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102 이숭이의 하루

늘, 운명적인 타이밍

by 이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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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일 토요일,
그리 일찍 일어난 것도 아니면서..
아침부터 패션쇼를 벌이는 이숭이였다. 앞장에 드레스코드가 있어서 고심하고 고심을 하지만, 버건디 또는 레드가 마땅찮은 게 없었다. 그중에서 긴 원피스를 입고 앞산으로 출동했다. 제발 바람만 불지 않기를.. 짐을 줄이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게 잘 되진 않는다. 짐을 뺀 만큼 또 다른 짐을 채워 넣다 보니 박스가 5개가 나왔다. 오 마이 갓. 나를 존중해주는 남편 덕분에 내가 이렇게 장돌뱅이를 할 수 있는 거였다.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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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시 반쯤에 도착했는데 이미 많은 분들이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도 그때부터 한 시간 가까이 부지런히 짐을 풀고 이숭이월드를 꾸미기 시작했다. 오 마이 갓. 집에서 놔두고 온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스티커 어디 갔냐.. 지난번보다 테이블은 더 커지고 넓어졌는데 물건을 빼먹고 오다니... 그럴 땐 걱정 마시라. 내가 챙겨 온 별의별 소품들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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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사진을 찍고 간식을 받아왔다.
배고픔에 주먹밥 세 개를 쉬지 않고 먹는다. 당근주스까지 다 비우자마자 12시 앞장이 열렸다. 처음엔 입도 덜 풀리고 말이 헛나온다. 머리도 빨리빨리 돌아가지 않아서 계산이 쉽지 않았다. 몇몇 손님들에게 금액을 잘못 알려주는 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정신줄을 붙잡아주는 남편이 있어 참 다행이었다. 알라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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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처음 선보인 마스킹테이프랑 밤나무 자석.
누군가에게 우리의 그림, 물건을 소개할 수 있는 자리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다. 그런데 가던 길 멈추고 구경을 하거나, 소중한 지갑을 열고, 예쁘고 다정한 말을 남기고, 칭찬을 해주니 기쁨, 행복이 가득한 시간이었다. 알록달록 나뭇잎이 떨어지는 길에서, 빙글빙글 흔들리며 돌아가는 단풍잎 도토리 명찰, 오늘의 마스코트 밤 인형까지 완연한 가을이었다. 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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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근히 차가운 공기, 경사진 돌바닥에서 계속 서있기엔 내 체력이 강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마켓이나 행사에 나가면 나는 허리도, 다리도 아프지 않은 강인한 사람이 되곤 한다. 이 모든 게 즐겁기 때문이라는 걸 알고 있다. 누군가 시켜서가 아니라 우리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는 걸 매번 깨닫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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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소중한 사람들이 많이 다녀갔다.
대구에서 열린다고 버선발로 달려온 사람들. 따뜻한 물과 간식을 가지고 오신 어머님, 응원과 지인들의 선물, 애정 어린 표현들에 오늘도 감사함을 배우고, 따뜻함을 느낀다. 나 복 받은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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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휘리릭 지나가고 어둑해졌다.
단체사진을 남기고, 각자의 자리를 정리하고 우리는 헤어졌다. 처음 참여했지만, 다들 한두 번 와본 솜씨가 아닌지 아주 자연스럽고, 능숙하게 앞장을 채우고 비웠다. 우리도 그들 따라서 깨끗하게 치우고 자리를 떠났다. 어머님께서 밖에서 먹고 가라고 주신 용돈으로 바로 탕진 잼을 실천한다. 낮에 먹고 왔는데 맛있다며 추천해준 앞산 지오네에 가서 파스타랑 피자, 샐러드를 넘치게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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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이 풀렸는지 하품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온다.
삐뚤어진 경사에 서있었더니 왼쪽 발등 인대 쪽에 무리가 갔는지 계속 시큰시큰거린다. 남편은 어제 손가락을 다쳐서 아프다고 했고, 둘 다 누가누가 더 아프나 아픈 얘기만 실컷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같은 말로 마무리를 짓는다. 고맙다, 감사하다, 사랑한다는 말로 평화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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