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Spring (1)
몇 주가 지났다. 아직 학교는 시작하지 않았지만 나는 나에게 충격을 준 임시숙소에서 벗어나 원래 내가 살기로 했던 기숙사로 오게 되었다. 임시 숙소에서 처음 받았던 느낌은 어느새 익숙해져서 나는 잘 적응해 지내고 있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지내지 했던 생각은 이 정도면 살만한 데로 바뀐 지 오래였기에 추운 날 기숙사를 옮기는 게 귀찮아졌다. 하지만, 옮긴 기숙사는 너무 좋았다.
학교 기숙사를 선택하는 방법은 학교 사이트를 통해서 학생이 선택할 수 있었다. 학교 캠퍼스 안에는 여러 가지 타입의 기숙사 건물이 있지만, 학교 사이트를 참고해도 이 기숙사가 좋은 지 아닌지는 구분하기 너무 어려웠다. 사진을 찾아봐도 건물 앞 사진뿐이고 건물 안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시스템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내가 선택한 건, 앞에서 3번째, 안전하게 중간을 선택하는 것이었다. 보통 금액대를 비교해서 사소한 것도 다 비교하는 성격인데 아무것도 모르면 그냥 중간을 뽑는 게 가장 안전하다고 믿었기에 나는 모든 선택지에서 3번째를 골랐다.
그래서일까, 알파벳순으로 정렬되어있던 기숙사 명단에서 내가 고른 곳은 D로 시작하는 건물이었다. 그리고 6층까지 건물이 있었는 데 나는 중간인 3층을 골라 신청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나는 운이 엄청 좋았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무지성으로 운에 맡긴 선택지는 학교 캠퍼스 내에서 신식 건물에 속해 있었다. 학교 캠퍼스 안에 학생 식당은 3개였는데 그중 1개가 내가 고른 기숙사 1층에 위치해 있었다. 4인실의 공동 침실을 선택했지만, 코로나의 여파인지 4인실을 2명이서 사용해 같은 건물 1인 침실보다 더 넓고 깨끗한 공간을 사용할 수 있었다. 천운이었다.
그렇게 내가 한 학기 동안 지낼 공간에 나는 짐을 풀었다. 짐을 정리하고 이것저것에 다시 심심해질 때쯤, 학교에서 이메일이 왔다. 코로나로 인해 모든 오리엔테이션이 Zoom을 이용한 온라인이었지만, 오프라인으로 학교 캠퍼스 투어를 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선착순이었기에 외국인 신입생 중에서 20명만 신청이 가능했다. 원래의 나라면, 코로나로 인해 한정된 공간에 있는 데 지겨워지지 않았더라면, 나는 신청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어휘가 주는 설렘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그런 힘이 있었다. 그렇게 내 이름이 명단에 7번째로 들어갔다.
투어를 신청한 아이들이 모이기로 한 그 시간, 그 장소까지 도착할 때까지 나의 어설픈 용기에 대한 후회가 반복되었다. 1월 끝자락의 캔자스는 너무 추웠다. 필리핀의 따스하고 선선한 날씨에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 캔자스의 겨울은 얼어 죽을 것 같았다. 학교 투어 후에 해가 진 거리는 낯섦과 추위에서 오는 두려움이 그 추위에 힘을 보태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만, 투어에서 나는 파키스탄에서 온 비스마를 만나게 되었다. 개학 전이라서 텅 빈 기숙사에 혼자라고 생각했는 데 알고 보니 그 친구도 나와 같은 기숙사 1층에서 살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에게 밥 친구가 되었다. 어설프고 고생한 것 치고 아주 괜찮은 수확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정식 학기가 미뤄졌다. 원래는 1월 18일에 시작이라 13일까지 들어오라는 통지를 받았던 것이었는 데 코로나로 인해 2월 1일로 학기가 미뤄졌다. 처음으로 2월에 시작하는 거라고 했다. 그렇게 나는 학기 시작하기 전에 부족함 채워 생활에 적응할 시간이 주어졌다.
타지에 홀로 떨어지면, 밖에 나가기가 참 두려워진다. 특히, 나는 핸드폰에 유심이 없었다. 밖에 나가면 의지하는 구글 맵이 작동을 하지 않아 낯설고 큰 캠퍼스에서 목표한 지점을 돌아다니려면 미리 갈 위치를 캡처해서 가는 수밖에 없었다. 21세기에서는 느끼기 힘든 구질구질함이었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먹는 다고 했던가. 나는 시대와 조금은 동 떨어진 느낌이 드는 이 방법으로 넓은 학교 캠퍼스 안에서 목표 장소로 참 잘 돌아다녔다. 이 방법으로 캠퍼스 안에 있는 학교 병원에 가서 서류도 제출하고, 학교 아이디카드도 받았으며, 학교 투어도 다녔다.
그렇게 나의 구질구질함이 싫어서 방의 침대와 한 몸이 되어가고 있을 때, 택배로 유심을 배달받았다. 건물을 벗어나는 순간, 인터넷이 끊기는 나에게 택배 수령처까지 가는 수고스러움이 싫었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익숙해진 걸까. 별로 대수롭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유심을 손에 넣었다.
나는 장담한다. 내 핸드폰에 유심이 처음 들어간 그 순간이 고대 문명이 처음 불을 발견했을 때보다 더 행복했다는 것을. 이미 있었던 것을 잃고 다시 얻게 됐을 때의 그 반가움과 안도감에서 오는 행복함은 결코 작지 않았다. 매우 만족스러웠다.
유심을 얻은 나는 이제 미국에서 활동하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없었다. 구글 지도가 함께하는 나는 무적이었다. 연락할 사람이 없어 연락처를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이 큰 함정이었지만, 그게 뭐 대수인가 내가 좋으면 그만이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