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기억으로부터 멈춰버리는 시간이 있다. 누군가와 행복한 한때였거나, 숨어버리고 싶었던 부끄러운 감정, 슬프지만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한 다짐의 의지, 그 어떤 것이라도 좋다. 우리는 지워버릴 수 없을 감정과 경험을 모조리 쓸어 담아, 일 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오는 숫자에 모아두었다. 여전히 시간은 흐른다. 두 개의 시간 사이 새롭게 만들어진 일들을 차곡히 보관해 둔 상자만이 이정표처럼 멈추어 서 있다. 그곳을 출발점 삼아 우리는 다시 숫자를 세고 기억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2014년 4월 16일. 모두가 하나의 배만을 바라보던 그 날 우리는 또 하나의 상자를 만들었다. 4월에 멈춘 채 많은 일이 담기었던 기억의 날로부터 어느덧 7년이 지났다. 다큐멘터리 영화 〈당신의 사월〉은 고통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세월호의 가족들로부터 시선을 돌려 이제 모두의 세월호가 된 기억에 관해 이야기한다. 아픔의 역사를 가장 개인적인 일상에서 끌어올린 영화는 모두가 경험한 서사의 얼개로 관객의 지난 7년을 돌아보게 만든다.그래서 나 또한누구도 피할 수 없던 7년 전 그날에 서 있던 자신을 다시 떠올려 보기로 했다.
4월 16일 인천항에서 제주로 가는 여객선이 침몰했다는 포털의 메인 뉴스가 나의 첫 기억이었다. 강의 내내 뉴스 페이지를 몇 번이고 새로 고치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았다. 동아리방의 친구들은 대부분 우려와 안타까움, 그리고 약간의 무관심을 첨가한 자신만의 기분을 안고 분 단위로 변하는 상황에 관해 몇 마디씩 거들었다. 방송사마다 특보를 내보냈고 같은 구도의 항공사진과 실시간 영상을 틀어주었다. 한결같은 화면에도 은근히 달랐던 목소리 안에는 재난상황의 정확한 전달 대신 피해자의 보험료와 자극적인 인터뷰가 담겨있었다. 생긴 지 불과 3년밖에 안 된 종합편성채널의 존재는 여전히 적응되지 못할 일이었다. 하지만 나를 더 무섭게 만들었던 건 전원 구조 자막을 띄운 지 몇 시간도 안 되어 그와 정반대의 소식을 접하고, 탑승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줄어들기를 반복하는 그 어처구니없던 무지의 혼란, 그리고 점점 해가 지는데도 배 안에 사람들이 갇혀 있다는 뉴스가 지워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SNS에서는 실시간 피드로 현 상황을 평가했고, 사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의 분노로 타임라인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 순간에도 배는 검은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골든 타임, 민간 잠수부, 컨트롤 타워, 팽목항, 에어포켓. 낯선 단어들이 종일 눈과 귀를 맴돌았다. 누군가의 절규와 분노, 죽음의 절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비현실적인 일상에 야속한 숫자 카운트만 늘어갔다. 악화일로에 치달은 현장을 바라보는 제삼자의 슬픔과 두려움은 어느새 분노와 무력감이 되었다. 국가와 정부는 신뢰를 잃었고 의심은 쌓여갔다. 죽어가는 이들 앞에서 애써 상황을 축소하고 몰아가려는 노골적인 행태에 평정심을 잃은 피해자들은 거리로 나왔다. 언론은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따라갔고, ‘피해자 다움’이라는 가이드라인에 조금이라도 어긋난다면 언제든지 물어뜯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국가가 손을 놓아버린 현실에 절박한 연대의 외침은 평범한 일상을 앗아간 이들을 반정부 종북 세력으로 몰아갔다. 이념적 갈등을 부추긴 이들은 세월호라는 단어에 수십 겹의 프레임을 덧씌웠고, 생존과 진실을 향한 필사적인 투쟁은 격화되었다. 누군가는 평범한 일상으로 발길을 돌렸지만, 다른 누군가는 가족을 잃고 불의한 사회에 저항하는 운동가가 되어 있었다. 그 악순환의 끝에는 곡기를 끊은 광화문광장의 부모를 향한 증오의 말과 폭식 투쟁. 정치적 공방에 휩쓸려 분열된 피해자들에 가해진 또 다른 상처가 있었다. 그때는 지겹다는 말이 채 일 년도 되지 않아 터져 나온 혐오와 광기의 시대였다. 나는 누군가가 예상치 못한 비극으로 일상이 바뀌는 사회를 바라지 않는다. 삶의 이정표가 바뀌는 순간을 단지 우연과 운명으로 넘어가기에는 그들에게 지워진 짐이 너무도 크고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극과 전진은 너무도 자연스레 수레바퀴의 빗살처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불안과 공포는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라는 세월호 피해자의 공허한 외침을 들은 이 모두에게 앙금이 되었다. 시간은 지났고 누군가는 처벌을 받았지만, 그것이 진정한 치유가 아니란 사실은 자명했다. 분노는 곧 죄책감과 미안함이 되었고, 사람들은 광장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국정농단 행위는 국가적 참사에서도 예외가 없었고 부당한 권력과 죽음을 끝내기 위해 시민들은 청와대로 향했다. 누구보다 큰 상처를 받았을 세월호 가족들은 시민들에게 도시락과 촛불을 건네며 감사와 응원을 보냈다. 비극으로 송두리째 바뀐 누군가의 삶을 도저히 볼 수 없었던 이들은 함께 기억하고 싸우기로 했다. 100만 명이 모이고, 청와대가 움직였다. 거대하게 보였던 국가권력이 시민의 힘으로 끌려 내려진 순간이었다. 영화를 보며 2018년 추웠던 겨울 광장 앞을 다시 떠올렸다. 모두의 목소리가 터져 나왔던 그 공간에는 시민들의 열기와 알 수 없는 해방감이 존재했다. 다 함께 같은 목소리를 냈던 그 연대를 떠올리면 외롭고 그리워졌다. 각자의 목소리가 얽혀 하나로 이어졌던 시간이 어쩌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의 감정에서였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세월호의 오늘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강력한 명령처럼 우리를 붙잡는다.
출처 | 다음 영화
7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진상규명은 진행 중이다. 세월호 가족들은 자신의 반대편에서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같은 쪽 사람들에게 듣고 있었다. 새로운 권력이 등장한 이후, 세월호 가족들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자신들이 있던 자리에 이제는 공수가 바뀐 시민단체가 모여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을 뱉어내는 장면을 바라보았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모두에게 같은 크기의 힘을 쥐여준다. 그렇기에 타협과 관철의 시간은 길고 느리게 흘러간다. 변하는 듯 변하지 않는 현실을 직면한 그들에게 지난 4년은 더욱 아프게 다가왔다. 아직 기억의 상자는 채워지고 있고, 그들의 삶도 조금씩 바뀌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는 우리에게 물었다. 때로는 뒤로 후퇴하고, 때로는 멈춰있는 진실과 시간 앞에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사회적 참사로 평범한 시민이 투사가 되었다. 그들을 지켜주기 위해 우리는 촛불을 들었다. 모두의 마음에 깊이 들어온 아픈 사월은 자연스럽게 잊히고 있다. 고통을 망각하는 생물학적 반응을 이기는 해답은 끊임없이 기억하고 버티는 것이다. 광장에서 마이크를 잡았던 선생님은 매년 학교에서 세월호를 기억하는 행사를 주최한다. 통인동이 열렸던 그 전율의 순간을 체감했던 카페 사장님은 손님에게 세월호 리본을 건네준다. 진도의 참극을 목전에서 바라본 어부는 세월호를 기억하기 위해 텐트를 옮겨 놓았다. 각자의 방식대로 끈질기게 버티는 사람들이 있다. 당사자를 제외한 그 누구도 그 사람의 아픔에 온전히 다다를 수 없다. 그래서 영화는 누구도 아닌 당신의 기억 속 잊지 않겠다는 다짐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모두의 기억이 된 사월의 세월호는 아직 매듭지어지지 않았다. 하지만당신의 기억 속 매듭지어 놓은 세월호의 리본은 여전히 단단하게 묶여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