에 앉은 파란 옷 입은 사람이 접니다. 제가 앞에 앉은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한발 물러난 겁니다.


오늘의 의문. 이동권에서의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해. 모두에게 택시비를 지급할 것인가. 아니면  돈으로 버스 노선이나 철도를 새로  것인가.


복지라는 개념은 대량생산 덕에 가능해졌다.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물건을 팔 시장이 더욱 커지면서 잉여생산물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인류는 클로버를 심거나, 숲을 태우지 않고도, 화학비료를 통해 더 많은 식량을 재배할 수 있었다. "식량 생산은 1차 함수로 증가하는데 반해, 사람 머릿수는 2차 함수로 증가, 일정 수준에 다다르면 인류의 대량 사망은 피할 수 없다"던 맬서스의 우려는 폭발적인 생산성 향상으로 상쇄됐다.


물론 대량생산시대에 그림자는 더욱 짙어졌다. 사유재산권이 폭넓게 인정되면서 노동자와 사용자의 격차는 더욱 커졌다. 자연물에 개개인이 들인 '노력'을 인정하고 누구나 노력을 기울이지만, 그 노력 성과는 천차만별이었다. 복지는 그 갭을 메우기 위해 출발했다. 함께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로부터 ‘세금’이라는 공공재원을 걷고 이를 사회를 유지하는데 쓰자는 개념이다.


사회 유지에 필요한 공공재는 한두 개 주문제작이 아닌 대량 구매와 대량소비의 원리로 작동한다. 교복 공동구매를 생각해보자. 개개인이 한 두 벌을 주문 제작하는 것보다 수백 벌을 한꺼번에 사서 옮긴다면 교복 하나하나의 가격은 더욱 저렴해진다. 교복 한두 벌을 1.5톤 트럭 한 대로 옮기는 것보다, 교복 3백 벌을 1.5톤 트럭 한 대로 옮긴다면 운송비는 더욱 저렴해진다. 생산에서도 마찬가지다. 교복 여러 벌을 만들 수 있는 재료를 한 번에 받아 생산을 한다면 재료 운송비가 절감된다. 반복되는 노동을 통해 만드는 사람도 숙련도가 높아지고 더 짧은 시간에 더 많은 교복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이른바 ‘한계비용’이 점점 낮아지는 과정이다.  


복지도 마찬가지다. 예컨대, 한 도시에 도로와 수도, 전기를 공급하는데 개별 가구에 별도로 제공하는 것보다는 대량으로 한 번에 제공한다면 개별 가격은 저렴해진다. ‘규모의 복지’는 '규모의 경제'로만 실현이 가능하다. 대량 복지의 대량 공급. 더 저렴한 가격으로 더 많은 효용을 누리기 위해 전국민은 ‘세금’이라는 거대한 공공기금을 조성한다. 인간은 이기적이면서도 서로를 아낀다고 생각한 애덤 스미스의 구상은 지금의 ‘수정 자본주의’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새로운 과제가 발생했다. 전에 없는 물질적 풍요를 안겨주던 기술의 발달은 노동의 소외를 낳고 있다. 생산과 물류 기술의 발달은 중간과정에 투입되는 노동을 점차 제외시켰다. 가격의 하락은 소비자에게 더 많은 선택의 자유를 줬지만 곧 필요 노동의 감소, 실업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계비용 ‘0’ 사회의 이면이다.

      


현재 민주당 대선 경선과정에서는 두 갈래로 대책이 나오고 있다. 하나는 복지의 확대고, 하나는 기본소득이다. 복지 확대는 이낙연, 정세균 후보가, 기본소득은 이재명 경기지사가 내놓은 대책이다.   


먼저 복지 확대부터 보자. 이낙연은 소득·돌봄·의료·주거·고용·교육·문화·환경·안전 등의 국민 삶에 근접한 영역에서 국가의 책임을 높이겠다고 한다. 최저임금의 인상, 돌봄에서의 국가 책임 확대, NHS까진 아니더라도 의료비 감소, 주거환경 개선, 교사 고용 확대 등등이겠다. 그는 특히 “국가가 보장해야 할 최저기준과 지향해야 할 적정기준”을 말했다. 말은 복잡하지만 현재의 복지 수준을 지금보다 더 높이고, 더 높일 수 있는 목표를 정해 추진하겠다는 의미다. 재원은 말을 아끼고 있지만 아무래도 현행 저복지-저부담 체제에서 중복지-중부담 체제로의 전환을 말할 것으로 본다.  


정세균도 각종 복지 확대를 내놨다. 그는 ‘증세’를 대놓고 꺼내 들었다. 백브리핑장에서 "선거에서의 금기인 증세를 꺼낸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물으니 “이제 국민들도 정직한 사람을 뽑는다. 복지 확대를 이야기해두고선 증세를 말하지 않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것이다”라고 답했다. SK나 NY나 결국 말하는 바는 크게 다르지 않다. 국가가 국민 삶을 더 책임지고 더 뒷받침하겠다, 그 재원은 모두가 부담하는 세금으로 하겠다. 문재인 정부가 지향하는 복지 국가와 방향은 같지만 그 벡터의 크기만 다르다.


이재명은 기본소득을 내놨다. 기본소득은 국민이면 누구나 받는 '무차별적' 돈이다. 현행 복지체계를 유지 혹은 일부 확대하면서 월 8만원에서 추후 월 32만원까지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했다. (아직 완벽히 공부를 하지 못했지만) 기본소득은 어쩌면 새로운 방식의 수정 자본주의 체제다. 기술의 발전으로 생산성은 극대화되고, 그에 따른 필요 노동자 수는 점차 0으로 수렴하고 있다. 부의 양극화를 넘어, 부의 생산마저도 양극화되는 시대, 모든 이들에게 돈을 지급해야 사회가 유지될 것이라는 대책이다.


이재명은 세출 조정과 예산 우선순위 조정, R&D 예산 등 조세 감면을 축소하는 방법으로 각각 25조원씩, 총 50조원 재원을 마련하고 국토보유세 등으로 100조원을 조성할 수 있다고 했다. 이후 기본소득의 효능감을 느낀 사람들의 공감대를 이뤄간다면 증세를 통해 보다 더 충분한 기본소득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고 한다. 이재명 경기도나 이재명 성남시를 생각해본다면 어떻게든 기본소득 재정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기본소득은 효능감이 상당하다. 복지와 같은 ‘인프라 투자’에 비해, 직접적으로 돈을 주는 만큼 개인은 쉽게 효능을 느낄 수 있다. 재난지원금 지급에 찬성 여론이 높은 것도 다른 이유가 아니다. 또 기본소득은 먼 훗날, 대량실업사태에 대한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동안의 복지 시스템에서 항상 지적받아온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도 있다. 


핀란드는 지난 2017년부터 2018년까지 기본소득 실험을 했다. 25세부터 58세까지 임의로 선정한 실업자 2000명에게 매달 560유로를 2년간 지급하고, 2년 뒤 기본소득을 받지 못한 실업급여 대상자들과 취업률을 비교해보자는 취지다. 취업률에 있어 의미 있는 결과는 나오지 않았다. 다만 기본소득 지급 대상자들은 건강이나 스트레스 등 행복지수가 더 높다는 결과가 도출됐다고 한다. 당장 눈앞에,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을 준다면 싫어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한국에서는 대부분 일회성 지급 사례만 있다. 경기도는 재난기본소득이라 부르지만, 다른 시도단위에서는 재난지원금이라 부르는 그것이다. 코로나19 탓에 소비 절벽을 눈앞에 두던 상황이었던 만큼 일시적인 도움은 당연히 됐을 터다. 특히 '총수요 안정'이라는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지속됐을 때 효과는 의문이다. 장기 효과를 지켜봤을 때 복지 확대와 기본소득의 승자는 누구일까. 


전지구적 거의 유일한 장기 실증 사례는 알래스카다. 알래스카는 지하자원을 통해 얻는 수익 일부를 영구기금으로 조성, 주민들에게 매년 1000달러에서 2000달러가량의 돈을 나눠주고 있다. 효과는 있다. 알래스카의 지니계수는 지난해 기준 0.422로 워싱턴 DC 0.532에 비해 낮은 편이다. 물론 고려할 점이 있다. 알래스카나 사우디아라비아 등 비교적 거버넌스가 안정되고 지하자원이 풍부한 나라에서는 ‘공동재산을 함께 쓰자’는 명분을 세우기 쉽다. 그에 필요한 재원 조달도 어렵지 않다.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재원 조달 수단으로 토지보유세를 제안한다. 토지에서 생겨난 부가가치를 전 국민 모두에게 돌려주자는 취지다. 지급 규모는 소액을 먼저 지급, 사람들이 효용성을 느낀다면 추가로 증세, 더 많은 기본소득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다. 추미애 후보도 '국민 배당'이란 이름으로 토지에서 거둔 세금을 일부 국민에게 나눠주자는 입장이다. 


그런데 그와 같은 대책이 지하자원에 대한 수익금을 나누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낼 수 있을까. 토지보유세를 높이는 것은 또 다른 부작용이 없을까. 토지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개발 유인을 떨어뜨려 오히려 집값만 높인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당장에 박원순 서울시가 재개발-재건축은 막고 도시재생에만 힘쓴 결과를 보자. 안그래도 서서히 오르던 집값이 유동성 폭탄을 맞고 지금에 이르렀다. 현재까지 재원 마련에 대한 청사진은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어떻게든 재원을 마련하겠다" 수준이다.


사실 재정이라는 것은 국민 모두가 동의하면 원칙적으로 조정이 가능하다. 극단적인 예지만 전국민에게 정부 예산을 쪼개 1억원을 전국민에게 지급하겠다는 H씨를 보자. 그는 자신에 대한 지지를 명분으로 한해 국가 예산 550조원을 '해체'해 돈을 나눠주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세상일이 그렇게 쉬운가. 예산 전용이나 삭감이 그렇게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현 체제를 유지, 수선하는 데만도 적잖은 돈이 소요돼서다. 매년 본예산 심의는 여야가 밤샘 회의를 하고 정부와 힘겨루기를 통해 이뤄진다. H씨의 예산 해체 공약은 사실상 국가로서의 책임을 버리겠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래도 이재명이라면 다르니까. 이재명이 자신 있게 "성남시에서 신호등 정비사업해보니 예산 조정이 어려운 것만은 아니었다"라고 말한 대로 세출조정, 조세 감면 축소를 통해 연 50조원을 재정을 마련할 수 있다고 치자. 하지만 그 돈을 개인별로 지급하는 것과, 학교를 더 짓거나 집을 더 짓는데 쓰는 것, 하다 못해 우주시대를 대비하는 등으로 쓸 수도 있다. 더 많은 인프라를 짓는 것과 국민 개개인에게 월 8만원~32만원을 쥐어주는 것. 어떤 것이 효용성 측면에서 더 효과가 있을까.


당장 기본소득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 그동안의 복지 체계가 시행 내내 ‘사각지대’가 있었다는 것도 사실이지만 기본소득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할까. 만약 다른 후보들 공약대로 복지 확대를 통해 더 싼 가격에 인간다운 삶을 보장할 수 있다면. 또 복지 사각지대를 메우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복지 수준의 확대일까 아니면 무차별적 기본소득의 지급일까. ‘일하지 않는 사람들을 위해 내 세금을 무차별적으로 줘도 된다’는 조세저항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모두에게 혜택이 골고루 가기 위해 돈을 쓴다면, 더 큰 사회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그 돈을 쓰는 것이 낫지 않을까. 우리 사회를 화석연료 기반이 아닌 재생에너지 기반으로 전환하는데 투입한다면. 중앙집권적 에너지 사회를 분산형 에너지 사회로, 스마트그리드 현실화를 이룩한다면 기후위기라는 공공의 위기를 넘기는 방향으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유치원 무상교육이라도. 


원래 국가 예산이라는 것 자체가 수익성이 나지 않는 분야라도 장기적 관점에서 필요하다면 쓰는 돈이지 않은가. 지금 당장. 기본소득이 필요할까. 한계비용 '0'사회를 대비하고, 복지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장기적 연구과제라면 모를까. 당장 2022년부터 대통령에 취임할 사람이 그리는 청사진으로는 적절할까. 여튼 이번 대선, 그동안의 복지 확대-축소 수준이 아닌, 앞으로의 국가 혹은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방향을 두고, 나름의 재밌는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특정 후보에 대한 호오를 떠나 취재를 하며 제가 궁금했던 점, 대선을 앞둔 가운데 시대적 과제 등에 집중해보려 합니다. 저만의 생각을 풀어내는 공간으로 쓰려 합니다. 제가 다니는 회사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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