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하는 감정적인 동물의 이성적인 노력.
감정적인 동물들의 불행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데에서부터 시작한다.
감정을 다스리는 일은 늘 중요하다. 일과 관련해서든 인간관계에서든. 어쩌면 결과적으로 내 가장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할 부분일지도 모른다. 그건 슬프지만 내가 나이 듦에 따른 대가이기도 하다. 어렸을 때야 멋모르는 나이라 저렇게 제 멋대로 제 기분대로 행동하는구나 하고 일정 부분 이해를 받을 수 있었다 해도 지금은 다르다. 우리는 갓 서른을 지나고 있고, 사회에서 '서른'이 가지는 의미는 제법 크다. 과하다 싶을 만큼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 나이가 서른이 아니던가. 우리는 그 서른이다.
주문을 외듯 되뇌는 말이다.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보이고 싶어 강한 척 하지만 여전히 흔들릴 때마다 내가 나에게 하는 말이다. 오래 살아남고 싶으면 내 감정을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고. 멘탈이 무너지는 순간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하게 되고, 거기서 이어지는 모든 일은 불안정하고 불완전하기 마련이니.
깨달은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너는 네 감정을 너무 드러내."
"시시때때로 변하는 네 감정에 내가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하니?"
"표정 관리 좀 해."
연애할 때 가장 많이 들은 말이자 가장 많이 싸운 이유이다. 순화하여 표현하긴 했지만, 난 널뛰는 감정 그래프와 그게 그대로 고스란히 얼굴에 드러나는 일 때문에 많이 혼나고 싸웠다. 다 지나고 나서야 '아, 내가 여간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게 아닌가 보구나.' 생각했고, 주문 같은 저 문장은 연애든 일이든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데서 꽤나 낭패를 보며 얻은 학습의 결과이다. 물론 여전히 어렵고,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옷 가게를 열고 나서 좀 더 어려워졌다. 빌어먹을 그 멘탈 관리라는 것 말이다. 엄연히 따지자면 가게를 열어서 인지, 가게를 연 시기의 내가 그냥 더 예민해져서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앞서 말했듯 현재 나는 쓰리잡러 삶의 주체자로서, 24시간을 삼등분해도 모자라야 하는 삶을 살고 있다. 예민해질 수밖에 없을 것 같은 거창하고 그럴싸한 표현이긴 하나 사실 꼭 그렇지도 않다. 지금 그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냐고 묻는다면, '글쎄'라는 대답이 나올 것 같으니.
주변에서는 칭찬을 꽤 많이 들었다. 일을 벌이는 것에 대해서였다. 주로 '추진력 있다', '대단하다', '부지런하다', '열정적이다' 따위의 표현들이 담긴 칭찬이었다. 고래도 춤추게 하는 칭찬이 싫을 리는 없지만, 가끔 혼자 있을 때면 그 말들이 머리 위로 둥둥 떠다닐 때가 있다. 둥실둥실 고요하게 떠가는 구름들처럼 그 단어들이 머리 위를 지나갈 때면 무언가 기분이 좋다가도, 내가 정말 그런가? 내가 그런 사람일까? 하는 물음표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혹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보인다면, 난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순서야 어찌 됐든 간에 지금부터 그런 사람이 된다면 칭찬을 한 사람들과 나, 어느 쪽도 틀리지 않은 게 될 테니 말이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들은 결국 부담이 되어 돌아오기 마련이었고, 내 멘탈을 흔드는 시초가 되었다.
다 핑계다. 그렇다. 사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꽤 예민함이 있는 사람이었다. 전 상사에게 '처음엔 굉장히 이성적인 사람일 것 같았는데, 겪어보니 굉장히 감성적인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은 적도 있다.-비꼬고 싶었던 건지 본인이 느낀 바를 담백하게 전달한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더 멀리 나아가 보자면 초등학생 때부터 나는 또래에 비해 감성적인 편이었고, 섬세한 감정을 가진 아이였던 것 같다. 아마 그때 만난 내 오래된 친구들 덕(?)에 그나마 이 정도 감정의 리듬을 유지하며 살 수 있었다고 지금도 늘 말한다. 친구들의 과한 '무던함'에 물이 들었다고나 할까? 만약 나와 비슷한 부류의 친구들을 뒀다면 훨씬 더 센티멘털하고 피곤한 사람이 되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좋은 작용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젠 가끔 나도 '너무 무디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중화되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입장에서는 가게 오픈 때문에 시기적으로 바짝, 아주 잠깐 멘탈 관리를 못하여 예민해진 건지 헷갈릴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내가 태초부터 예민한 사람이었다 한들! 후천적으로 예민하지 않은 사람에 가까울 정도의 사회화를 이미 다 거쳤는데! 갑자기 다시 예민한 사람으로 회귀한 건가? 이것 또한 관성의 법칙 뭐 그런 건가? 별의별 생각을 지나 다시 원점으로 복귀했다.
"멘탈 관리를 잘해야 오래 살아남는다."
이 조그마한 옷가게에도 투자라는 명목의 돈이 든다. 기본적으로 '옷'이라는 재화를 사야 하고, 매력적인 샵이 되기 위한 인테리어 비용, 그리고 그 공간을 부여받는 데에 대한 대가를 지불하는 월세를 비롯해 인터넷 요금, 보안업체 월 관리비, 보험비, 각종 공과금 등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매 달 돈이 나갈 구멍은 많다. '매출이 발생하니 그 돈으로 내면 되지'라고 생각하겠지만 매출은 월급처럼 따박따박 들어오지 않는다는 게 문제.
사실 바비인형 구매대행 사이트로 사업을 처음 시작할 때는 지금과 같은 부담감은 없었다. 웹사이트라는 무궁무진한 공간을 부여받는 데에 지불해야 하는 월세라고는 고작 몇만 원 남짓. 모든 관리를 혼자 하기 때문이었다. 제품 셀렉트부터 가격 책정, 이미지 제작, 배너 제작, 번역, 상품 설명, 주문 관리, 배송, 어느 것 하나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혼자 했으니 인건비는 물론이고 사이트 의뢰비도 들지 않았다. 웹 디자인은커녕 그 흔한 컴퓨터 활용 자격증도 없는 내가 어디서 이런 깡이 나왔었는지 몰라도, 사람은 다 할 수 있고 결국 하게 되어있다는, 난 할 수 있다는,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시작했다. 구매대행 특성상 재고를 쌓아놓고 팔지 않고 그때그때 주문을 처리하기 때문에 내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그저 몇만 원 남짓의 월 관리비와 사이트 제품을 노출하는 데에 따라 차감되는 광고비 정도이기에 만족스러운 매출이 발생하지 않아도 그다지 조급하지 않았다.
허나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물론 지금도 어느 누구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있기는 하다. 옷을 셀렉하는 일도, 수입하는 일도, 빈티지 옷을 더 좋은 퀄리티로 판매하기 위한 노력도, 사이트 관리 및 판매도 전부 혼자 하고 있지만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장을 병행한다는 점이 가장 다르다.
또 이 옷이 내 생각처럼 팔릴지 아닐지 모르지만 그저 나의 안목을 믿고, 비용을 먼저 지불해야 한다는 점이 많이 다르다. 팔리지 않으면 그 지출에 대한 감당은 내 몫이 되기 때문.
요즘 같은 쇼핑몰 홍수 시대에서 인터넷 쇼핑몰로 살아남으려면 어마 무시한 마케팅 비용을 지불하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든, 아니면 SNS상 엄청난 셀럽이든 둘 중 하나는 되어야 한다는데, 나는 셀럽도 아니고 공격적으로 마케팅할 돈도 없다. 매 달 월세를 몇백만 원씩 내고 좋은 목에 가게를 얻을 수도 없다. 이렇게 늘어놓고 보니 정말 내 시작은 엄청난 '깡'뿐이었다는 말이 새삼 더 와 닿는다. 아마 처음 내가 가게를 낸다는 얘기를 들었던 몇몇은 혀를 끌끌 찼을지도 모르겠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이제 막 성대한 개업식-개업식은 동네 시끄럽게 가족들이며, 친구들이며 다 불러 모아 한 차례 일을 벌였더랬다-을 끝낸 작은 사업체가 바로 대박이 터질 리 만무. ‘처음부터 잘 되는 데가 얼마나 있겠어.’라는 말로 애써 위로하며 묵묵히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차근차근 하고 있지만 종일 조용한 골목과 가게, 반응 없는 사이트를 보고 있자면 침착함을 유지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사업은 직장생활과 많이 다르다. 상사가 있고, 회사의 룰이 있고 그게 나와 맞지 않을 때 오는 스트레스가 클 수는 있으나 합의된 숫자가 매 달 정해진 날짜마다 통장에 찍히는 짜릿함이 있는 직장생활, 수입과 지출이 일정치 않지만 오롯이 나 스스로 오너로서 결정하고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사업. 뭐, 양쪽 모두 매력적이다.
내 결정에 따라 일을 추진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는 나는 매 달 통장에 돈이 찍히는 짜릿함도 포기할 수 없어 양다리를 걸친 상태이긴 하지만 분명 언젠가 둘 중 하나를 포기하고 선택하는 날이 오겠지. 그럼 아마 나는 결국 사업일 것이다. 결국 지금은 훗날 보장된 고정 수입 없이 나의 일을 하는 날이 올 것에 대비하는 중이라는 말이 되니, 장사가 내 맘처럼 되지 않는 날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 건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 아닌가! 다만 사업이라는 게 하루하루 돈이 쌓인다기보단 어느 날은 한 달에도 못 팔 만큼 많은 주문이 들어오기도, 어느 날은 파리 한 마리도 날아들지 않는 것처럼 조용한 날도 있기 마련이라 그 날 하루가 어땠든 간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고 마인드 컨트롤을 할 줄 알아야 하는 게 중요한데, 그게 잘 되고 있느냐가 문제라는 것. 잘 되지 않고 있더라도 앞으로 잘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고 더 크게는 사업의 성패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일이 될 것이다. 일맥상통하며 결국 다시 원점.
“멘탈 관리를 잘해야 오래 살아남는다.”
불안해한다고 나아지는 건 없다. 조급해한다고 금세 달라지지 않는다. 널뛰는 감정을 붙잡고, 정신을 가다듬고 오늘도 나는 묵묵히 내가 해야 할 일을 한다.
오래 살아남기 위해 사업하는 이 감정적인 동물은 이렇게 오늘도 이성적인 노력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