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뛸 때, 몽블랑!

1화. 가슴 뛴다는 이유로 무작정!

by 예몽

몽블랑, 언젠가 한 번쯤 들어본 적 있는 만년필 브랜드 정도 되는 줄 알았다. 그것이 170km에 달하는 트레킹을 의미하는 말인 줄 알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 여행을 좋아하는 친구부부를 만나고 나서였다.


친구가 그곳에 간다고 했을 때, 이것저것 따지지 않고 선뜻 같이 가자고 말했던 건 몽블랑이 주는 몽글몽글한 느낌 때문이었을 거다. 어쩌면 몽블랑이 주는 또 다른 느낌으로 설렘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몽블랑’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가슴이 쿵! 하고 뛰었다.


가슴 뛰는 일을 선택하는 것은 무모할지언정, 지나고 돌아보았을 때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기 위한, 퇴직 후 새로 생긴 내 결정법이기도 했다. 되돌아갈 수 없는 시간의 띠 위에서 주저하지 않고 가슴 뛰는 쪽을 선택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지나고 보면 옳은 판단이 될 거라 믿는다. 가슴 뛰는 일들이 모여 결국 내 정체성이 되더라.


가슴이 뛴다는 것은 무의식이 간절히 원한다는 걸 의미할지도 모른다. 무의식이 외치는 소리에 귀 기울여 따르다 보면 그것이 내 삶의 궤적이 될 것이고, 그것은 곧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뚜렷한 증거가 될 것이다. 부족함과 실수투성이였던 지난날을 보내면서, 새로 맞이하는 두 번째 인생은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다고 조용히 결심한 적 있는데, 내 무의식은 은밀한 그 결심을 기억하고 있었나 보다. 비교적 생계에 자유로운 2막 인생이었기에 가능한, 가슴 뛰는 일을 먼저 선택하고, 계산은 나중에 하는 용기를 내어 보기로 했다.


어쨌든 우리는 '1년 뒤에 몽블랑 트레킹을 한다.'는 사고를 쳤다. 그 후로, 친구는 다음 해 7월에 진행할 몽블랑 트레킹 계획서를 보내왔고, 트레킹 일정에 의하면 13개월이 남은 시점이었다. 그날부터였다. 남편이 거북걸음으로 하루 세 시간씩 산을 오르고 둘레길 걷기에 진심이 된 것은. 동행자들에게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걸음 속도를 조금씩 올리고 체력을 키워갔다.


사실, 남편은 7년 전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거북걸음이 되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지게를 진 채 산을 오려 내린 날쌘돌이로 잔뼈가 굵었던 남편이 한창 멋지게 자신의 삶을 가꿔 갈 중년에 거북걸음이 된 것은 형벌에 가까웠다. 부정하고 싶었던 현실을 내 것으로 인정하기까지 7년의 세월이 흘렀다. 인생이 알 수 없다는 것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일 거다. 내 앞에 펼쳐질 인생이 이런 길을 걷게 될 줄 나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멈추지 못한다면 이런 인생도 살아내야 하는 법이다.


밥심으로 살던 남편은 유럽식 아침 식단으로 바꿔보자고 제안했다. 텃밭에서 따온 상추와 채소들로 만든 샐러드와 곡물식빵은 우리 집 아침 식단이 되었다. 빵과 간편식으로 반나절의 체력을 버틸 수 있도록 몸을 적응시켰다. 우리는 모든 일상을 트레킹 일정에 맞추었다. 트레킹에 맞는 식단, 트레킹을 염두에 둔 하루 운동 분량, 트레킹을 견딜 체력 키우기 등.


거북씨는 아침마다 주변 산을 올랐다. 몽블랑 트레킹에 필요한 물품을 배낭에 넣을 수 있는 최고 무게가 7kg 이내(기내반입 허용무게)였는데, 당장 필요한 물품이 아니어도 비옷, 침낭, 간식, 기타 물품을 5kg 정도 채워 배낭을 지고 집을 나섰다. 9일 동안 7kg의 배낭을 지고 트레킹을 하기 위한 체력 훈련인 셈이다. 비가 오는 날에도, 폭염경보가 뜬 날에도, 간편식을 챙겨 하루 3-4시간씩 10킬로 이상을 집 주변 산과 둘레길을 중심으로 걸었다.


뇌경색 후유증 초반에 남편이 걷기 시작했을 때 넘어질 것이 우려되어 한동안 나도 뒤에서 따라 걸었다. 남편이 걷는 모습을 뒤에서 보는 것은 나로서는 쉽지 않다. 걷는 속도에 맞추어 그냥 뒤에서 천천히 따라 걸어줄 뿐. 최대한 감정을 배제하고 무감각해지려고 노력한다.


한발 두발 떼는 걸음이 저렇게 힘이 들 수 있을까? 왼발이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후유증을 가진 남편이 되어 걸어보지 못한 나는 왼쪽 다리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언젠가 남편이 다리에 쇳덩이를 매달고 걷는 것과 비슷하다고 비유한 것으로 막연히 무겁고 힘들 거라는 예상만 할 뿐이다.


이토록 힘들게 걸음을 떼는 거북씨가 몽블랑 트레킹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커다란 '도전'이었다. 도전은 우리가 사는 세계를 조금씩 넓혀갈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일 테니, 몽블랑 트레킹을 통해 거북씨의 세계를 한 단계 넓혀갈 수 있기를 바랐다. 나는 그를 마음속으로 응원하며, 트레킹을 준비하는 그를 볼 때마다 조용히 쾌재를 불렀다.


매일 숙제하듯 성실하게 내딛는 남편의 걸음을 보고 뒤에서 함께 걸었다. 7년을 함께 한 것으로 우리는 가족을 너머 전우애로 똘똘 뭉친 ‘뗄 수 없는’ 부부가 되었다. 일반적이지 않아 남들이 보면 이상할 수도 있는 부부다. 더군다나 우리는 각방을 써도 아무 이상할 게 없는 갱년기 부부가 아닌가. 하지만, 7년 동안 우리는 그렇게 똘똘 뭉쳐 '지남철 부부'로 서로 적응되고 말았다.


토끼처럼 날렵하고 깡충거렸던 남편을 기억하는 나는 거북이가 된 남편과 함께 13개월 동안 '몽블랑'이라는 목표를 향해 1일 1 산을, 남파랑길을, 하루 10킬로씩 일상 속에서 걷기를 꾸준히 실천했다.


그리고, 드디어 2025년 7월이 되었다. 2주 후면 몽블랑, 그곳에 가 있을 것이다. 막연히 걷기만 하던 토끼와 거북은 꿈꾸던 미래가 현실이 되어 가는 과정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