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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석주 변호사 Nov 27. 2020

관계의 끝맺음, 그리고 명의신탁


1. 

날씨가 추워질수록 변호사 사무실을 찾는 사람들도 뜸해지는 요즘입니다. 조금 숨돌릴 시간이 생길 때면 저는 그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서면이나 사건들을 들여다 보곤 합니다. 오늘도 어느때처럼 쟁점이 복잡한 사건의 해결방법을 고민하고 있던 때였습니다. 명의신탁에 대한 상담 2건이 거의  동시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어렸을 때부터 죽마고우였던 친구의 명의로 부동산을 매수하였는데 그 후 친구와 관계가 악화되었고 친구가 연락을 전혀 받지 않고 부동산 소유권 이전을 거부하고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다른 사건은 동거를 하던 비혼 커플 사건이었습니다. 동거를 하면서 신용불량자인 남자 대신 여자 명의로 아파트를 매수하였는데 이후 남자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고 여자가 아파트를 나오게 되면서 여성이 소유권을 돌려주지 않을 방법이 있는지를 묻는 사건이었습니다.

2. 

상담을 요청한 두 명 중 한명은 명의를 빌린 사람이고 다른 한명은 명의를 빌려준 사람이므로 그 이해관계는 전혀 다릅니다. 그러나 사무실을 찾아 저에게 격앙된 어조로 털어놓은 이야기의 내용은 비슷하였습니다.


 "변호사님, 그 사람이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제가 그런 사람을 믿었다니요. 제가 그때는 미쳤었나봐요."

 " 역시 사람은 믿는게 아니었습니다." 


법률적인 쟁점에 대한 내용보다는 믿었던 사람의 배신감과 증오의 감정에 대한 토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부동산 문제를 주로 다루다보니 명의 신탁 문제에 대한 상담도 상당히 많은 편입니다. 명의신탁의 법리는 이미 판례에 의해 정립되어 있기 때문에 문제해결방법이 비교적 명확한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명의신탁 문제 상담의 상당 시간은 상대방이 저지른 악행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룹니다. 


명의신탁은 실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었었던 사람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만약 서로 잘 모르는 관계라면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섣불리 명의를 빌리고 빌려주지는 못하겠지요.명의를 빌린 정도로 믿었던 사람과의 관계가 틀어지고 그로 인해 소유권 문제까지 발생하게 되면 그로 인한 배신감이 극에 달하는 것입니다. 명의신탁 상담은 감정적이고 격한 이야기가 오고 간다는 점에서 가사사건 상담과 비슷한 부분이 많습니다.

3. 

그런데 생각해보면 명의신탁 당사자들은 과거에 누구보다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관계였을 겁니다. 


"너만 믿는다."


"걱정말고 있어라. 네가 원하면 언제든지 소유권을 넘겨 주겠다" 



이렇게 구두로 약정하면서 명의신탁 계약이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관계는 한 순간 사소한 것들로 악화되거나 단절되고 신뢰관계는 한 순간에 원수지간으로 변질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 그 벌어지는 속도는 놀랄 정도로 빠릅니다. 원래 가까웠던 만큼 멀어지는 것입니다. 부부가 재판상 이혼할 때도 상대방에 대해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누구보다 치열하게 감정싸움을 하게 됩니다.


4.


명의신탁 상담을 하면서 저는 관계의 끝맺음 그리고 잘 헤어지는 법에 대해서 생각합니다. 인간관계는 항상 변동되는 것이고 영원하면 더없이 좋겠지만 피치 못하게 관계가 어긋나고 단절될 수도 있습니다.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 그것을 억지로 부여잡고 원상으로 복구시키려는 노력을 하다가 오히려 그 관계가 더 악화되는 경우도 많이 보았습니다. 서로 믿고 신뢰하던 사람에게 배신감을 느끼며 최악으로 마무리되는 것보다는 관계가 끝나감을 느낄 때 잘 헤어지는 것, 그것이 무엇보다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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