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화. 집을 나와 샤모니까지
4년간 올림픽을 준비한 선수들이 대회를 앞두고 긴장하는 것이 이와 같을까?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서는데 긴장이 됐다. 이게 뭐라고 이리 긴장되는가? 우리의 목표는 '무사히 완주하고 살아서 돌아오는 것'이다.
미지의 세계를 만난다는 건 설렘과 불안이 범벅된 가슴떨림이 아닐까? 거북씨와 나는 60을 코앞에 둔 중년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떨리는 마음을 안고 공항행 버스에 올랐다. 자유여행으로 시작하는 이번 트레킹은 그야말로 수학여행이 첫 경험인 초딩 같은 마음으로 나섰다.
인천에서 두바이를 거쳐 제네바에 도착하고, 다시 제네바에서 버스를 타고 샤모니까지 도착하는데 꼬박 이틀이 걸렸다. 긴 비행시간과 좁은 기내환경을 잘 견뎌준 체력들이 고맙다. 아직은 설렘을 안고 7시간의 시차가 있는 이국땅을 밟을 체력이 된다는 것에 감사했다.
제네바 공항에 내리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다. 자유여행을 가면서 어디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설렘만 안은채 무턱대고 스위스땅을 밟다니! 공항에서 샤모니로 가는 버스를 어디에서 타는지 찾는 과정에서 나는 내가 준비 없이 이곳에 왔다는 것을 실감했다. 유럽 자유여행 경험도 없었지만, 무작정 친구만 믿고 완주에만 신경을 곤두세운 탓이다.
대신, 친구는 낯선 환경에서도 일처리 하는 모습이 유연하고 노련했다. 다양한 경험과 적극적인 성향이 문제해결에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세상은 왜 이리 넓고, 배울 건 왜 이다지도 많은가! 나는 늘 심심하지 않게 경험하고 배우며 살았다고 여겼는데 낯선 곳에 오니 노련하지 못하고 어린애처럼 서툴다. 배우고 알아야 할 것이 지천에 널렸다.
어쨌든 친구 덕분에 샤모니로 가는 버스를 탔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스위스스럽기도 하고 프랑스스럽기도 한 탓인가? 내 마음이 흥분되기도 하고 긴장되기도 했다. 버스로 가는 도중에 어느 지점인지도 모르게 스위스에서 프랑스로 국경을 넘었다. 제네바는 스위스였는데 버스로 1시간 20분 정도 달린 오늘의 목적지, 샤모니는 프랑스다.
드디어, 영상으로 보았던 샤모니에 도착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드디어라니! 몽블랑 트레킹의 시작점에 불과할 뿐인데, 벌써 목적지에 도달한 기분이다. 그만큼 여기까지 길고 길게 느껴진 여정이었다.
날씨는 눈부시고 하늘 위 구름조차 이국적으로 보였다. 시내를 감싸고도는 옥색 물빛(빙하가 녹은 물) 하천과 바로 눈앞에 설산인 몽블랑 정상이 버티고 있어 이곳이 샤모니라는 걸 알려주었다.
처음으로 몽블랑 정상에 올랐던 사람들의 동상과 그들이 향하는 곳 저편에는 한 여름에도 녹지 않은 하얀 눈으로 자태를 뽐내는 몽블랑이 있다. 내일부터 이곳, 샤모니에서 첫 트레킹이 시작된다. 몽블랑과 그 주변 산군들을 9일 동안 돌아 다시 이곳 샤모니로 돌아올 것이다.
몽블랑 정상의 반대편에는 브레망 전망대가 있다. 브레망 전망대의 반대쪽은 몽블랑 설산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에귀 뒤 미디 전망대가 보인다. 9일간의 트레킹을 마치면 케이블카를 타고 에귀 뒤 미디 전망대에 오를 것이다. 부푼 마음으로 하늘을 보는데 파란 하늘 위로 이국적인 구름 무리들이 몽블랑 정상을 가렸다 보여줬다를 반복한다. 내 마음이 더 요동친다.
저 멀리 브레망 전망대 쪽에서 패러글라이딩이 날고 있다. 몽블랑 정상을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이 벅찬데 해발 4,800m가 넘는 몽블랑 정상을 바라보며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이의 마음은 어떨까? 세상에는 대단한 사람들이 정말 많다.
샤모니 시내 한가운데에는 패러글라이딩을 타는 사람보다 더 대단한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이 있다. 몇 백 년 전, 몽블랑 정상에 오른 역사적인 사람을 기리는 동상이다. 인간의 위대함은 어디까지인가? 정상을 오른 사람들의 명예는 후세에도 남아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꿈과 도전을 주고 있다.
동상을 바라보니 그들이 땀과 노력으로 얻은 명예 뒤에 숨은 고난과 눈물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해진다. 그냥 얻은 명예는 없기에 몽블랑 등반 성공에는 땀과 노력 외에도 그들이 이겨낸 고난과 눈물도 있지 않을까. 숙연해지는 마음에 저절로 주변풍경과 최초등반한 이들의 동상을 카메라에 담아본다.
샤모니 맛집 버거집에 들러 점심을 해결한 뒤, 필요한 먹거리를 사기 위해 마트에 들렀다. 내일부터 시작될 트레킹에 먹을 점심과 간식거리를 챙겼다. 유럽에서 마트 물건 사는 것조차 첫 경험이다. 날것의 첫 경험이 서툴기도 했지만 세상을 알아가는 즐거움에 아이처럼 들떴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납작 봉숭아를 애정하게 된 친구는 다른 건 양보해도 납작 봉숭아는 양보하지 못한다며 구입하기를 권한다. 납작 봉숭아에 진심인 친구 따라 내일 간식으로 한 봉지 샀다. 저녁먹거리로 필요한 걸 챙기는 친구는 척척, 여행가이드로 손색이 없다.
숙소는 버스를 타고 10분 거리에 있었지만, 걸어서는 30분 정도라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트레킹 워밍업으로 이 정도는 걸어야지!"
라고 말하는 대장(여행을 주도하는 친구)을 따라 도로를 걷는다. 집에서 챙겨 온 7kg의 배낭무게에 마트에서 장본 식재료의 무게가 더해졌다. 이제부터 트레킹이 시작되었는가? 대기는 선명하고 햇볕은 강렬했다.
역시나 날쌘 토끼들은 저 앞을 걸어가고 거북씨와 나는 토끼들의 꼬리를 따라 걷는다. 토끼 눈에는 느리게 보이지만, 거북씨는 부지런히 걷고 있다. 마음은 달리고 있을 것임에 틀림없다. 쇳덩이가 달린 다리로 걷는다는 건 어떤 속도일까 생각하며 거북씨의 걸음에 맞춰본다. 그래도 1년 전을 생각하면 지금은 많이 빨라졌다. 지치지 않고 끝까지 걷는 체력을 키운 것만 해도 감사하다.
몽블랑 정상을 왼쪽에 두고 30분 넘게 도로를 따라 걸어 숙소에 도착했다. 숙소는 무인시스템으로 운영되는지 주인장은 보이지 않고 예약한 친구에게 문자로 방 호실과 키 번호를 알려주었다. 유럽 숙소는 샤워 공간도 좁고 침실도 좁다. 물가도 비싼 유럽에서 이 정도 숙소를 고른 대장이 고맙다. 11일간의 여정을 게스트하우스, 호텔, 산장, 에어비앤비의 아파트를 골고루 찾아 예약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임을 안다.
다행히 이 숙소는 주변에 호수가 있고 산책로가 있어 유럽의 전원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더군다나 아침으로 맛있는 빵과 요거트, 치즈, 햄, 커피, 몇 가지 음료를 마음껏 먹을 수 있도록 주방을 오픈해 두어서 금상첨화였다.
호수 산책 후, 오후 9시가 넘도록 해가 지지 않고 환한 프랑스의 저녁을 숙소 앞 벤치에서 보내면서 친구와 우리 부부는 지나온 젊은 날의 이야기와 트레킹의 설렘을 나누었다.
숙소 옆에는 맥주나 음료를 앞에 두고 음악을 즐기는 라이브카페가 있었다. 저녁 시간을 즐기는 현지인들의 라이브 음악을 들으면서 프랑스 샤모니에서의 첫날밤이 지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