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 비유-내가 쓸모없는 일을 하고 있다고 여겨질 때-

알 수 없는 능력의 발현

by 정돈서재

대학 막학기에 있던 일이다.


취업이 걱정됐지만, 시기가 좋았던 건지 대기업에 한 번에 합격했었다. 참 지금은 보기 힘든 옛날이야기이다. 학기 초에 원하던 곳에 합격을 하고 나니, 다른 곳은 마음 편하게 면접비를 받으러 몇 번 갔었다. 하지만 스터디에 있는 다른 지원자들에게는 간절한 자리라는 걸 알고 나서는 면접에 가지 않게 됐었다. 그렇게 시간이 남게 되자 사람들에게 합격 인사를 다녔다. 참 기분 좋던 시기다. 경험해보지도 않은 복지와 혜택들을 이미 다 아는 척 친구들에게 설명하고, 심지어는 다른 회사와 저울질도 했던 미숙하지만 행복한 순간이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만나다가 나중에는 심리학과 교수께도 점심을 얻어먹게 됐다. 학교 앞 “홍원”이라는 중식집에 나를 포함해 3명의 친구가 더 모여 합격 축하를 받았다. 교수님께서는 MBTI의 한국화 작업을 한 두 분의 교수님 중 한 분이시고(1987년 작업, 1990년 완료), C.G.JUNG(칼 융)에 정통한 정신분석가 이 시기도 했다. 내겐 너무 존재감이 크신 교수님께서 해준 조언 중, 내가 오랫동안 간직했으나 이제는 깨고 나와야 할 내용을 전달해보고 싶다.


교수님께서 앞으로 직장생활과 삶에서 고려했으면 좋겠다고 한 것은 역시나 “적성”이었다. 주요 내용은 “칼 융”이 말한 히스테리 증상의 원인에 대한 것이었다.


“칼 융이 말한 히스테리 증상의 원인들이 있어. 나는 네가 일하면서 그리고 앞으로의 삶에서 그런 히스테리를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예를 들면, 굉장히 내성적인 아이에게 부모는 외향적이고, 리더십 있는 모습을 원한다고 하자. 그래서 부모는 아이에게 웅변을 가르치고, 학급의 반장을 맡게 하지. 극도로 내성적인 이 아이는 내면적으로는 거세게 저항하나, 외형적으로는 부모를 따를 수는 있겠지. 하지만 이것이 지속되면, 이 아이에게는 히스테리 증상이 생긴단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사람에게는 에너지의 정도가 있는데 이 에너지를 넘어서는 것도 위험하고, 억압하는 것도 위험해. 고등학생에게 공부만 하라고 묶어두고 감시한다면 에너지가 넘치는 이 학생은 에너지를 분출할 수 없게 되지. 반면, 나이가 들고 에너지가 별로 없는 정치인이나 직업 CEO에게 무리한 선거 유세활동을 시킨다면 이들에게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히스테리 증상이 생긴단다.”


그 밖에도 교수님은 걱정 어린 마음에 다양한 예시를 들어주셨다. (<학문적으로야 무의식적 갈등, 원형의 활성화, 심리적 에너지의 정체, 트라우마와 억압, 개인화 과정의 장애>와 같은 용어가 있겠지만) 간단히 정리하면, 나 자신을 알고 직장 생활을 하라는 소리였다.


‘그러나 어쩌나?! 나는 이미 회사에 합격했는데… 미리 좀 알려주시지!’


이런 생각이 오랫동안 내 맘속에 맴돌았다. 아마도 회사에서 직무가 잘 맞지 않는다고 느낄 때마다… 상사와 갈등이 있을 때마다… 성과가 잘 나오지 않을 때마다… 나는 교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은 것 같은 불안감이 있었다. 그리고 나를 알고 적성을 미리 알았더라면! 하는 후회가 이어졌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런 검사와 가이드는 숱하게 많았다. 그중에서 내가 따른 건 <연봉과 처우, 선배들이 알려주는 회사의 분위기,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바라봐줄지와 같은 것들>이었다.



그렇게 해서 나는 약 10년간 다양한 도전을 한다. ‘나’란 무엇인가?!


어린 시절 운동선수가 되고, 연예인이 되고, 공부에서 뚜렷이 두각을 나타내는 친구들이 너무 부러웠다. 그 과정에서 최고가 되지 못해도 내게 그런 관심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니 내가 잘하는 건 무엇일까? 남들은 내게 뭘 추천할까? 별별 생각을 하며 약 10년이 흘렀다.



그리고 조금은 알게 됐다. 나는 사람을 편안하게 해 준다는 이야기를 너무나 많이 듣고, 다양한 지식을 쉽게 잘 가르쳐준다는 얘기를 듣는다. 그래서 그런지 많은 이들과 교류하고, 상대방이 모르는 내용에 대해 내 지식을 전달할 수 있었다. 성격적으로는 차분하고, 사람들과 조직 간에 ‘중재’를 잘한다는 소리를 듣는다. 이 점이 나를 평화의 수호자로 만드는 것 같다. 내게 큰 기쁨은 사람들을 위로하고, 격려해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내 글로 쓰긴 그렇지만 글을 잘 쓴다는 소리를 어렸을 때부터 들어왔다. 말도 그만큼 재밌게… 하는 것 같기도 하다. ㅋㅋ


이렇게 내가 잘하는 것들을 알게 됐지만, 이게 웬걸 돈이 되는 것 같진 않다. 아니 뚜렷이 직업과 연관되는지 모르겠다. 적어도 내 눈에는… 차라리 사회성이 없어도 수학, 과학을 잘한다든지, 노래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며 내게 없는 걸 또 끌어오고 급 우울감을 맛본다.



최근 나의 장점을 가지고, 이직을 생각하며 더 큰 고통을 맛봤다. 내가 잘하는 건 사람을 상대하는 것인데(차분하게), 왜 수많은 계약서와 법률을 보고 있는 것일까… 하는 현타가 온 것이다. 그런 마음이 들 때마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야지!” 하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고 느낄 때 오는 그 감정을 많은 사람들이 알 것이다. 심지어 내 적성도 아니다!라고 하면 더..! 그러다 보니 회사 업무도 집중을 잘 못한 채 지내왔다. 생각해 보면 내 직장 상사도 나를 탐탁지 못하게 여겼을 것이다. 열심히 하지 않는 직장생활. 돈만 받는 직장생활은 내 노동의 가치를 딱 그 돈 정도로 떨어뜨리고, 심지어 돈 때문에만 일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


그러던 중 나의 본질과 본질의 발현에 대해 생각했다.



가령 씨앗을 그 사람의 본질이라고 생각해 보자.


씨앗에는 꽃을 피울 수 있는 필수적인 요소들이 담겨있을 것이다. 우리 인간에게도 각자의 능력을 갖고 태어난다. 서로 다른 씨앗의 형태로 세상에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씨앗 자체만으로는 본인이 어떻게 꽃이 되는지 알기 어렵다. 아니 씨앗 자체로는 내가 왜 여기에 심겼는지, 내가 어떤 모양의 꽃이 될지도 모른다. 이들이 종국에 "무엇인가"가 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장소에 심겨지고, 토양으로부터 양분을 받고, 미생물이 작용하고, 지렁이도 꿈틀대고, 비를 통해 수분을 흡수하고, 나중에는 더 큰 성장을 위해 햇빛을 받아야 한다.



이런 자극이 씨앗에게는 편안하고, 항상 즐거운 일만은 아닐 것이다. 씨앗의 딱딱함이 깨져야 싹이 나온다. 씨앗은 토양을 뚫고 나오기 위해 노력하고, 햇빛을 잘 받기 위해 위로 더 커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씨앗처럼 다양한 자질이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발현시킬 요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같이 장밋빛 안락함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게 내게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울지 알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직장에서 모르는 일을 맡아서 알게되고, 상대하기 어려운 동료를 만나서 나의 생각을 넓힌다. 상사의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보고, 나는 올바른 행동을 하게 되고, 지금은 당장 관심 없고 못하는 일을 맡아서 나는 업무상 약점을 매운다.



이러한 이유로 나는 지금 이 순간 내 싹을 틔울 것들을 내가 "가려서" 받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언젠가는 내게 어떻게든 도움이 될 것이다. 사람들이 내게 부탁하는 일은 간접적으로 그 경험을 내가 흡수하니 나중에 꽃 피울 좋은 양분이 될 것이다. 내가 얻는 지식, 만나는 사람들이 내가 좋아서 계획에 넣었든, 불현듯 찾아와 인연을 맺든 나는 가리지 않고 좋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도 10년 뒤도, 20년 뒤도 나는 무럭무럭 자라나고 싶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