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냉면에 진심인 여자
나는 평양냉면이 좋다. 탕수육은 부먹이냐 찍먹이냐의 해묵은 갈등이 있지만, 평양냉면은 왜 없는지 모르겠다. 냉면의 진정한 맛을 느끼려면 평양냉면이 좋냐 함흥냉면이 좋냐 하는 이슈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내가 평양냉면에 진심이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르겠다.
평양냉면을 처음 먹게 되면 특유의 슴슴한 맛 때문에 이게 맛있는 건가 없는 건가 헷갈릴 수도 있다.
그 맛을 개선해 보려, 겨자나 식초를 넣게 된다면 더 혼란에 빠질지도 모르겠다. 여드름 피부를 덮겠다고 파운데이션을 두껍게 덧 바른 느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본연의 맛을 모르기에 자극적인 식초와 겨자에 의지하게 되면 결국은 대혼란의 맛이 탄생한다.
그러나 그 고비를 넘기고 먹다 보면, 진하고 시원한 고기 육수와 담백한 면발에 중독 되게 될 것이다. 평양냉면은 자극적인 맛 하나도 없이 재료에 충실한 맛이라고 해야겠다. 그래서 어른의 맛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다. 진한 냉면 육수를 내기 위해 고기를 삶아 기름을 걷어내고 불조절을 하여 오래도록 뭉근하게 끓여야 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또한, 메밀면을 너무 익히지도 너무 설익게도 하지 않고 삶는 일은 찰나의 순간에 달려 있다. 이처럼 완급 조절을 해야 만들어지는 것이 평양냉면이다.
돌아가신 아버님은 평양냉면을 참 좋아하셨다. 정확히는 평양비빔냉면을 좋아하셨다. 평양비빔냉면은 함흥냉면과 다르게 덜 자극 적이다. 매콤 새콤한 양념이 얇은 면과 잘 조화가 되어 후루룩 후루룩 잘 넘어가는 맛이다. 아이들도 할아버지를 따라 평양냉면집을 다니다 보니, 평양냉면의 맛에 빠졌다. 우리는 아버님을 모시고 평양냉면 집을 자주 갔다. 아직도 아버님의 빈자리가 어색하지만, 평양냉면을 먹으며 아버님과의 추억을 이야기한다. 인생은 우리가 의미를 붙이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는 것 같다. 그저 매일 반복되고, 똑같은 일상이지만, 우리가 특별하게 생각하고 소중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것을 느끼지 않았던 이전과는 완전히 다르다.
평양냉면도 마찬가지이다. 무슨 맛인지도 몰라던 평양냉면이었지만, 우리 가족만의 진심을 부여하니, 먹으면서 아버님을 추억하고, 먹으면서 소중함을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