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 비요일- Drizzly Day

비 오는 날의 위로 - With Piano Sis. & 형부

by Vibbidi Vobbidi
piano 3.png 비 오는 시드니 주택가

비가 오래 내리는 날이면 창밖의 소리가 갑자기 낮아진다.
시드니의 주택가 저녁은 원래도 고요하지만, 비가 얹히면 그 고요가 한 겹 더 낮게 깔린다. 가로수 불빛이 젖은 길 위로 길게 번지고, 차 한 대 지나지 않는 시간.


내가 사는 곳에서 5분 거리엔 20년 지기 지인들이 산다.

피아노 선생님인 언니. 자연스럽게 ‘피아노 언니’라 부르게 된 사람. 그리고 늘 같은 속도로 움직이며 옆을 지켜주는 멋진 형부. 걸어가도 금세 닿을 거리지만, 그 길의 적막함을 혼자 걷기엔 조금 쓸쓸해 차로 간다.


piano1.png Song-e (송이)

그 집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문 가까이에 서면 송이가 저편에서 서둘러 긁는 소리가 들린다.

문을 열며 “송아, 알았어. 알았어.”를 몇 번이고 중얼거리는 건 이제 거의 의식처럼 굳었다. 예전처럼 작은 몸으로 달려들진 못하지만, 꼬리는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속도로 돌아가며 “왔어? 기다렸어.” 하고 먼저 인사를 건넨다.
그 집 공기 절반쯤은 송이가 만들어놓는 것 같다.


문턱을 넘으면 커다란 TV가 있는 거실이 보이고, 화가인 언니 동생의 큰 그림이 평화롭게 벽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옆 주방에서는 언제나 언니의 손끝이 움직인다.
피아노 언니라고 부르는 이유는 단지 직업 때문이 아니다. 무엇이든 자기 호흡으로 조율해 내는 그 손끝의 리듬이, 정말로 피아노 한 대를 앞에 둔 사람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새로운 요리든 처음 보는 도구든, 건반을 만지듯 금세 자기 것으로 만든다.


형부는 늘 그 옆에서 같은 템포를 유지한다.
둘 사이엔 힘겨루기 같은 긴장감이 없고, 오랫동안 함께 맞춰 온 연주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쪽은 오히려 나고, 내가 잠시 줄을 놓아도 괜찮은 자리를 두 사람은 언제나 여유롭게 마련해 준다.


그 집에는 음악이 늘 흐른다.
형부의 셀렉션은 이상하리만큼 거부감이 없다. 크게 들리지도 않고 특정 장르도 아닌데, 부엌의 조용한 움직임과 잘 섞여 말보다 대화를 먼저 불러온다. 주제를 정한 적도 없는데 어느 순간 서로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얹히고, 별것 아닌 말들이 갑자기 웃음이 되곤 한다. 몇 시간을 앉아 있어도 시간이 흘렀다는 느낌보다 “이 저녁 한 장면 속에 오래 머물렀구나” 하는 감각이 더 크다.


창가에 얼굴을 가까이 두고 유리를 따라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 집의 저녁 풍경이 겹쳐 올라온다. 송이의 꼬리, 언니의 손끝, 형부의 무심한 듯 따뜻한 농담, 그리고 배경에 잔잔히 흐르던 음악.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그 집의 느슨한 속도는 오늘의 생각들을 천천히 풀어놓는다.


사람이 주는 위로는 거창한 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조용한 장면 하나에서 시작된다는 걸 나는 이런 밤마다 다시 기억한다.



EPILOGUE – 피아노언니 송이엄마의 시크릿 레시피

piano3.png

비가 오래 머무는 날이면 주방도 천천히 움직인다.
그 느린 온도 속에서 더 환해지는 맛이 있다며, 피아노언니 송이엄마가 어느 날 조용히 레시피를 건네줬다.

“이거… 우리 집 시크릿인데, 너랑은 나누고 싶어.”

좋은 걸 나누는 데 주저가 없는 사람이라 그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오늘의 에필로그에는 그 레시피를 기록해 둔다. (허락받았다.)


모로코식 치킨 타진 (1kg 기준)

Piano Sis. 송이엄마의 Secret Recipe


재료

치킨 (닭다리 추천) 1kg

올리브오일 조금

감자

토마토

그린 올리브

양파

강황가루 약간

마리네이드용 재료

다진 마늘 1T

올리브오일 125ml

파슬리·고수 각 한 줌

사프란 1꼬집 (따뜻한 물 1T에 10분 우려두기)

절인 레몬 속 1/4개 (preserved lemon, 짭짤·상큼)

하리사 1T (북아프리카식 매운 페이스트 / 생고추 갈아서도 대체 가능)

토마토 페이스트 1T

후추 약간

생강가루 1/4t

큐민 1/4t (따뜻한 향)

파프리카 파우더 1T

→ 마리네이드용 모든 재료를 섞어 치킨 1kg에 고루 발라 30분~2시간 재워둔다.


조리

냄비에 올리브오일을 약간 두르고 양파를 갈아 넣어 바닥을 만들듯 펼친다. (볶지 않는다)

그 위에 마리네이드 한 닭을 올린다.

강황을 가볍게 뿌리고 감자, 토마토, 그린올리브, 절인 레몬껍질을 순서대로 올린다.

(타진이 없어도 무쇠 냄비나 두꺼운 스테인리스 냄비면 충분하다.)

중불 15–20분, 그다음 약불에서 1시간 천천히 익힌다.


* 맛의 핵심은 불의 세기와 느린 시간.
피아노언니가 말하던 것처럼, “음식은 조급함보다 마음을 먼저 알아보니까.”
그리고 또,

“특별한 음식은, 그 음식에 맞는 그릇을 사용해야 더 예쁘게 완성된단다.”

그래서 오늘은, 그 말처럼 천천히 — 그리고 예쁘게 — 준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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