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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인 Jul 27. 2024

윗집은 나에게, 나는 아랫집에게

윗집은 나에게 물을 주었고, 나는 아랫집에서 물을 줄뻔했다.


여행 짐도 싸기 전,

나는 매일을 ‘짐을 싸야지, 짐을 싸야지.‘ 생각만 하고 있었다. 2024 년 여름은 비가 매일 같이 내리던 나날들이었는데, 어느 하루, 아침부터 천둥이 치고, 비가 떨어지는 소리에 잠이 깨었다.

‘오늘 출근하려면 일찍 일어나야겠다. 오늘 차가 막히겠는 걸. 사람들 사고가 덜 나야할텐데..’

나는 걱정과 함께 눈을 떴다. 비만 많이 왔지, 평소와 다름없는 나날들이었다.


일을 하는 도중에, 유독 집에 가고 싶었다.

그 날따라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꾀병을 내어 반차를 썼다. 그리고 집에 뒹굴 생각으로 나의 자취방을 문을 열었다. 베란다로 통하는 방 안의 벽지에 보지 못한 무늬가 눈에 들어왔다


‘이건 뭐지?’


순간 사고회로가 멈췄다.


‘이건 내가 평소에 보던 무늬가 아니고, 오늘 아침에 비가 들이닥쳐서 방 안쪽까지 물이 들어왔구나. 난 망했네. 우리집도 아닌데, 이걸 어디까지 물어줘야하나..’


세입자 3년차.

나는 부동산과 집주인에게 어떻게 상황설명을 해야하나 울상이 되던 중이었다. 그래도 사진을 찍어 솔직하게 말해야지 하면서 여기저기 사진을 찍다가 베란다에 널어둔 빨래가 바짝 말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빗물로 인하여 방이 젖을 정도면 빨래도 함께 젖어있어야하는데, 베란다의 모든 벽면과 바닥에 물기가 없었다.


‘뭔가 이상한데?’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와 물이 어디서부터 흐르는 건지 눈으로 찾기 시작했다. 벽지 윗면에서 흘러내려온 모양새였다. 나는 일단 부동산에 전화했다.


“윗집일 가능성이 있어요”


그제서야 나는 이해를 했다.

몇 년전 사고를 친 경험이 있다. 엄마가 정수된 물을 먹고 싶다며 사둔 정수기를 안쓴지 어언 5년, 나는 정수기를 치우겠다며, 부엌 배관에 연결된 정수기의 호스를 자르고, 그 잘랐던 부분에서 나오는 물을 막겠다며 부엌 밸브를 잠갔지만, 그 속에서 또 물이 나오고 새어, 아파트 벽면과 아랫집에 물이 샌 적이 있다. 아랫집에서 물이 샌다며 연락이 왔고, 관리사무소에서 아파트 벽면에 물이 흐른 자국이 있다며 우리집을 들어와 보던 중, 내가 예전에 자른 정수기 호스가 원인이 되어 이 사태를 만들었던 것을 배웠다. 다행히 아랫집도 피해가 없었고, 아파트 벽면에 새긴 물줄기도 큰 문제 없이 넘어갔던 추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그럼 관리사무실에 전화할께요.”


전화하자마자 3분의 관리사무실 아저씨들이 와주셨다. 하필 이 날 엘리베이터가 망가져서 세 분 다 계단으로 걸어오느라 온 몸이 땀범벅이셨다. 죄송한 마음과 감사한 마음이 가득 들었다.


“아유 오늘 왜 하필 망가져가지곤..”


세 분이 동시에 귀여운 투덜거림을 하시다 벽지에 새겨진 물의 흔적을 전문가의 눈길로 보시곤 역시나 같은 말을 하셨다.


“윗 집을 확인해봐야해요.”


한 분은 동시에 윗집에 올라가 문을 두드렸고, 나는 한 분과 잠시 잡담을 하던 사이, 다른 분이 나를 불렀다.


“아가씨, 온수 배관에 물이 새는데?”


그렇다.

방 안의 벽면을 확인하려고 들어오던 차에, 우리집 대문 옆에 있던 온수배관에 물이 새는 것을 또 발견해주신 것이었다. 방안 물이 샌 곳과 온수배관은 완전 다른 쪽이다.

내가 오히려 다른 집에 또 피해를 줄 수 있었다.

물론, 나도 물이 고인 것을 본 적이 있었지만, 오래된 아파트여서 물이 고여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지, 우리 집문제라곤 생각치도 않았다. 와주신 덕분에 지금 발견해서 얼마나 다행인건지.


아저씨들이 집을 체크하시는 사이 나는 기계실에 또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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