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운명적인 타이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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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8일 금요일,
아이고 눈이야.
학생 이숭이는 과제나 시험기간을 어떻게 버텼을까. 야근을 자주 하던 직장인 이숭이가 대단해지는 순간이었다. 컴퓨터를 붙잡으면서 바쁜 하루를 보내고, 틈틈이 동호회 활동이며 손글씨를 쓰던 날들. 피곤한데도 잘 버텼다.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은 바쁨의 밀도가 낮은데 조금이라도 낮밤이 바뀌면 몸에서 이런저런 신호를 보낸다. 새벽 두 시 반까지 펜을 붙잡고 있었더니 눈이 너무 시려서 야단 났다. 그래, 그때는 어렸었지. 젊음만 믿고 뛰어다녔던 망나뇽 같던 이숭이 옛날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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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는 유난히 영화랑 드라마를 보고 폰, 컴퓨터, 패드에 집중한 탓이었다. 4시간 정도 자고 아침에 눈을 떴는데 눈이 시큼시큼거린다. 글로 표현하자면 눈동자에 레몬즙을 짜넣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그 정도로 아프다. 남편은 일어나지 말고 계속 누워있으라고 했다. ‘괜찮다’며 반쯤 뜬 눈으로 출근 준비를 도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인사를 나눈다. 금요일이니까 힘내서 잘 다녀오라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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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134일 차.
금요일은 소도구 수업인데 매트 수업을 했다. 몇 개 수업을 부담스러워하는데 하나는 파트너 요가, 또 다른 하나는 발가락에 수수깡 같은 막대를 끼우고 걷는 동작이다. 매트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막대를 봐버렸다. 문제는 이걸 끼고 몇 바퀴를 걸어야 하는데 너무 아프다. 발 마사지가 아니라 고문이다.. 발을 땅에 제대로 딛고 걸을 수가 없다. 하. 수업 시작하기도 전에 땀이 뻘뻘뻘 흐른다. 폭풍 같은 몸풀기가 지나가고 그저 열심히 따라 해 보려고 노력을 하는 이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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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 수업 전후에 마시는 따뜻한 차, 집에 와서 차 두 잔을 우려서 마셨다. 습관이 되면 좋을 차 마시기. 몸이 뜨뜻하게 데워지는 그 느낌이 좋다. 일부러라도 자주자주 마셔야겠다. 그리고 점심은 호박고구마 두 개. 후다닥 먹고 집 앞에 열린 마켓 구경을 하러 갔다. 내가 갔을 때 사람들이 빠진 시간이었는진 모르겠지만, 너무 휑해서 구경하기 부끄러웠다. 시식으로 내놓은 건어물이랑 다쿠아즈 몇 개만 먹고 금방 나왔다. 햇살이 있는 쪽으로 걷다가 모과나무를 발견하고 샛노란 모과 두 개를 주워왔다. 오늘도 완연한 가을날, 가을 특유의 알록달록 색깔이 참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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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살처럼 몸이 추워지길래 장판을 틀어놓고 한숨 자고 일어났다. 내 생각엔 자야 할 시간에 안 잤던 거에 대한 후유증인 것 같다. 다행히 몸 상태가 괜찮아져서 남편이 집에 왔을 때 신나게, 격하게 반길 수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외식. 바깥 음식이 먹고 싶은데 결정을 못해서 한참을 고민하고, 길거리까지 걸어가서 방황하다가 들어간 곳은 족발집이었다. 생각이랑 다르게 흘러가지만 만족스러웠다. 남편은 춥다며, 추운 날엔 맥주가 땡긴다, 술이 마시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렇게 시작된 금요일 회식. 족발이랑 쟁반막국수 그리고 맥주. 캬. 좋네 좋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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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를 사고 골목길로 걸어간다.
배는 부르다고 하면서 발길은 붕어빵에게로 가고 있다. 남편은 슈크림 천 원어치를, 나는 맞은편에서 호두과자랑 땅콩빵 섞어 이천 원어치를 샀다. 둘만의 금요 미식회. 슈크림 맛은 어떻고, 땅콩 크기는 어떻고 쫑알쫑알거리며 집으로 갔다. 삼천 원으로 우리는 겨울 분위기를 샀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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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구두구 동백이랑 용식이 봐야지.
‘동백꽃 필 무렵’ 16화를 틀었다. 한 시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몰입해서 봤다. 어느 장면은 깔깔깔 푸하하 웃어버리고, 어느 장면은 미간을 찌푸리며 걱정을 하는 우리. 드라마로 소중한 금요일을 같이 나눌 수 있어 기쁜 밤. 갑자기 남편은 오밤중에 세차를 하러 떠났고 나는 자유로운 시간을 가지고 있다. 따뜻한 차, 붕어빵, 모과 두 개, 다정한 말과 글로 오늘도 평화롭게 잘 보냈다. 나의 모든 것에, 내 곁의 모든 것에 평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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