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와 계단사이
밴쿠버의 한 주가 다시 열립니다.
사순절, 첫 번째 복을 떠올리기에 어울리는 계절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오늘 아침, 밴쿠버에서 가장 분주한 역 중 하나인 커머셜 역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반대편 승강장에서는 사람들이 다운타운과 UBC 방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지요.
다들 뛰다시피 계단을 오르다가, 긴 에스컬레이터 위에 올라서서 잠깐 숨을 고르고, 다시 열차를 향해 달려갑니다.
그 옆에는 같은 방향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
높고 길어서 그런지, 그 넓은 계단에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에스컬레이터는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 있는데, 계단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고 비어 있습니다.
그 풍경이 묘하게 마음에 남았습니다.
“우리는 다들, 무엇을 채우기 위해 이렇게 뛰고 있을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답은 아마 “돈”일 것입니다.
집세와 대출, 등록금과 생활비, 노후와 자녀 교육까지 생각하면,
뛰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구조 속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늘 조금은 헐떡이는 얼굴로 살아갑니다.
시간표를 꽉 채우고, 계단 대신 에스컬레이터를 탑니다.
조금 덜 힘들고, 조금 더 빨라 보이는 길이라면
그게 어디를 향하는지 충분히 묻기도 전에 사람들의 발걸음이 몰립니다.
반대로, 계단은 텅 비어 있습니다.
조금 더 힘들고, 조금 더 오래 걸리는 길.
그래서인지, 오히려 그곳은 넉넉하게 비어 있어
가끔씩 오르내리는 몇 사람만이 그 공간을 온전히 누립니다.
에스컬레이터와 계단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건, 어쩌면 굳이 계단을 선택하는 마음과 닮아 있지 않을까.”
성경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주석을 보면, 여기서 ‘가난하다’는 말은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는 사람,
스스로의 힘으로는 인생을 다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을 가리킨다고 합니다.
우리는 흔히 이 말을 너무 거창하게만 생각합니다.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상태가 되어야만
“심령이 가난하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아예 시작도 못 하고 주저앉아 버리곤 합니다.
하지만 오늘 커머셜 역의 풍경을 떠올리며,
저는 심령이 가난하다는 마음을 조금 더 일상적인 언어로 바꿔 보고 싶어졌습니다.
어쩌면 심령이 가난함은,
남보다 앞서 뛰어가려는 마음을 잠시 뒤로 물리고
조금 더 일찍 집을 나와, 조금 더 천천히 걸으며
계단을 오르는 사람의 속도에 나를 맞추어 보는 것
같은 데서 시작될지도 모릅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라면 서로를 스치듯 지나치기 쉽지만,
계단을 오르다 보면 어느 순간, 옆 사람의 숨소리가 들립니다.
비슷한 속도로 올라가다 보면,
자연스레 발걸음과 호흡이 맞춰지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나는 더 빨리, 더 높이, 더 멀리 가야 한다”는 강박에서
조금씩 자리를 옮겨,
“조금 느려도 괜찮아.
내 옆의 사람과 보조를 맞추며 함께 가는 길도 좋다”라고
말해 보려는 작은 결심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순절은 예수께서 광야에서 40일을 보내신 시간을 기억하는 절기입니다.
어쩌면 이 기간은,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선택해 보는 연습을 하기에 좋은 때인지도 모릅니다.
이번 주만큼은,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바꾸어 보는 건 어떨까요.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조금 더 걸어 보기
커피 한 잔 값만큼의 소비를 줄이고, 그만큼의 시간을 비워 보기
누군가를 따라잡기 위해서가 아니라,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 주기 위해 하루 중 10분을 떼어 두기
이런 사소한 선택들이 모이면,
우리 마음에 “비워진 계단” 같은 여백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그 여백은 처음엔 어색하고 허전하게 느껴지지만,
조금 지나면 그곳을 하나님과 이웃이 채워 주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천국이란, 언젠가 저 먼 곳에서 받을 상이기 이전에
오늘 여기, 내 안에 자리를 내어 드릴 여백이 있을 때
조금씩 맛보게 되는 현실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주를 이렇게 열어 보려고 합니다.
에스컬레이터 대신 계단을 올라보기.
누군가를 추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옆 사람과 눈높이를 맞추고, 속도를 맞추기 위해 조금 일찍 움직여 보기.
그리고 숨이 조금 차오르는 그 계단 위에서
내 마음속 욕심과 두려움을 천천히 내려놓아 보기.
“주님, 제가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합니다.
그래도 이 길을, 누군가와 함께 천천히 올라가 보고 싶습니다.
저의 빈 곳을 당신과 이웃이 채워 주시게 해 주세요.”
심령이 가난하다는 건,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되라는 명령이 아니라,
“모든 것을 스스로 채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복음의 초대일지도 모릅니다.
바쁜 월요일 아침,
커머셜 역의 텅 빈 계단을 떠올리며
우리 안에도 작은 ‘빈 계단 한 칸’이 생기기를.
그 비어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이웃을 다시 만나는 한 주가 되기를 소망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