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레킹에 옷이 신경 쓰여?

2화. 완주에만 진심이었던 트레킹 준비

by 예몽

자유여행이 비교적 쉬운 동남아 지역이나 아시아 근방에 여행을 준비해서 가 본 적이 있지만, 유럽 쪽 해외 트레킹은 처음이라 여행계획을 전적으로 친구에게 맡겼다. 해외여행 경험이 많은 친구는 고맙게도 여행일정을 짜고, 준비물에 대한 안내와 조언을 해 주었다.


일 년 전부터 트레킹 관련 정보를 모으고, 동선을 고려해서 숙소까지 예약하는 준비과정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숙소 플랫폼을 통해 호텔을 예약하는 날도 있지만, 산장에 머무는 날은 홈페이지에 직접 들어가 신청을 하고 이메일로 회답을 기다리는 등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10일간의 일정을 예약하고 입금상황까지 체크하는 것은 여행전문가가 할 일로 보였다. 보내준 일정에 따라 트레킹 훈련하는 것만도 우리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는 그 모든 준비를 일년 전부터 실수 없이 착착 진행했다.


같은 곳의 여행은 세 번 한다고 했던가. 가기 전에 준비하느라 한번, 현지에서 한번, 다녀와서 정리하느라 한번. 하지만, 여행에 진심인 그 친구는 여행에 대한 추억을 얘기하는 한, 그 여행은 끝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참으로 명언이다. 어쩌면 몽블랑트레킹은 내게 가장 긴 여행이 될지도 모르겠다.


준비를 하면서 틈틈이 유튜브나 블로그를 찾아보았다. 해볼 만한 트레킹으로 보였다. 저 정도면 우리도 걸을 수 있겠는데? 모르면 용감해지는 법! 숙소 예약이나 동선 정하는 디테일함을 모르고, 걷는 모습이나 풍경만 영상으로 본 나는 용감하거나 무식한 편이었다고 스스로 책망한다. 여행을 주도하는 쪽과 정해진 여행에 따르겠다는 쪽은 그래서 천지차이의 입장차를 갖는가 보다. 해외 트레킹을 자유여행으로 준비하는 것은 그것이 많은 경험과 공부로 얻는 결과임을 현지 여행지에서 알게 되었다.


숙소예약이나 동선문제 외에 우리의 관심사는 예측할 수 없는 날씨와 동행자와 어떻게 걷는 속도를 맞추어갈까 하는 문제였다.


영상 속 트레킹에는 하루에 사계절이 다 들어 있었다. 비가 왔다가 금방 구름이 걷히고 해가 나오기를 하루에도 몇 번 반복하는 모습이 보였다. 국경을 넘는 고개에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는지 경량패딩을 꺼내 입기도 했다. 움직임이 느린 거북씨가 변하는 날씨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더군다나 날씨가 추워지면 근육이 굳어 움직임도 뻑뻑해지곤 해서 더 신경이 쓰였다.

그뿐인가. 우리와 동행할 친구부부는 여러 곳을 트레킹 한 경험이 있는 날쌘 토끼들이다. 날짜가 다가오니 속도가 맞지 않은 일행과 동행해 줄 친구부부가 얼마나 어려움을 겪을지 슬그머니 염려되기 시작했다.


어쩌자고 우리는 덜컥 같이 가자고 답했단 말인가! 되돌릴 수 없는 지금에사 불안이라는 녀석이 고개를 내밀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역시나 마음이 약해지면 불안, 후회 같은 부정적 정서들이 활개를 치는 법이다. 약해진 마음에 주눅 들 내가 아니지. 가 보지 않은 곳에 대한 불안은 누구나 갖기 마련이다며 마음을 애써 토닥였다. 그러고도 남은 불안은 서로의 속도를 인정하는 것으로 달랬다.


그들은 그들의 속도대로, 우리는 우리 속도대로 걷는 것! '따로 또 같이' 는 퇴직한 부부부에게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해야 하는 모든 인간관계나 상황에서 필요한 국룰이 아닌지. 그들을 먼저 보내고 길찾기앱을 따라 우리 속도대로 뒤따라 가면서 그날 목적지(숙소)에 도달하는 것으로 결론 지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유튜브나 블로그를 통해 먼저 다녀온 사람들이 알려주는 팁이나 그들이 찍은 풍경으로 몽블랑을 먼저 만났다.


계절에 따라 준비물이 차이가 있었는데 우리는 7월 중순에서 말일까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맞는 준비물을 챙겨야 했다. 7월에도 눈이 쌓인 길을 걷는 영상 속 트레커들을 보니 아이젠도 챙겨야 하고, 경량패딩도 넣어야 했다.


7kg의 무게를 지고 걸어야 하는 트레킹은 무조건 경량이어야 한다. 사용하던 배낭이 있었지만, 무게나 규격에 맞추어 6개월 전부터 전문 트레킹 배낭을 새로 구입했다. 등산 스틱과 침낭, 경량패딩과 아이젠을 미리 넣어 두고 적응하느라 한 번씩 메어보기도 하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 흡사 입학을 앞두고 책가방을 메어보는 유치원생과 다름없었다. 모를 때는 설렘이, 조금 알 때는 불안이 함께하던 시간이었다.


떠나기 2주 전에는 세면도구나 옷가지와 같이 사소한 준비물까지 챙기기 시작했다. 배낭에 물건들을 넣어보고 7kg에 맞추어 넣었다 뺐다를 반복했다. 결국, 7월 하순경이니 아이젠이나 경량패딩까진 필요 없지 않을까 예측하며 그 두 가지를 제외시켰다. 영상 속 트레커들은 반팔과 반바지에 땀을 흘리며 걷는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동행하는 친구부부도 반팔과 반바지 위주로 챙기고 경량패딩을 넣지 않는다고 정보를 주었다. (하지만, 7월 하순에도 산장의 밤은 추웠고, 몽블랑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에귀 뒤 미디 전망대에는 눈이 쌓인 겨울날씨였다. 경량패딩을 가져오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드디어, 배낭에 필요한 물품을 7kg에 맞추고 준비를 마치고 보니, 사진에 멋있게 나올 재킷 하나는 기념으로 사고 싶었다. 사실, 지금 생각하면 사진에 멋있게 나오기 위해서가 아니라 방수, 방습이 되는 윈드재킷은 장거리 트레킹에 필수로 챙겨야 하는 항목이었다. 트레킹 초보였던 우리는 윈드재킷의 유용함을 중요하게 여기지 못했다.


쉽게 갈 수 없는 곳에, 처음으로 해외트레킹을 가는데, 더구나 거북씨의 도전을 기념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재킷 사러 가자고 제안을 했다.

“여보, 우리 괜찮은 재킷 하나 사러 가지 않을래? 해외트레킹도 처음이고 당신 도전도 기념할 겸, 사진도 많이 찍을 테니...”


윈드재킷의 유용함이나 필요성보다는 엉뚱한 면을 언급하면서 쇼핑을 유도한 것이 실수였다는 건 지나고 나서 알았다. 누가 봐도 당연하다고 여길 거라 예상하며 던진 제안에 날 선 벼락이 돌아왔다.

“난 지금 트레킹을 완주할까 못할까 걱정인데, 당신은 옷이 신경 쓰여? 고산지대에 오르면 호흡이 불안해지지는 않을지, 경사지에서 위험한 일이 생기지는 않을지, 일이 생기면 해외에서 응급처치를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한 둘이 아니구만!”

자기 불안에 대해 내색 한번 하지 않던 거북씨가 귀국일이 다가오자 평소답지 않게 폭발을 했다. 일그러진 거북씨의 표정을 보고 사태의 심각함을 느끼고는 재킷 구입을 제안했던 입이 쏙 들어갔다.

‘말하지 않아도 당신도 불안했구나!’

거북씨의 마음을 늦게 알아차린 나는 어색했지만, 용기 내어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한 손은 거북씨의 손을 잡고, 한 손은 어깨에 얹은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을 거야, 여보! 그동안 우리 연습하고 훈련했잖아. 잘할 수 있을 건데 뭘 그리 불안해해. 약 잘 챙겨 먹고 할 수 있는 만큼 하자. 무리다 싶으면 버스를 타거나 방법이 있을 거야. 미리 걱정하지 말자.”

그렇게 우리는 완주에 진심이었다. 완주를 할까 못할까를 진심으로 고민하면서 트레킹 일정이나 코스는 염두에 두지 못했다.


첫 해외 트레킹에 낡은 재킷을 입고 공항 가는 버스를 탔다. 옷 따위에 신경을 쓸 수 없을 만큼 우리의 모든 마음과 정신은 ‘몽블랑 트레킹 완주’에 집중되었다. 먼 훗날, 트레킹 속 사진을 볼 때 낡은 재킷이 거슬린다면 우리가 얼마나 완주에 진심이었는지 이야기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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