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쿠버의 새벽을 기억하며
몇 년 전 어느 새벽이었다.
밴쿠버 시내. 노동의 현장에서 어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소리가 들려왔다. 거라사의 광인처럼 마약에 중독된 이들이 밴쿠버의 어둠을 뚫고 지르는 아우성. 그 소리가 가슴을 쳤다.
그리고 그 순간 무언가가 나를 두드렸다.
인간의 어떤 주의도, 어떤 사상도, 자유주의도 보수주의도 아닌 — 예수의 이름으로 빛으로 서 있는 십자가의 희생만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생각.
논리가 아니었다.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었다.
그런데 그 새벽이 내게 특별한 이유가 있다.
40대가 시작될 때부터였다.
제도 안에 있었다. 전통에 익숙했다. 목회자로서의 자리도 있었다. 그런데 속으로는 구원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한 채 살았다. 믿음의 언어는 알았지만 그 언어가 내 것이 아니었다. 형식은 있었지만 생명이 없었다.
그리고 잘 풀리지 않았다. 사역도, 관계도, 내 안의 무언가도. 그럴 때마다 또 나 자신에게 실망했다. 왜 나는 이 모양인가. 믿는다면서 왜 이렇게 공허한가.
40대를 그렇게 보냈다. 50대 중반까지 그렇게 흘러갔다.
겉으로는 목회자였다. 안으로는 희망을 잃어가는 사람이었다. 그 간격이 나를 조용히 무너뜨리고 있었다.
50대 중반의 어느 새벽이었다.
밴쿠버의 어둠 속에서 들려오던 그 울부짖음. 마약에 중독된 이들의 아우성. 거라사의 광인이 떠올랐다. 무덤 사이에서 소리 지르던 그 사람. 아무도 그를 제어할 수 없었던 그 장면.
그런데 예수는 그 사람 앞에 멈추셨다.
그 새벽 그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처음으로 울었다. 저들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나를 위해서였다. 나도 오래 그렇게 살았다는 것을. 제도와 형식의 무덤 사이에서 조용히 울부짖고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자리에서 무언가가 나를 두드렸다.
어떤 주의도, 어떤 사상도, 어떤 제도도 아닌 — 예수의 십자가만이라는 그 확신.
거의 20년 만에 찾아온 확신이었다.
성금요일에 다시 묻는다.
복음이란 무엇인가. 기쁜 소식이다. 그런데 무엇이 기쁜가.
나를 온갖 것에 집착하게 하는 욕망으로부터, 두려워하게 하는 세상의 논리로부터 — 자유로워지는 것. 가난 그 자체에 들어가는 것. 비교하지 않고, 증명하지 않고, 군림하지 않고 — 예수의 이름 앞에 그냥 서 있는 존재가 되는 것.
40대부터 50대 중반까지 내가 갖지 못했던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기쁜 소식. 자유. 그냥 서 있는 것.
그리고 그 자유로움 속에서 저울추의 균형을 맞추듯 — 기울어진 쪽으로 몸을 기울이는 것. 약자와 소수자들과 어깨동무하며 걷는 것. 친절과 환대를 먼저 내미는 것.
그것이 내가 오늘 이해하는 복음이다.
꿈이 있다.
12명이 함께 앉을 수 있는 테이블. 갈릴리의 그 작은 식탁처럼. 소규모 공동체들이 서로 연대하고 연결되는 것. 제도의 무게 없이, 위계의 압박 없이 — 예수의 이름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
AI라는 인류 지식의 협력자와 함께 그 연결을 더 넓히는 것. 기술이 사람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휴먼 터치를 더 깊게 만드는 도구로.
밴쿠버의 새벽 울부짖음에서 시작된 그 확신이 이 꿈으로 이어졌다. 20년 가까운 공허함을 지나 찾아온 그 새벽이 오늘의 나를 여기 세웠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날이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셨다. 그날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십자가가 세상을 바꾸었다.
힘으로가 아니라 낮아짐으로. 승리로가 아니라 희생으로.
오늘 나는 그 십자가 앞에 선다.
거의 20년의 공허함과 희망 없음의 시절을 지나 이 자리에 서게 됨을 감사한다. 치매 엄마와 함께하는 일산의 아침을 감사한다. 아직 만나지 못한 갈릴리 테이블의 사람들을 기대하며 감사한다.
복음은 기쁜 소식이다.
50대 중반의 그 새벽에 처음으로 그것이 내 것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그 기쁨이 여기 있다.
일산에서, 2026년 성금요일 아침.
요한복음 19:30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해시태그: #성금요일 #복음 #기쁜소식 #갈릴리테이블 #십자가 #해방의복음 #환대 #친절 #소수자 #평신도묵상 #가나안신자 #브런치신앙 #다이루었다 #밴쿠버 #Newwineski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