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에게 사랑의 반대말은?

by 정돈서재



나는 최근 “결혼 예비학교”라는 수업을 수강중이다. 물론 커플 참석 필수인 강의다. 누군가는 이런 수업도 듣냐고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좋겠다.”는 반응들이다. 과정별로 참 좋은 말씀들이 많지만, 지난주에는 부부생활을 관통하는 말이 나온 것 같아 글로 남겨본다. 재밌게도 주제는 “부부의 성” 이었다. 독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관심이 많겠지만, 아쉽게도 내가 전할 내용은 성관계의 테크닉이나, 더 나은 쾌감에 대한 내용은 아니다.

강의에서는 부부 관계가 단지 육체적 만남이 아닌, 정신적 심리적 만족이 전제돼야함을 강조한다. 내적 사랑이 있어야 외적인 사랑이 이뤄짐을 강조하는데, 여기서 강사님(박병은)이 한가지 질문을 한다.

“그렇다면 사랑의 반대말은 무엇일까요?”


이에 대해 마치 교육받은 것 처럼 열두 커플은 유사한 대답을 내놓았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

이것이 나같은 뇌구조를 가진 사람에게서 즉흥적으로 나온 답변이다.


조금더 생각한 사람은 어디서 들었는지

“무관심” 이라고 답변을 했다.

그 두가지 대답이 일반적이라며 강사님은 부부 사이에서는 사랑의 반대말이 "자기 의"라고 했다.



“자기 의”란 말이 낯설 수 있다.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쉽게 말하면, 내가 옳다는 확신, 혹은 내가 옳아야 한다는 욕구다. 단순히 고집이나 자존심과는 조금 다르다. 고집은 “나는 이게 좋아”이고, 자존심은 “나를 무시하지 마”라면, 자기 의는 “내가 맞아. 그리고 맞아야 해”에 가깝다.


부부 싸움의 대부분은 사실 사실관계의 다툼이 아니다. “내가 더 많이 배려했는데”, “내 방식이 더 합리적인데”, “나는 충분히 했는데” — 결국 둘 다 자신이 옳다는 걸 증명하려는 싸움으로 번진다. 이 순간, 상대를 이기는 것이 관계를 지키는 것보다 더 중요해진다. 그게 자기 의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미움은 상대를 향한 감정이고, 무관심은 상대를 향한 태도지만, “자기 의”는 나를 향한 집착이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더 은밀하고, 더 끈질기다. 사랑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자기 의를 붙들고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게는 사랑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접근법이라는 생각과 함께 최근 여자친구와 다퉈왔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정말 강렬하게 싸웠던 사건들을 돌이켜보면. “자기 의”가 반영 됐던 순간임이 분명했다.


삶을 살아가면서 "자기의"를 갖고 살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맞다고 판단한 일을 하지 않나?


하지만(독립운동을 하는게 아니라면..) 이것을 고수하고 물러나지 않을 때, 부부관계에서는 문제가 발생한다. 아무래도 내가 맞다 라고 이야기 하는 순간 상대방은 틀린 것이 되고 대화는 문제 해결보다는 서로의 허물을 들춰낼 소산이 크다. 대략 아래와 같은 양상으로 대화가 흘러갈 것이다.


- 남자 : “A는 무조건 A 로 해야 한단 말이야”

(혹은 내 생각에는~ 이란 말과 함께 각종 ‘자기 정당화’를 일삼을 수 있다.)


- 여자 : “뭐? 내가 틀렸단 말이야? 내가 이렇게 열심히 했는데?”

“네가 다 맞는 줄 알아?” 하면서 상대방이 잘못한 것을 따지게 될 것이다.


하지만 성숙한 성인이라면 알 것이다. 사람마다 깨닫게 되는 시간은 다르지만 내가 했던 주장이 모두 맞는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아니 더 나아가서는 상대방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는 것을…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린 두가지를 얻을 수 있다.(사실 무수히 많겠지만..)


첫째는 우리의 부족한 모습을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커플을 생각해보자. 남자는 주말이면 집에서 쉬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 피로를 푸는 방식이 각자 공간에서 재충전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반면 여자는 주말에 함께 나가고, 뭔가를 하고, 시간을 ‘의미 있게’ 써야 한다고 느낀다. 서로가 각자의 방식이 더 건강하고 합리적이라 확신한다. 결국 다툼은 “나는 쉬고 싶은데 왜 자꾸 끌고 나가려 해”와 “같이 있어도 왜 이렇게 따로 노는 것 같지”로 번진다. 둘 다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둘 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 즉 자기 의에서 한 발짝도 물러서지 않고 있었다.


또 다른 커플을 보면 양상이 조금 다르다. 청소 문제다. 한 쪽은 물건을 쓰면 바로 제자리에 두어야 한다고 느끼고, 다른 한 쪽은 주말에 한꺼번에 정리하면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이 경우에는 어느 한 쪽이 강하게 몰아붙이는 게 아니라, 둘 다 조용히 자기 기준을 고수한다. 말다툼보다는 서로에 대한 미묘한 실망이 쌓이는 방식이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사는 거지?”라는 생각이 반복되면, 자기 의는 더 은밀하게 관계를 잠식한다.


두 커플 모두 결국 갈등을 통해 한 가지를 직면하게 된다. 내가 옳다고 믿었던 것이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내가 자라온 환경과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사실이다. 그 직면이 불편하고 때로는 아프지만, 그 과정 없이는 서로를 실제로 알아가기 어렵다. 만나는 시간 동안 ‘나의 의’를 내세우고, 다시 허무는 일을 반복하면서, 우리는 조금씩 달라진다.


둘째는 자기 의를 내려놓음으로써 "협의"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커플이 모든 면에서 부딪혔는가? 그렇진 않다. 결혼식장을 고르는 것, 플래너를 통해 진행하는 스드메 등등 의견일치를 보는 것이 참 많았다. 일상 생활에서의 소비 성향은 나를 편안하게 했고, 고맙다는 말과 미안하다는 말을 필요할 때 참 잘해준다. 하지만 결혼 준비를 하다보니 서로 ‘절대’ 타협할 수 없는 지점들을 마주하게 된다. 나는 실리를 앞세웠고, 상대는 도덕적 기준을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결혼 예비학교를 통해서 알게 된 건, 부부 공동체를 형성할 때 절대적 기준이 존재하니 따른다기 보다는 부부가 협의해서 내린 결론이 그들에게 기준이 되고 그런 방향으로 공동체를 형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그 절대적 기준을 지켰으니 나는 당당해, 하지만 너는 그렇지 못하니 문제가 있어! 라는 태도보다는 가정을 지키는 것이 먼저이기에 그런 말씀을 하신 것 아닐까 한다. (가정의 목적을 함께 잘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나는 맞는 일을 하는 사람이니, 너는 잘 못됐고 내가 널 뜯어 고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면 크게 할 말은 없다.)


그런 의미에서 독자에게 드리는 제언!


그렇네~ 네 말이 맞아.

결혼을 준비하며 정말 무수히 많은 어른들께 듣는 조언이 있다. 우선은 물러나라. 혹은 받아들여라, 인정해라,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이다 등등.


도대체 어떤 결혼생활들을 하셨길래 이런 말씀을 하실까?


다행이도 “자기 의”가 강한 내가 존경하는 분들로부터 이런 조언을 들어서 나도 따르기로 했다.

마법의 문장 “그래 네 말이 맞아~“

이 말 한마디면...

- 흥분했던 상대방이 차분해지고

- 대립각을 세우던 두사람 사이에 각이 허물어지고

- 대화라는 것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된다.

- 무엇보다도 지도 교수님께서 해주신 말, “그것 하나 물러난다고 큰일 생기냐? 쪼잔하게.” 이 말을 듣고, 내가 “네 말이 맞아” 라고 하는 그말 한마디를 하기 힘들어하는 쪼잔한 놈으로 여겨졌다. 용서와 인내는 더 큰 사람이 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더 큰 사람이 되고싶어 하는 나는 그 흉내라도 내야겠다. ^^


아휴, 복잡하다~ 정말! 혼자 살아가는 것도 힘든데, 둘이 살아가는 건 얼마나 힘들까?! 지켜야할 것도 많고…

마지막으로 결혼은 우리의 삶을 제한한다. 그리고 그 제한이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닌 점을 수업에서 배웠다. 방학이면 해가 다 뜨고 점심에서야 일어나는 아들의 자유가 좋은 것일까? 일시적으로는 재밌는 경험일 수 있겠지만, 대체로는 건강을 망치고 생활 패턴을 무너뜨린다. 뭐든 해도 상관없으니 오늘부터 술을 많이 마시고, 몸이 상하게 생활한다면 그 자유가 좋은 것일까? 제한 사항은 불편하면서도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라고 여기기로 했다.


p.s

- 그래 네 말이 맞아~ 혹은 너는 그래서 이런 생각을 했구나, 너는 이런 점을 이렇게 느꼈구나(생각했구나)라고 말하라고 지도 교수님께 배웠다. 주어를 ‘너’로 해서 상대방 중심으로 생각하도록! 지나고 보면 마법의 문장이 될테니 참고하시길!


- 아직 결혼도 안한 JD 가… 이 글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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