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열매로 붙어있는 삶

이길을 선택하면 하나님의 계획에서 벗어날까?

by 정돈서재

얼마 전 교회의 한 지체의 고민 상담을 해주었다.


집에서는 로스쿨에 가길 원하는데, 이것이 정말 내가 원하는 길인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어느 가정이나 부모님의 기대치가 있으니 그럴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나오는 말이 내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내가 원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또 내가 커리어의 욕심으로 로스쿨을 가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길을 못 가는 것 아니냐”며 하소연했다.

특히나 교회에서 섬김을 열심히 하고, 교회 밖에서도 자타공인 성실맨인 친구이기에 “올바른 길”을 가고자 이런 질문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미국에 항공 유학을 갈 때도 비슷한 논리로 사고했던 것 같다.

“얼떨결에 대한항공 APP에 합격을 하게 됐는데, 이 길로 가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 내가 조종사의 본질보다는 돈만을 보고 이런 선택을 한 것은 아닐까? 올바르다는 단어 뒤에 나만의 다양한 기준을 붙여서 고민했던 것 같다.

지금도 이런 고민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고민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을 것이다. 특히 성실하며, 인정받고, 정답을 맞히며 정도를 걸어가는 기독교인의 경우 하나님만큼 절대적인 기준은 없을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잠언 16:9)


설교에서도 목사님께서 자주 말씀하시지 않는가?


“이 일에 대해서 하나님께 묻는 것,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일인지 물어보고 대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것이 물어보라는 것이지, 내가 답을 정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나와 대화를 나눴던 지체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1. 자기 중심성, 자신의 선택


나와 대화 나눴던 지체는 자신의 결정으로 인해 하나님의 계획이 틀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을 갖고 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내 계획의 힘이 얼마나 크기에 위대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틀어버린다는 말인가? 이것은 내가 내 삶의 방향을 모두 조절하는 주체라는 의식이 깔린 말일 수 있다.

돌이켜 본다면 과거의 내 성취와 실패 역시 하나님의 계획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나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 여기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자신의 선택”이 거의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여기게 만들 수 있다.


2. 하나님의 위대하심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하심은 내 선택 따위로 바뀌는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그렇게 작게 여긴단 말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잠언 19:21)


아무리 능력이 좋고, 자격을 갖췄어도 하나님께서 막으신다면 로스쿨에 들어갈 수 없게 하신다. 반면, 나는 준비가 하나도 돼 있지 않은데 쓰시기 위해서는 자리를 만드시고, 사람을 붙여주신다.


내 욕심과 주변의 인정을 위해서 MBA를 선택했다고 가정해보자. 내 의도는 불순했다고 내가 판단했으나(세상에서는 당연한 것이라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쓰시려고 한다면 내가 MBA를 우수하게 졸업하게 하시고 그 능력을 필요한 곳에 사용하실 것이다. 그러니 보다 자유해져도 좋을 것 같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 8:28)


열심론자들은 눈에 보이는 즉각적인 피드백을 통해서 하나님의 인정을 얻으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중 유효한 방법 중 하나는 바로 사역이다. 사람들과의 상호작용, 잘 짜여진 1년 치 계획과 목표를 따라가는 것, 그리고 결과물을 눈으로 보는 것. 그것의 유익이 매우 크다. 다만, 보이지 않는 것, 현재는 알 수 없는 것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항상 예비해 두신다. 그리고 기독교인의 특징은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것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브리서 11:1)



그렇다면 갈림길에 놓인 우리의 선택과 눈에 보이는 진전 없이 어떻게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3. 하나님의 열매로 붙어있는 것


마흔에 접어드니, 내 옛일이 생각난다. 많은 것을 판단하고, 결정하던 시기. 그리고 우울할 때면, 내 내면으로 깊이 들어가 나를 알려고 했던 시기가 있다.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왜 이럴까? 그리고 그런 암흑기를 맞이한 후 뒤를 돌아봤을 때, 일부 나의 성향을 알긴 했지만, 정확히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을 정의할 순 없었다. 계속 변하기도 하고.

오히려 시간이 지나고 나니, 그냥 나는 이런 사람이고, 너는 그런 사람이구나 받아들이는 부분이 커졌다. 이런 이해도가 생기자 결혼을 하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단계에서 알 수 없는 것들을 알아내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고통의 시간만 늘린다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한 달 뒤의 주식 가격을 정확히 예측해서 투자한다거나,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할지 모두 예측해서 행동하는 것과 같이 알 수 없는 일에 매달리는 것과 같다. 특히나 여러분들이 알고 싶고 두려워하는 “미래”에 대한 일은 더더군다나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저 물어본다. 매일 매 순간 기도한다. 그것을 알고 계신 분에게. 그리고 그것을 알고 계신 정도가 아니라 우리를 인도해 주실 분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빌립보서 4:6-7)

그렇게 매일 묻고, 대화하고, 하소연하고, 매달리고, 기뻐할 것이다. 그러다가 궁금해지니 말씀도 더 읽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께 매달려 있는 것이다. 마치 포도나무의 포도 열매처럼. 포도 열매가 포도나무를 떠나서는 영양분을 공급받지 못하고 죽으니, 붙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한복음 15:5)



그리고 나 역시 나의 미래와 여러분의 미래를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렇게 매달려 있는 동안에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통해, 그 완벽한 계획하에 성장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저 매달려 있기만 한다면! 믿음으로 붙어 있기만 한다면! 안전할 뿐만 아니라 형통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좋아하는 고성준 목사님의 명언을 남기며 마치겠다.

제발 이제는 생각하지 말고, 기도하라.”


p.s 하나님은 자녀들이 계획을 잘 못했다고, 그 선택이 문제라고 꾸짖지는 않으신다. 대신 구약과 신약을 통틀어 하나님을 불신하고, 하나님과 붙어있지 않은 자녀들을 아쉬워하고 아파하시며 징벌하시기도 했다.



이사야 43장 18-20절을 보면, 바벨론 포로로 잡혀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전에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것에 대해 희망하지 않는 장면이 있고, 그에 대한 말씀이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광야에서 나온 출애굽의 모습을 보았지만, 바벨론 포로로 잡혀있는 백성들이 보는 자신들의 처지에서는 그런 일이 절대 일어날 것 같지 않아 보였다. 그들의 생각과 미래에 대한 상상력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그래서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행하신 옛일을 생각해도 믿음은커녕 비아냥만 넘쳐났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자신이 보고 들은 것으로 제한해 버렸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너희는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 말씀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말고, 알 수 없지만 안전한 하나님의 길과 그 능력을 의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19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들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이사야 43: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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