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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잠 Mar 21. 2022

보통명사 고유명사

잡다한 생각들

“미안해” “고마워” 너무 흔한 말들이었다. 아니, 흔해져 버린 것일까. 언젠가 처음 만들어졌을 땐 저것들도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었을까. “어쩔티비”나 “저쩔냉장고”처럼 시대에 단단히 눌어붙어 금방이라도 지나갈 것 같은 말들은 탄생과 함께 강렬함을 지닌다. 오래 누리지 못할 것이란 예감과 그 설움을 터뜨리기라도 하듯. 이런 감각이 낡고 오래된 말들에 담겼던 순간도 있었을까. 혼자서 묻는 말이 떠나질 않는다. “과제는 안 해?”


문득 너에게 하는 고리타분한 말들에는 그래도 특별함이 숨어 있다고 속삭이던 날들이 떠올랐다. 나는 보통은 누군가에게 고유명사가 되길 원했지만, 일종의 애정 결핍과도 같은, 이마저도 좋게 포장한 듯싶은, 집착의 순간들,  순간을 글로 쓰려고 들면 대상은 보통명사가 되어버린다. 매번 달고 사는, 쓰면서 나만의 것을 정리하고 싶다는 말은 솔직하지 못함의 방증이거나 아니면 부족한 글을 숨기려는 방패가 되려나. 아무래도 후자인 듯싶다.



“그렇게 부르셔야 외워집니다. 외우셔야 부를 수 있는 게 아니고요.”


권여선, 「모르는 영역」, 『아직 멀었다는 말』, 문학동네, 2020, 30쪽



언젠가 읽었던 단편소설의 한 대목. 소설가와 제목 모두 기억나지 않았지만, 몇 개의 키워드로 쉽게 찾았다. 꺼내고픈 기억이 도통 나오지 않아 안달 나는 고통도 이제는 기록으로 남겨 두어야 할 듯싶다. 영원히 잊어버리지 않도록.


“동수”라는 인물이 (직장동료에 가까웠던) 친구의 아버지에게 자신을 소개하는 장면이었는데, 이상하리만큼 직업인 PD는 기억하지만 이름을 기억하지 못해 남기는 말이었다. 당장 책을 볼 수는 없어 출처가 기억인지라 정확하진 않지만. 원래 고유명사는 잘 기억나지 않는 법이라고. 그래서 직책이든 뭐든 의미가 담긴 보통명사가 부르기 쉽다고 변명하는 부분이 이어졌다. 이 부분만 소설에서 잘려 나와 오래 남았다.


언젠가 만나게 된다면. 누구를 그리워하는지조차 불명확하지만. 아마도 스쳐 간 우연일 테지만. 그때의 너에게 건넸던 보통명사들은 정말로 고유했다고 말하는 상상. 그리고 비슷한 마음을 건내주었던 너에게, 고마움이란 다시 보통화 된 명사로 답하는 나.


‘지질’을 멈추고, 과제 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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