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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초이 Nov 14. 2023

브뤼셀 시내 산책

2주살이 in 브뤼셀

어김없이 어둑어둑한 하늘과 함께 시작되는 아침. 원래 늘 일찌감치 일어나 아침부터 부산스레 뭔가를 하는 편이지만 브뤼셀에 온 이후로는 흐린 아침하늘과 추운 공기와 더불어 왠지 모를 게으름이 피어나 침대 속에서 밍기적거리는 시간이 길어지고 있다. 몇 달간의 바쁜 일상을 끝내고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여유를 부려보는 거라 아직까진 그냥 좋기만 하다.   


느지막이 침대에서 나와 집 앞에 호숫가에서 조깅하고, 돌아와서 씻고 피아노도 좀 뚱땅거리고, 가족친구들이랑 영상통화도 하고, 있는 재료로 대충 점심을 만들어 먹으면 1~2시 정도. 집순이가 못 되는 나는 이때부터 밖에 나가고 싶어 몸이 근질거린다. 우리가 머무르는 동네인 루이스(Louise) 쪽은 오며 가며 얼추 살펴봤으니 이번에는 대중교통을 타고 브뤼셀 시내 중심가로 한 번 나가보기로 했다. 


평일 오후, 비바람 때문에 더욱이나 한적한 브뤼셀 시내


시내 가장자리 쪽에 있는 브뤼셀 왕궁을 먼저 가보려고 했는데 버스를 타고 오면서 보니 왕궁이 전체적으로 보수공사 중에 있어서 입장은 포기. 대신 왕궁과 가까운 곳에 벨기에 역사박물관인 벨뷰 박물관 (BELvue Museum)이 있어 그곳부터 들렀다. 낯선 나라에서의 박물관 투어는 내겐 언제나 설레는 일.


우선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벨기에가 공식적으로 설립된 지 200년도 채 안 됐다는 것이었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라는 강대국들에 둘러싸여 기나긴 유럽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격동의 세월을 버텨오다가 1830년경 벨기에 혁명을 통해 지금의 벨기에가 세워졌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역사박물관에서 전시하는 내용이나 방식 자체도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 많이 났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건 국가의 공식적 언어 사용 체계였다. 스위스와 마찬가지로 벨기에도 언어 사용권에 따라 지역이 나뉘는데 벨기에에서는 네덜란드어권, 프랑스어권, 독일어권으로 나뉜다. 네덜란드어는 벨기에 인구의 50% 이상이 사용하며 벨기에를 반으로 나눴을 때 북쪽을 차지하는 플란더스 지역(Flanders; 우리가 아는 플란더스의 개의 그 '플란더스'가 맞다)의 공식언어이다. 벨기에 인구의 35%가량이 사용하는 프랑스어는 벨기에 남쪽의 왈롱 지역(Wallon)의 공식언어이다. 벨기에 동쪽 끝에 위치하는 독일어권 지역은 사용 인구가 1% 미만으로 가장 소수에 해당한다. 


플란더스 사람들과 왈롱 사람들 간의 지역갈등은 벨기에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한데, 이러한 갈등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국구 사람들이 모여사는 수도 브뤼셀은 지리적으로는 플란더스 지역에 해당하긴 하지만 공식적으로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같이 사용한다. 내 느낌엔 브뤼셀에서는 프랑스어가 더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았고 영어로도 어디를 가나 소통이 잘 되었기 때문에 돌아다니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  



잔뜩 공부한 뒤 한껏 뜨끈뜨끈 해진 머리를 식히는 데는 벨기에의 찬바람이 제격이었다. 앞머리 고데기는 온데간데 사라진 지 오래 ㅎ 경사로를 따라 이어지는 멋들어진 정원과 시계탑을 지나 관광객들이 모여드는 휘황찬란한 상점가들을 지나다 보면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그랑플라스(Grandplace) 광장. 몇 년 전 이곳에 처음 왔을 때만큼의 감동은 아니지만 오랜만에 봐도 정말이지 유럽 스럽게 아름다운 곳이다. 레미제라블의 작가인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벨기에의 그랑플라스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광장'이라고 하며 극찬했다고 한다. 그 명성에 걸맞게 유네스코에서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곳. 


그랑플라스 전경. 광장 중간에 서있으면 중세유럽으로 시간여행한 기분도 든다.


그랑플라스의 건물들 중에서도 유독 내 눈을 사로잡은 건 벨기에 시청사 건물이었다. 15세기에 지어진 뾰족뾰족한 고딕양식의 건물로, 브뤼셀 시내 초입에서 봐도 한눈에 보이는 96m 높이의 첨탑이 압도적이다. 그 기세에 매혹되어 건물 앞쪽으로 바짝 다가가 기둥과 벽면을 자세히 살펴보면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이 조각으로 형상화되어 있는데, 특히 서있는 사람들의 조각 밑단에 웅크리거나 찌그러져(?) 있는 사람들의 조각이 뭔가 계급이나 사회의 부조리함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중세시대였으니 종교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 가능성도 있고... 다음에 또 방문하게 되면 설명을 좀 들어봐야겠다.  


앉아계신분들.. 기괴해요..

  

그랑플라스와의 재회를 마무리하고 버스정류장을 찾아 돌아가는 길에 들린 서점. 브뤼셀에서는 가는 곳마다 심심찮게 서점을 발견할 수 있었는데, 영어서적도 꽤 있어서 잠깐 추위도 몰아낼 겸 쉬어가기 좋았다. 또 벨기에는 틴틴 (Tin Tin)이나 스머프 같이 클래식한 만화 캐릭터들의 산지이기도 해서 서점에 알록달록하게 비치된 만화책들을 둘러보다 보면 그 특유의 오랜 작화감성에 젖기도 한다. 불어만 좀 할 수 있었어도 틴틴의 모험 시리즈 한두 권 정도 사가서 읽어볼 법 한데 약간 아쉬움...(이래 봬도 틴틴은 티베트까지 다녀온 궁극의 모험가이다).    

    

비록 책은 못샀지만 브뤼셀 감성 잔뜩 묻힌 엽서 여러 장 구매한 걸로 만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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