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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L Sep 13. 2023

행복이라는 허상

진화심리학적 행복론을 기반으로 한 나의 생각




가끔 이런 철학적인 이야기도 적어볼까 합니다. 

세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급변하는 사회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일도 필요하지만 우리 마음 속의 본질적인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이자 호기심을 자유롭게 적어봅니다. 




‘A라는 결과로 인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A라는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유도하기 위해 행복이 존재한다.’




     우리는 생존하기 위해 행복감을 느낀다. 생존에 유리한 상황에서 행복감을 느끼게 뇌가 반응한다. 쾌락을 멀리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있는 것 같지만, 우리는 그 쾌락들 덕분에 생존하고 번식해야한다는 숙명을 따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행복하기 위해서 산다. 라는 주장을 할 순 있다. 이 행복론에서는 그런 생각은 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생존을 위해 행복감을 느끼는데, 행복(쾌감)의 자극이 너무 크다보니 그 행복을 위해 그 상황, 사람, 감정, 장소들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사실은 모두 생존과 번식을 위한 것임이 분명하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질까?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연구결과 빈곤만 탈출한다면 돈과 행복 사이엔 관련성이 없다고 한다. 오히려 행복은 상대적이라 일확천금(복권 당첨)의 사건이 내 소소한 행복들을 더이상 행복하지 않은 일로 만들어버린다. 또한 행복이든 고통이든 그 영향은 3개월 이내여서, 아무리 큰 행복도 결국 잊혀진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있다. 또한 행복은 흔히 행복 요소(돈, 외모, 건강 등)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객관적으로 얼마나 많이 가졌느냐보다는 이미 가진 것들을 얼마나 좋아하느냐에 달려있다.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의 관점에서 행복은 우리의 생존에 유리한 선택을 하도록 우리가 진화시킨 것임이 확실해 보인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는 언제 우리가 행복한지 예측하는 능력은 가지고있지 않다.


     주관적인 행복감은 다른 신념들과 마찬가지로 맥락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


     다만 확실해 보이는 것은, 마크 트웨인이 말했듯이



'우리 자신의 행복을 해부하는 것은 개구리를 해부하는 것과 비슷할지 모른다. 둘 다 해부 중에 죽어가기 때문이다.'   




     행복은 우리를 움직이는 동력 이상의 특별한 것이 아니다.





     행복이 분노, 죄책감, 질투, 짜증과 다른 점이 무엇일까? 내가 그것을 느끼고 싶다고 바로 느낄수있는 것도 아니고, 어떤 사건이 발생하면 자연스레 따라오는 마음 아닌가?


     그러고보니 긍정적인 감정어는 모두 행복으로 치환하여 말할 수 있는데 (기쁨, 고양감, 사랑) 부정적인 감정어는 하나로 묶을 수 없는것처럼 느껴진다. (분노, 죄책감, 질투는 하나로 묶을 수 없다.)


     마치 인간이 부정적인 것들에 대해 더 민감하게 만들어진 것같다. 그 편이 생존에 더 유리했을 것 같긴 하다. 행복을 주는 것들은 있으면 좋은거지만, 분노를 주는 것들은 없어야 하는 것들이기에 제거해야하는 요소들을 더 민감하게 인식해야 아직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을 것.


     우리는 분명 행복하다고 생각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왜 행복이라는 허상이라고 말하냐면 사실 별다를 것 없는 감정 or 상태인데 지나친 의미부여가 되어 흔히 ‘추구되어야하는 것, 최고의 가치, 없으면 안되는 것’이 되어버렸다.


     행복에 지나치게 집착하지 않을 때 그것은 어떻게 오는지,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지만 우리 옆에 있지 않을까? 오히려 집착하기에 못 보게 되는 것들이 많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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