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구장 빌런들에 대한 간단한 고찰

탁구 즐겁게 치고 싶은 탁린이입니다

by 선잠

탁구장에 다니면서 다양한 형태의 불쾌한 사람들을 만났다. 탁구는 보통 두 사람이 가까운 거리를 마주 보고 치는 스포츠이기에, 다른 네트 운동에 비해 상대적으로 “직접적인 “ 무례의 느낌을 주는 개인들을 마주하기가 쉽다. 말 건네기도 쉽지만, 말 한마디를 안 하고 쳐도, 상대가 어떤 기분인지 느껴지고 전달된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나를 하나의 연습 상대로 존중하지 않는다. 거기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을 서슴지 않기도 한다. 물론 존중하는 방법을 모르는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무례하지 않기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못하는 것은 ‘안 함’의 영역이라 생각한다. 자신들이 보기에 그러지 않아야 하는 상대들에게는 절대로 선을 넘지 않으니까.


탁구는 크게 자세와 코스를 일정하게 연습하는 랠리와 상대를 고의적으로 속이기도 하며 점수를 따내는 게임으로 구분된다. 이때 실력 차이가 많이 날수록 게임을 부탁하기 어려워진다. 고수의 입장에서 하수와의 게임은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에 따라 다르지만, 탁구 실력 향상을 위한 열정이 넘치는 고수라면 하수와 5판 3선의 오랜 게임을 진행하기 부담스러워하기도 한다. 비슷한 사람과의 연습과 비교한다면 시간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핸디를 아무리 많이 달고 쳐도 보통 고수는 하수와의 게임에서 (직관적으로는) 크게 배울만한 것이 없다고 느낀다. 그렇기에 탁구장에서 게임은 자연스레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끼리 이루어지거나, 실력 차이는 많이 나지만 개인적 친분을 가진 사람들에게 부탁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결국, 이를 천천히 체감하게 된 나는 탁구장의 모든 사람에게 먼저 탁구를 쳐달라고 부탁하지 않는다. 우선 사람들을 나보다 하수, 나보다 고수로 나누는 시도 자체가 의미 없다고 생각하고, 이를 파악하기도 어려운 수준의 구력이기에 탁구장에 가면 그냥 앉아 있는다. 누군가 먼저 쳐달라는 또는 쳐준다는 제안이 오기 전까지.


유일하게 내가 먼저 탁구를 부탁하는 사람들은 탁구장에 처음 와 막 적응을 시작한 뉴비들이나, 내가 하고 있는 탁구대로 오셔서 게임판을 넘겨주시지만 이후 뻔뻔하게 랠리를 부탁하지 못하는 성격의 사람들뿐이다. (보통 게임이 끝나면 게임을 봐주는 사람과 랠리 또는 게임을 진행한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탁구장 문화를 옹호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랠리도 잘 되지 않는 초보일 때 뻘쭘하게 탁구장에 앉아 시간을 보낸 경험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 회사는 경력직만 뽑아요” 내건 곳에, “그럼 신입은 언제 경력을 쌓냐”라고 묻는 것과 유사한 의문이다. 도대체 뉴비는 언제 게임하고 언제 고수되나? 그리고 그들과의 탁구에 정말 배우는 게 없을까? 혼자서 반문하기도 한다. 굳이 공자의 말을 꺼내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배울 점은 누구에게나 있지 않나 생각한다.


그 밖의 모든 사람들에게는 먼저 다가가지 않다 보니 탁구장에서 나의 이미지는 보통 “탁구를 막 시작한 신입” 정도다. 그래도 간혹 실력이 비슷한 사람들이 나의 성격을 파악하고 먼저 다가와 게임을 하고 랠리를 연습을 할 수 있는 상황 정도는 되었으니까.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없다. 지겨운 급나누기로 점철된 세상을 떠나 즐겁게 몰입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탁구장이 의미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플로 모임을 가입해 생각보다 쉽게 게임할 수 있는 탁구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다.


게임의 결과에는 크게 관심이 없고, 탁구를 예쁘고 깨끗하고 완벽하게 치고 싶어 했던(하는?) 나지만, 모임을 통해 흔히 ‘사파’라고 불리는 사람들과도 꽤 친해졌다. 중고등학교 방과 후 교실이나 군대 등의 공간에서 익숙하게 촉발된, 순수하게 게임을 이기기 위한, 각종 복잡한 회전과 신박한 기술(?)이 장착된 상대를 만나는 것도 흥미로운 경험이다. 쉽고 편한 공들을 주고받는 레슨에서 벗어나 누군가를 만나 상대하는 경험은 소중한 자산이 되고 있다. 무언가 상대에게 배울 점이 있다면 자세나 기술과 스타일 등은 중요하지 않다고 느껴간다.


비슷한 맥락으로 탁구장에서 나를 위하는 것으로 포장하여 “심심하시니 같이 쳐드릴까요?” 묻는 요청이나, 반 강제적으로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같이 쳐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요구하는 사람들 역시 거부하지 않는다. 수준을 운운하기 이전에 무엇이라도 한 수 배울 수 있다면 좋다고 생각한다. 묘하게 느껴지는 자신이 나보다 상대적 고수라는 태도는 애교 수준으로 넘길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저런 태도로 나에게 탁구를 요청하는 존재들이 탁구를 정말 못 칠 때이다. 그러니까 부수 따위로 규정되는 탁구 실력 수준의 문제가 아닌 최소한의 규칙이 장착되지 않은 정말 탁구를 칠 줄 모르는 사람들. 서로를 위한 연습이라는 사실을 부정하는 방식으로 탁구를 치는 경우다.


이들은 랠리를 할 때 상대에 대한 존중을 기반으로 최대한 일정한 공을 전달하여 스스로와 상대의 자세를 교정하도록 하는 목적과 이를 위해 필요한 태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저 “되돌아오지 못하는 공”들을 혼자만 “재미있게” 그리고 “열심히” 뿌려댄다. 그리고는 반말로 몇 마디를 얹는다. “아직 이런 것도 못 치는데, 더 열심히 쳐야겠네” 계통이거나 “땀을 많이 흘리네, 운동 열심히 된 거니까 나한테 음료라도 사야지?” 느낌이거나, 아니면 “오늘은 컨디션이 좀 별로인가 봐요. 많이 못 치시네!” 느낌의 조롱이거나. 이들은 보통 고수가 가진 실력보다는 태도를 우선 학습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그렇게 까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게임을 요구한 어떤 사람은 당연하게도 자신이 우월하다는 입장에 서서, 나의 실력이 많이 늘었다는 일방적인 칭찬을 건네다가, 갑자기 자기 서브를 받지 못한다고 역정에 가까운 화를 내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테이블 끝에 공이 맞거나 네트를 타고 운 좋게 들어가는 공에도 사과를 하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에지도 받을 수 있어야 그것이 실력이라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또 어떤 사람은 나로부터 8점의 핸디를 받고 치면서도, 나는 그것마저 힘을 다 뺀 상태로 게임을 하다가, 한 세트라도 내주면 주변 동료들에게 가서 결과를 알리며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귀여운 느낌의 자랑이 아닌, 정말 누군가를 밟으면서 자신을 세우려는 태도로 점철된 행동들을 보인다. 역시나 고수가 가진 잘못된 태도만을 골라 습득한 사람들. 부족한 실력을 메꾸려는 시시한 방식들.


추정하기에 우선 탁구를 주로 치는 연령대에 비해 내가 눈에 띄게 어린 외형을 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 같다. 자연스레 탁구 실력에 관계없이 부모의 직업이나 나의 한 달 수익 등을 아무렇지 않게 묻거나, 오래 배워봤자 아무런 의미 없다는 어쩌라는 식의 조언을 건네는 사람들도 너무나 많다. 배설과 대화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들.


게다가 내가 흔히 초보자들이 그러하는 것처럼 탁구장에서 조용히 앉아있다는 사실과, 뉴비를 보면 수준에 맞추어서 즐겁게 탁구공을 주고받는 모습 등은 나에 대한 진입장벽을 낮추어주기도 하는 것 같다. 함부로 제안해도 괜찮은 상대, 혹시나 거절하면 쓸모 이상으로 까분다고 뒷말을 만들어내기도 좋은 상대. 나를 둘러싸고, (주로 초보인) 특정 사람하고는 잘 쳐주는데, 유독 본인에게는 먼저 다가오지 않는 이상한 사람이라는 서사와 소문도 실제로 만들어졌다.


그들은 까칠한 고수들 비위 맞출 필요도 없이 평소에 하지 못한 모든 탁구 기술을 랠리 중에도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그걸 반드시 유쾌하게 모두 받아주어야 하는 사람 등등으로 나를 규정한다. 탁구 자세도 나아가 인생에 대한 태도도 편하게 조언할 수 있는 그런 존재로 인식되어 가고 있는 것 같다.


이는 몇 개의 탁구장을 바꾸고 돌아다니다가 이전 탁구장의 관장님께 전해 들은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거기에 최근 바꾼 탁구장에서 또다시 만나는 사람들의 몇몇 이야기도 섞여 있다.


멍청하고 재미없고 인생의 연차가 주는 미덕을 전혀 갖추지 못한 능구렁이를 자처하는 이들의 대처. 그리고 그것 하나 못 참고 똑같이 대응하다 결국 탁구장을 바꾸게 되는 나의 삶도. 모두 참 멋없다고 생각했다.


무언가를 배우는 것은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은 공을 오래 쳤다는 사실은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고 보장해주지 못한다. 배움과 관계 나아가 관계를 통한 배움에는 객관화가 요구된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상대를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 단 한순간이라도 멈추어서 자각할 필요가 있다.


탁구를 잘 치고 즐겁게 치고 싶은 마음을 모두 공유하고 있다면, 서로의 몰입을 기반으로 탁구를 배워나가는 사람들이라 전제한다면, 지금 이걸 왜 하고 있는지 정도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왜 시간과 돈을 써가며 우리는 공을 주고받고 있는 것인가.


우기고 떼쓰는 일방적인 즐거움을 찾는 무례한 사람들로 늙어가고 싶지는 않다. 순간의 이유와 탁구가 주는 리듬에 함께 온전히 빠져드는 즐거운 경험을 하고 싶다.


다음에는 내가 사랑하는 탁구 어르신들과 선배/동료들을 소개하는 글쓰기로 찾아오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