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중순의 근황과 이윽고

어느 늦봄 아니면 초여름 혹은 늦가을의 주말 오전을 떠올리며

by UNI


1. 최근 건져올린 문구는 '온전하게 전하고 싶은 진심'



2. 지난 9일에는 창작산실 프로그램으로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휴먼스탕스 <이윽고>를 보고 왔어요. 후기를 남길 생각 없이 가볍게 보고 올 생각으로 간 건데, 웬걸 정말 좋은 부분들이 있더라고요. 휴먼스탕스는 어떤 공연을 하는지 그걸 파악해 보고 싶어서 간 공연인데 즐겁게 보고 나왔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마치 해무가 일렁이는 바다 위에서 바람과 하나가 된 정령 같은 무용수들의 춤 구간이 저는 제일 좋았어요.


와중에 지난 알티밋 정기공연 더블빌 중 <빙빙>에서 눈에 들어왔던 이사랑 무용수를 다시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고요. 이사랑 무용수는 이번에도 빛이 나더라고요. 본인이 작품과 하나 된 느낌을 연달아 계속 주고 있어서 정말 잘 보고 있습니다. 다른 공연에서도 또 뵐 수 있길. 기대하고 있어요.


아, 그리고 공연 의상이 좋았어요. 특히 한국무용 파트들에서의 의상 느낌이 좋더라고요. 너무 과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고. 관객과의 대화가 있는 회차의 공연을 봤다면 후기를 남겼을 법도 한데 그걸 놓쳐서... 이 정도로 갈음합니다.



3. 휴식기를 가지고 싶어서 한동안 일을 하지 않고 취미로 학사 학위를 따면서 쉬었는데(?), 요즘 일을 다시 시작했어요. 하고 싶은 메인 잡이 있어서 거기에 서브로 하는 거라 풀타임 잡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재택 준비작업에 시간 리소스를 더 잡아먹는 것 같은 느낌? 초입이라 그런 것 같고 익숙해지면 좀 더 나으리라 봅니다. 그렇지만 힘들긴 해. 역시 잘 하고 싶으니까 이런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맨땅에 헤딩이기도 하고. 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저에게 도움이 될 과정일 거예요.


올해는 두 가지의 낯선 타이틀로 불리게 될 텐데, 하나는 이렇게 이미 시작되었고요 또 하나는 이미 불리긴 했지만 아직 실체가 없어서 올해는 이것의 실체를 만드는 과정들을 메인으로 실천할 계획이에요. 세상의 많은 것들이 내가 올해 이걸 꼭 해야 한다고 가리키고 있어서 주어진 상황에 따라 가변적이더라도 어떻게든 시작해 볼 것.



4. 요가 수업의 가장 마지막 순서로는 늘 사바아사나가 있어요. 사바아사나는 산스크리트어로 '사바'와 '아사나'가 합쳐진 합성어인데 이걸 번역하자면, '주검 자세' 정도가 될 수 있어요. 요가 매트 위에 완전히 이완한 상태로 송장마냥 누워서 완전한 휴식을 취합니다. 이때는 수련실의 조명도 전부 꺼서 어둑어둑하고 정적도 흘러요. 요가를 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이 시간을 좋아할 것 같은데요, 저 또한 역시 그렇죠.

언젠가의 주말 아침 요가 수업이 끝나고 사바아사나 시간의 기억인데요, 매트에 가만히 누워서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조명이 꺼져 어둑어둑해진 공간으로 옅은 햇빛 한 줄기가 들어와서 천장을 비추고 있더라고요. 아마도 늦봄 아니면 초여름이었을 거예요. 아니면 늦가을이거나. 주말이고, 오전이고, 고요하고. 눈앞의 잔잔한 빛줄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정말 평화롭더라고요. 몸도 마음도. 또 언젠가의 기억은, 아마도 사바아사나 시간이 맞았을 것 같은데, 누워서 눈을 감고 쉬는데 일순간 모든 감각이 일시적으로 전원을 끄듯이 끊긴 찰나가 있었어요. 눈을 감았으니까 시각은 차단되었고 귀는 열려있으니까 듣는 건 자유로운데 그때는 이것도 뚝 끊기더라고요. 이 찰나에 내가 죽는 순간의 감각은 이런 거겠구나를 느꼈어요. 모든 감각이 차단되는 그 순간이 참 신기하더라고요. 죽는다는 건 그런 거잖아요. 신체의 기능이 멎으면서 외부의 감각이 더 이상 뇌로 전달되지 못하는 그 순간. 그 순간을 경험한 기분이었어요. 그러고 나니까 죽음이라는 게 덜 무서워졌달까요. 원래도 죽음을 그렇게까지 무서워하지는 않았지만. 모든 생명체는 언젠가는 죽음을 맞이하는 거고, 그 죽음은 꼭 평균 기대수명이 되어서야 발현되는 건 아니기도 하니까요.


비단 우리나라 문화에서의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죽음을 얘기한다는 건 참 터부시되는 것 같아요. 하지만 좋은 끝을 위해서는 평소에도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과 죽음을 실천한다는 것은 전혀 다른 층위의 이야기기도 하고요. 그렇게 저는 죽음에 대해 종종 생각해요. 일종의 상실이랄지, 그저 상실이라고 해도 될지 애매하다고 저는 생각하지만, 어쨌든 누군가를 잃은 경험이 있으니까 다른 사람들보다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기도.



5. 코코라는 애니메이션이 있어요. 픽사의 작품이고 2017년, 2018년 즈음에 상영됐고요. 꽤 흥행을 해서 유명하긴 할 거예요. 이 애니메이션은 멕시코의 축제인 '죽은 자의 날'을 모티브로 해요. 망자를 기리는 날이고요, 이승이 있는 사람들이 죽은 사람을 기억한다면 죽은 사람은 저승에서 여전히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죠. 가끔 코코의 OST인 Remeber me가 듣고 싶어지는 때가 오는데, 날이 추워지면 특히 그런 것 같아요.


참 양가적인 감정이에요. 망자가 모든 게 다 끊어진 채로 0으로 돌아가서 평온했으면 하는 마음과 어디선가 여전히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이 늘 같이 드는 건 여전히 어쩔 수 없는 걸까요. 후자는 살아있는 사람의 욕심 같다는 생각도 조금 들지만... 이번에도 해를 돌고 돌아 Remeber me가 생각나는 요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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