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순례길 이후 내게 생긴 가장 큰 변화

by 양송이타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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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jpg 파리 샤를드골 공항으로 가는 길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파리에서의 마지막 아침이다. 공항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탔다. 파리에 머무르는 동안 개선문을 못 볼 줄 알았는데 마침 버스가 개선문을 지나갔다.


샤를 드골 공항에 도착했다. 남은 유로화 동전을 다 쓰고 가기 위해 마카롱과 초콜릿을 샀다. 크루아상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앞으로 11시간의 비행을 견디기 위해 목 쿠션에 공기를 빵빵하게 채웠다. 영화 두 편 정도의 시간이 흐르고 밤이 한 번 찾아왔나 싶더니 어느새 주변이 밝아졌다. 저 멀리 태극기가 보였다. 바람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자마자 괜히 울컥한 기분이 들었다. 세계여행을 몇 년 씩 한 것도 아니고 고작 40일 정도 해외에 있었을 뿐인데 왜 울컥했는지 아직 잘 모르겠다. 장기간 여행이 처음이라 그랬을까. 낯선 곳에서 낯선 음식을 먹으며 낯선 언어로 서툴게 얘기해야 하는 40일이 서러워서 그랬을까. 돌아올 생각이 없던 내가 무사히 돌아온 게 감격스러워서 그랬을까. 어찌됐건 나는 한국에 도착했다. 드디어 한국 땅을 밟았다.


인천공항에서 본가가 있는 대구행 버스를 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밥부터 먹었다. 외국에서 한국 음식은 거의 생각나지 않았는데, 한국 음식 특유의 매운맛이 가끔 떠올랐다. 라면의 매콤한 맛이나 동인동찜갈비의 마늘맛, 백김치의 얼큰한 국물이 한 번씩 생각났다. 좋아했던 고춧가루와 마늘이 팍팍 뿌려진 음식들을 먹고 나니 갑자기 잠이 몰려왔다. 기념품을 정리하고 입었던 옷들을 세탁기에 넣은 뒤 내 방으로 가서 낮잠을 잤다. 그동안 쌓아 온 피로가 한 번에 몰려온 모양이다. 그렇게 하루를 꼬박 잠을 잤다. 그리고 나는 완벽한 집순이로 재탄생했다.


다음 날 아침, 이제 뭘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차에 갑자기 머리가 눈에 들어왔다. 떠나기 전과 후가 확실히 차이가 나는 건 머리 뿌리였다. 까맣게 자라난 뿌리를 없애기 위해 미용실에 갔다. 태어나서 처음 해 본 탈색이 어색했던 게 한 달 전이었는데, 이제는 까만 뿌리가 보기 싫을 정도로 많이 자라서 다시 염색을 해야 했다. 노란 머리가 금세 익숙해졌던 것처럼 까만 머리도 금방 익숙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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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 떠나기 전 / (중간) 다녀온 직후 / (오) 다시 까만 머리로


밀렸던 웹툰을 보는 건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았고, 카카오톡에 쌓인 숫자를 없애는 데는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간 연락이 잘 되지 않은 날 걱정해 준 친구들을 한 번씩 보는 건 2주면 충분했고, 다시 떠나고 싶은 여행에 대한 마음을 식히는데도 역시 2주면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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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내게 힘들지 않았냐고 묻는다.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대가는 컸다. 발 곳곳에 물집이 잡혀 한 걸음씩 움직일 때마다 피부가 화끈거렸다. 물집이 잡힐 때면 바늘에 실을 꿰어 내 살을 뚫었다. 무릎을 다쳤을 때는 이러다 다리 한 쪽을 아예 못 쓰게 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마비가 되었고 근육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10kg 가까이 되는 배낭은 매일같이 내 어깨를 눌렀다. 날 누르고 있는 건 단순히 10kg의 짐이 아니라 내가 살아온 삶의 업보였다. 매 순간순간이 후회였다. 익숙하지 않은 등산화와 등산스틱, 배낭, 800km의 길과 지독한 더위는 날 지치게 했다. 겉으로 보이는 상처와 고통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신적인 고통이 열배는 더 컸다. 당장 오늘의 나, 어제의 나의 모습을 마주해야 했으며 1년, 2년 거슬러 올라갈수록 내 존재는 보잘 것 없어졌다. 과거야 어쨌든 현재의 나는 도망쳐온 것이 아닌가. 열심히 살았던 과거의 결과가 겨우 이런 거라니. 치열하게 존재했던 나는 내 머릿속에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남아있는 건 나에 대한 후회, 부모님과 친구들에 대한 미안함, 수치심 등이었다. 길을 걸으면서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정면으로 마주해야 했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걸었어야 했다. 벼랑 끝에 몰렸을지언정 걸음을 멈출 순 없었다. 바람에 떠밀려 길을 떠났어도 결국 발을 움직이는 건 나 자신이었다. 순례길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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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내게 까미노에 다녀온 후의 가장 큰 변화가 뭐냐고 묻는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나는 밀려드는 생각의 속도와 흐름을 내가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고 답한다. 거칠게 당하기만 했던 감정의 파도를 수정구 안에 담아, 내가 원할 때 흔들어 잠재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감정에 요동치지 않고 조금 더 큰 그림을 볼 수 있게 되었다고 답한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고, 하나. 둘. 빠를 필요도, 거셀 필요도, 휘몰아칠 필요도 없다. 그저 그렇게 천천히. 하나 둘 움직여가는 나의 감정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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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길에서 나는 비로소 내 시간과 공간, 그리고 감정들의 주인이 될 수 있었다. 나는 내 시간과 공간을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그걸 위해 까미노에 간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나의 시간과 공간을 내가 살아갈 수 있고, 살아낼 수 있다는 나만의 확신. 나의 존재에 대한 가치를 스스로 믿기 위해. 세상에, 사회에, 주변 사람들에게, 가족에게, 그리고 나 스스로에게 나의 존재가 유한하다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 한낱 먼지와 바람처럼 가볍게 흩어지는 나약한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이 시공간을 살아가는 한 인격체로서의 나의 존재를 확인하기 위해. 한 사람으로서의 나를 찾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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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까미노에 갔냐고 묻는다면 글쎄, 사실 아직도 나는 대답하기가 망설여진다. 벼랑 끝에 몰려 까미노에 갔고, 길이, 화살표가 나를 불렀다. 그렇게 도달한 산티아고에서 신은 내게 필요한 걸 주었다. 내 존재의 가치를 증명받는 것. 그게 내가 나로 설 수 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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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다. 나는 여기 있다. 나는 이 시간과 공간에 살고 있는, 나는 나를 살고 있는 나다.

때로는 작은 생명체로서, 큰 이해심을 가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한국인으로서, 가족으로서, 동료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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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다.

나는 불균형의 균열 위에 새겨진 존재를 지우고 나를 살아내기 위해 순례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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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길

6월 15일 - 7월 27일 (약 41일)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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