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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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9일 토요일,
어둠 속에서 꿈나라를 향해 달려가는 그 순간 남편은 콧물을 흘려가며, 자동차 광을 내고 있었다. 코팅을 세 번 입혔다나 뭐라나. 세차하러 집에서 나갈 때 점점 입꼬리가 올라가는 자신을 발견했다며 보내는 셀카 사진을 보며 피식했다. 세차를 좋아하다니. 어유, 정말 귀여운 사람이야. 그 밤에 보내줘서 고맙다는 말을 듣는데 내가 엄청난 일을 해낸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나 이런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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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자마자 여기저기 청소를 했다며 사진을 보여준다.
아침부터 이렇게 귀엽기 있나. 반듯하게 널린 수건들은 또 왜 이리 귀엽나. 참, 오전 열 시에 밖으로 나가자는 약속 어디로 갔나. 일어난 게 10시였으니.. 그때부터 천천히 씻고 준비하는데 세월아 네월아.. 느림보 이숭이는 천하태평이었다. 반면에 남편은 진작에 다 챙기고 나를 기다린다. 결국은 ‘이숭이 제발 가자’는 말을 듣고서야 겨우 밖으로 나왔다. 문을 열기도 전에 다시 방에 들어가 열쇠를 가져 나오는 나는 정말.. 오 마이 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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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하게 된 부릉이 운전.
99% 남편이 나를 데리고 다녔으니 이젠 내가 남편을 모시고 다닐 때가 됐다. 친절한 길 안내와 함께 렛츠고. 겨울맞이 남편 옷을 사고 그때부터 고삐가 풀린 것 같다. 한참 동안 구경을 하고 불고기 정식으로 배를 채운다. 시장에 가서 사과랑 감을 한 봉지씩 담는다. 좋아하는 동네빵집에 들렀다가 선물로 주신 커피랑 식빵을 덜렁덜렁 들고 나왔다. 집에 가려던 발길을 돌려 웨이투고 카페에 가서 케이크랑 음료를 먹는다. 곁에 다정한 사장님들이 있어서 행복한 우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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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끝이 아니다.
DIY 책이 필요하다길래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갔다. 지름신을 막으려고 꾹꾹 참았는데 한상을 예쁘게 차린 요리책에 마음을 뺏긴 우리는 덜컥 집어왔다. 어느 날 집에 있는 요리책을 모아놓고 ‘이거 만들어먹자’며 다짐을 해본다. 지름신은 요리도 하게 하는 멋진 존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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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집에 갈 줄 알았는데..
분식집도 잘 피해왔는데, 빼빼로가 눈에 들어왔다. 상술이라 넘길 법도 한데, 시부모님께 드릴 빼빼로랑 우리가 먹고 싶은 거 하나를 샀다. 돈이 막 쓰고 싶나 보다. 그렇게 편의점을 나가면 되는디.. 남편이 좋아하는 젤리가 눈에 딱 들어왔다. 그것도 블랙프라이데이 기간이라 1+1!!! 이건 안 살 수가 없었다. 분식도 피하고, 과자도 두 개로 줄이고 참았는데 젤리에서 지름신 대폭발. 한 열개 샀나... 우리를 좀 말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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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하게 돈을 쓰고 들어왔다.
갑자기 패션쇼를 하고 갑자기 폰을 가지고 노는 우리. 남편이 뭐 하나 봤더니 십일절이라 이것저것 장바구니에 담으려고 구경을 하고 있다. 집에 왔다고 돈을 안 쓰는 게 아니었다. 나는 옆에서 이것도 필요하고 이것도 사야 한다고 맞장구를 치지만, 현실은 창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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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이젠 입이 심심하다나...
우엉차만으로는 부족하다. 갑자기 통닭으로 넘어가서 유혹에 빠진 우리. 서로가 용기를 내주기를 바라며, 서로의 결정을 응원한다며 내심 ‘먹자’고 외쳐주기를 바라는 상태. 우리의 결말은..? 돈도 없으면서 사고 싶은 건 왜 이리 많고 맛있는 거, 예쁜 건 왜 이리 많은지. 염원을 담아 로또 번호를 맞춰보지만... 한순간에 종이 쓰레기가 되어버린다. 돈이 최고는 아니라고 해도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 펑펑 쓰고 싶다. 오늘 일기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