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산이든 마찬가지겠지만 정상에 도달하기 직전이 가장 힘든 느낌이다. 가장 가파른 구간이라 힘든 것과는 별개로, 언제 정상이 나올까 하는 생각이 오히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 같다. 순례길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고 큰 언덕과 산을 넘으면서 알게 된 내 습관은, 정상에 도착하기 직전에 꼭 뒤를 돌아보고 잠시 멈추는 것이었다. 분명 저 앞이 정상이 맞는데 저 언덕만 넘으면 시원한 내리막길이 나올 텐데도 꼭 정상을 앞에 두고 한참을 쉬었다. 어쩌면 나는 '정상만 지나면 안 힘들어!'라고 했던 다른 사람들의 말에 실망을 할까 봐 무서웠던 게 아닐까.
정상을 지날 때 이전과 차이가 없으면 어떡하지, 저게 정상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상이 아니면 어떡하지, 이렇게 힘들게 오르막을 올라왔는데 기대만큼의 경치가 없으면 어떡하지….
오히려 정상을 앞둔 순간의 설렘과 기대, 그리고 희망을 더 즐기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 실력의 가능성과 한계가 정해지고 평가받는 게 두려워서 계속 시험을 미루는 수험생처럼 '나는 잘 해, 아직 시험을 안 쳐서 점수가 없을 뿐이지 나는 잘 해'라고 스스로 위안해 온 건 아닐까.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절벽 위에 서 있었다. 한 발 더 내딛으면 고꾸라질 것 같았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에도 나는 위태로웠다.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험이 눈 앞에 있었다. 시험준비를 할 시간은 없었다. 당장 이 절벽을 건널 수 있을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그렇기에 내가 보고, 듣고, 느끼게 될 순례길은 오롯이 나만의 것이어야 했다. 내 것이 없는 이 세상 속에서 걸음 하나 만큼의 공간은 내 것이 되어야했다. 그 과정 속에서 다치고 깨질지언정 나의 순례길이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순례길을 물음표로 둔 채 길 위에 올랐다. 영화나 책을 보기 전에는 스포일러를 다 읽고 가면서도 정작 순례길은 여행기조차 읽을 수 없었다. 수많은 여행기와 스포일러를 읽고 잔뜩 부푼 마음을 안고 간다면 반드시 실망할 거라 생각했다. 답을 찾으러 간 순례길에서 답을 못 찾게 된다면 분명 나는 좌절할 거라 생각했다. 그만큼 나의 순례길은 이유가 있어야 했다. 많은 걸 내려놓고 떠난 길이니만큼 내게 돌아오는 게 있어야만 했다. 내가 이 세상을 살아내어야 할 이유를 순례길에서 찾아야만 했다. 다른 사람의 이유가 아닌 나만의 이유가 나를 살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순례길은 기대도, 실망도 할 수 없는 백지의 상태로 존재해야 했다.
순례길 한 달의 기억으로 6개월을 살았다. 그때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며 6개월을 보냈다. 근데 이러다간 6개월이 아니라 6년도 넘게 기억 속에 갇힐 것 같아 이제 놓아주기 위해 케케묵은 일기를 꺼내게 되었다. 일기를 정리하는 건 시작부터 힘들었다. 워낙 많은 양이기도 했지만 그때의 감정을 다시 살리는 게 쉽지가 않았다. 너무 힘들었던 날의 일기를 보다 보면 당시의 기억이 떠올라 그때처럼 똑같이 울었다. 즐거운 날의 사진과 일기를 보면 너무 행복해서 하루 종일 기분이 좋을 정도였다.
관광지에서 여행하는 것처럼 기차나 버스나 택시를 타고 슝슝 관광한 게 아니라 작은 마을 길, 시골길, 산길, 숲길 구석구석을 내 눈으로 보고 내 발로 걸으면서 하나씩 보고, 듣고, 느끼면서 다녔다.
약 5천 장의 사진과 100개가 넘는 동영상을 정리했다. 사진을 많이 찍을 땐 하루에 200장 넘게 찍었고, 적게 찍은 날은 최소 70장이 넘었다. 동영상을 많이 촬영한 날은 8개가 넘고, 가장 적은 날도 1개는 꼭 있었다. 가장 많이 걸었을 땐 37km가량을 걸었고, 그때의 걸음 수는 약 55,000걸음이었다. 가장 적게 걸은 날도 7km정도 되었다. 가장 많이 일기를 쓴 날은 용서의 언덕을 넘은 날로 A4 5페이지 가량의 글이 있었고, 가장 적게 쓴 날은 술에 취해 5줄 정도 끄적인 게 전부였다. 술도 못 하면서 뭔 술이 그렇게 맛있었는지 하루도 빠짐없이 술을 먹었고, 단 하루도 같은 마을에서 숙박한 적이 없었다.
행복해서 울고, 기뻐서 울고, 힘들어서 울고, 서러워서 울었다. 울보였네, 울보였어. 어휴.
내 자그마한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위로가 되었으면 했다. 세상 어딘가의 누군가는 과거의 나처럼 지금도 벼랑 끝에서 망설이고 있을 것 같았다. 살아야 하는 이유와 자신의 존재가치를 찾는 그 누군가를 글로 만나고 싶었다. 손을 잡아주진 못 하더라도 '이런 게 있다'고 알려주고 싶었다. 혹시나 내 글을 읽고 솔깃하는 마음에 순례길을 떠나기로 결심했다면, 사실은 너는 살고 싶었던 거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더 절실하게 이유를 찾았던 거라고.
지금 생각해 보면 위로받은 건 그 누군가가 아닌 바로 나였다.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글에 녹이는 건 어려운 일이었지만, 그 자체로 행복했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과거에 매어있을 순 없었다. 나의 현재가 과거로 바뀌는 순간에 미래는 코앞에서 현재를 부르고 있었다.
나의 순례길은 끝이 났지만, 나의 현재는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돌아올 곳이 있기에 여행이 즐겁다는 말이 떠오르는 밤이다.
이제는 꿈에서 깨어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