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공동육아 교사들2
내가 어렸을 적 엄마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며 지금도 듣고 싶은 말이 있다.
“그래도 널 키우며 행복했단다”
하지만 결혼, 출산과 함께 살아오던 고향을 떠나 서울 살이를 하며 독박육아를 한 엄마한테 이 말은 아직도 듣지 못했다. (앞으로도 듣지 못할 것 같다.)
고된 서울살이에 가부장적인 남편에 사춘기 제대로 온 아들에.
받칠대로 받친 엄마는 때때로
“느그들 아니었으면 나도 내 맘대로 하고 살앗씨야”
하며 거친말 덧붙여 했다.
아이를 키우느라 자기 뜻대로 살지 못했다는 엄마의 말
집안 살림하고 아이 키우는 일 외에 자기 자신은 없었다는 엄마의 말
그 서러운 엄마의 말들은 나에게 가시처럼 콕콕 박히고 칼날처럼 슥슥 나를 베었다.
상처받은 내 어린 자아는 내가 첫 아이를 출산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내가 원해서 한 결혼이고 남편과 충분한 대화와 이해, 합의 끝에 낳은 아이였다. 그러나 아이를 낳고 묻어두었던 어린 자아는 시도 때도 없이 내 마음에서 칼춤을 추었다.
설상가상 첫 아이는 잠자는 것도 수유도 어려운데에대가 뭔가 불편해서 한번 울기 시작하면 뒷 끝이 남아 불편함이 해결되어도 제풀에 지쳐나가 떨어질 때까지 울어대는 육아난이도 상위클래스 아이였다. 예민한 어린 핏덩이를 돌보며 내 마음에서 칼춤을 추는 내 어린 자아에게 휘둘리며 매일 매일 눈물을 쏟았다. 꽃노래도 하루 이틀이지 매일 매일 울어대는 나에게 남편은 “뭐라도 좀 해봐”라고 했다.
그 뭐라도 해봐라는 말이 서러워서 기를 쓰고 뭐라도 해보려 했다.
고운 소리 안 하는 친정엄마 찬스를 써서 일주일에 세 번 한 시간씩 운동을 해보았다. 가끔은 내 앓는 소리에 시누가 와서 아이를 봐주고 나는 혼자 커피숍에 가서 앉아있기도 해봤다. 유축기로 젖을 짜내며 파트 타임 일을 해보기도 했다.
뭐라도 해봐도 아이와 있는 일상이 고되고 슬프기만 했다. 온 마음을 다해 “널 사랑해” 라고 말하지 못하는 내가 미웠다. 사랑은 하는데 “널 키우는 이 순간이 행복하지 않은 엄마”여서 미안했다. 나는 수 많은 검색과 추천을 통해 상담실을 찾아갔다. 상담실에 가서 두시간 동안두 눈이 퉁퉁 붓도록 엉엉 울고 나서야 나는 내 어린자아가 나 마음속에서 칼춤을 추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난 내 마음을 고쳐내고 미안하지 않은 엄마가 되고 싶었다. “널 키우는 내내 행복했단다”라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초기 상담을 마치고 견적이 나왔다. 일주일에 한번 40분~60분. 최소 3년의 상담이 필요하다 하였다. 한 회기당 15만원씩 한 달을 4주라 생각하면 한달에 60만원. 그렇게 3년을? 당시 우리 가정은 외벌이었다. 중소기업도 아니고 소소 기업에 다니는 남편의 월급으로는 아이들 기저귀 값도 손가락 셈하면서 사던 때였다.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나는 그렇게 눈물 육아를 하는 새에 연년생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음으로 두 아이를 맡기고 일주일에 한 번씩 나를 위해 나갈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그렇게 눈물의 시간이 흘렀다. 돌이 지나지마자 아이를 차례 차례 단지내 가정형 어린이집에 보냈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보내도 아이들을 위한 일을 하는 내가 행복하지 않아서 일을 시작했다. 찌그럭 빠그럭 대며 파트 타임으로 하던 일을 풀타임으로 그리고 정규직 자리로 꾸역꾸역 옮겨가며 일을 했다. 시간이 흐르며 예민한 아이 육아가 조금씩 적응되기도, 육아 난이도가 낮아지기도 했지만 아이들에게 “널 키우는 일이 행복한 엄마”는 아이었다.
그래서 나는 어린이집을 선택하는 일에 조금 더 예민했을지도 모른다. 이사와 함께 공동육아 어린이집(중랑구 너나들이 어린이집)을 선택하며 내가 가장 기대했던 것은 내 죄책감의 해소였다. 내가 나의 자아를 찾겠다고 발악하는 시간동안 아이의 시간도 따뜻하고 행복하길 바랬다. 잔뜩 스트레스 받아 모난 돌이 되어 있는 나와 있는 시간보다 좋은 교사와 함께 더 나은 시간을 보내길 바랬다. 이기적이게도 엄마인 나보다 더 좋은 시간, 더 좋은 환경을 바래 공동육아 어린이집을 선택하였다.
내가 처음 쓴 공동육아 날적이
윤0이가 너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온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이 윤슬이 이름을 다 알고 있었고 잘 불러 주어서 너무 고맙다고 말합니다.
어린이집에 윤0이 이름과 선0이 이름이 써있어서(아마도 신발장과 마스크 거는 자리에 붙은 이름표 같습니다) 좋았다고 하네요.
하원시에 연두가 “축하할일이 있어서 조금 늦어져요” 하여 윤0이에게 생일잔치나 누가 축하 받는 일이 있었냐고 물었는데, “우리가 축하받았지” 하며 기분 좋아합니다.
오빠들이 자신을 잘 챙겨주고 단0는 엄마랑 같이 왔다는 말도 하고 친구도 있고 언니도 있어서 좋았다고 하네요.
간식으로 계란이 나왔는데 노른자는 먹기 싫다고 말했다고. 뿌듯해 하기도 했어요.(계란을 엄청 좋아하는데 노른자는 엄청 싫어해요ㅠㅠ)
윤0이가 말하는 기분이 너나들이에서 따뜻하게 환영받은 것 같습니다.
사실 윤0이가 적응을 잘 할지 걱정했는데 윤0이에게 행복한 첫쨋날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일은 윤0이 아빠 “자라”가 등원 시킵니다~
레몬에게 처음 받은 날적이
안녕하세요?
작성해 주신 글 보며 미소가 번지더라고요.
윤0이의 행복한 마음이 잘 전해졌거든요~^^
너무 감사하고 대견합니다.
어제는 밥, 국, 반찬 다 잘 먹긴 했어요
두부는 원래 싫어한다고~
소보루처럼 으깨진 두부라 그랬을까요?
옷 정리도 알려준 대로 잘하고
나들이도 즐겁게 잘 따라와 주고요
우리 방에는 진0원이라는 6살 사랑 많은 언니가 있는데
그 언니가 윤0이 손 씻는 방법이랑 옷 정리하는 방법
교실 구석구석 놀이하는 방법을 친절하고 깔끔하게 알려주더라고요
그리고 김윤0이라는 7살 오빠가 있는데
윤0이랑 이름이 같다면서 두 손 꼭 잡고 나들이도 함께 하고
놀이도 함께 하며 '윤0 윤0' 한 다정함도 나누었답니다.
아빠 '자라'랑 등원해서 어제 언니가 설명해준 대로
옷이랑 가방 정리 잘했고요. 즐겁게 지내다 낮잠도 잘 자네요
노래는 부르지 않고 옛이야기 듣다 약간 뒤척이다 스르륵 잠들었어요
참 나들이 장소에서 고라니 혹은 토끼? 암튼 똥을 발견했는데
다들 호기심 가득 똥을 탐색하고 나뭇잎과 나뭇가지로 잡아보고요
급기야 손으로 눌러보고 깨뜨려 보는 등 한참을 똥 놀이했네요
윤0이의 신나는 표정과 웃음이 아직도 생생해요
너무나 잘 해내고 있는 윤0이라 고맙고 대견한 마음입니다.
좋은 오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