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모님의 많은 말들이 기억에 남아 있지 않지만,
이 말만은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너는 가릴수록 이쁘다.
엉겁결에 나온 말일 수 있겠다 싶어 왜냐고 묻진 않았지만,
왜일까 하고 곰곰 생각하며 몇 년을 보냈다.
‘너’ 대신 ‘나’를 넣어 보자니,
이건 미우니 가리라는 말이거나
내 얼굴보다 가린 물체가 더 낫다는 뜻 같았다.
하지만 빈말에 서툴고, 어지간해서는 예배당 거르지 않는 분이라
더 이상의 망설임 없이 좋은 뜻으로 해석의 폭을 좁힐 수 있었다.
가리고 또 가려 가며 보았지만
미적 대상은 줄어들 뿐, 미의 발견은 오리무중이었다.
가리고 가리다 빈말의 경계에 거의 다다랐을 무렵,
거기 눈이 있었다.
세상 그 무엇도 담아낼 수 있는 작은 그릇은
주위를 가릴수록 맑게 빛났다.
속내 알아차리고도 끝내 왜인지 묻지는 않았다.
몇 년 더 고민할 일은 없을 테니까.
눈이고 뭐고 다 가리고 나면, 결국 남는 건 마음뿐일 테니까.
가릴수록 이쁜 사람들이 곳곳에 있다.
화촉 밝히는 날이면 면사포 쓴 신부가 가장 이쁘고,
성형외과와 사진관에서는 원판 대신 내가 아니어도 좋은 사람들이 이쁘다.
동네 길모퉁이의 담배 가게를 나서던 선글라스 낀 청춘도 이뻤다.
색이 하얗든 검든 노랗든,
코로나19 팬데믹의 긴 터널 속에서는
입과 코를 묵묵히 가리던 사람들이 이쁘디이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