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말 늦게 일어났다. 예전에 석재오빠가 피레네를 넘어 도착한 론세스바예스에서 호스피탈레로가 깨워줄 때까지 잤다고 해서 한참을 웃었는데, 내가 오늘 그 꼴이었다. 호스피탈레로가 깨워준 건 아니었지만 아침에 2층 침대에서 눈을 떠 보니 주변에 남은 순례자는 아직까지 자고 있는 석재오빠와 나 이렇게 둘 뿐이었다. 알베르게의 불을 환하게 켜고 청소 중이던 호스피탈레로가 곤히 자던 우리를 깨워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 머쓱한 기분으로 일어나 세수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평소나 지금이나 내 사진을 찍는 것에 크게 흥미가 없던 터라 여행지에서 내 모습을 찍어달라고 부탁한 적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순례길에서의 내 사진은 석재오빠가 뒤에서 나도 모르게 찍은 사진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늘 아침 이 순간만큼은 꼭 사진으로 남기고 싶은 기분 좋은 날이었는데, 키가 큰 유칼립투스 나무숲에 잔잔히 퍼지는 냄새가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예전에 시드니에서 유칼립투스 나무와 코알라를 처음 봤을 땐 이런 기분이 아니었는데, 순례길 끝자락에서 넓게 퍼진 유칼립투스 군락지가 이렇게 아름다울 줄은 몰랐다. 습도가 높은 갈리시아 지방에 펼쳐진 유칼립투스 나무의 향은 은은하고도 강하게 내려앉았다. 마치 우리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응원해주는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 내가 녹아들어있는 모습을 영원히 기억하고 싶어 거의 처음으로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하고 앞으로 뛰어갔다.
언제나와 같이 아침을 먹으러 카페에 들어왔다. 며칠 전 한스 아저씨와 아들, 그리고 독일에서 온 여자애 이렇게 3명이 같이 다니던 팀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중 독일에서 온 친구를 오늘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또 다른 친구들과 동행하고 있는 것 같았다. 파란색 셔츠를 입은 미국인 친구는 스페인에 푹 빠져 이 나라 곳곳을 여행한 지 1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스페인 북부로 넘어와 순례길을 걸으며 스페인의 문화와 언어를 더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앞으로 계속 여행할 스페인에서 더욱더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어, 스페인의 다양한 모습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너무나 당연했던 노란 화살표들이 당연하지 않아질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는 생각에 한 걸음 한 걸음이 너무 아쉬웠다. 노란색 페인트로 무심한 듯 대충 그려놓은 느낌이지만, 사실은 누군가가 순례자들이 길을 찾기 어렵거나 헤맬만한 곳을 골라 일부러 화살표를 그려둔 것이다. 갈림길 없는 직선거리가 길게 이어질 때도 ‘이 길이 맞나?’ 하는 생각이 들 때쯤 어김없이 눈앞에 나타났던 화살표.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오는 불안감을 따뜻하게 잠재워주고는 이 길이 맞다며 다독여줬던 소중한 화살표. 이젠 못 보겠지.
어느덧 진흙이 나오고 숲이 끝났나 싶더니 도로가 연결되어있는 길이 이어졌다. 작은 도시를 지나고 나니 다음 마을로 가는 숲길이 보인다. 옥수수밭이 넓게 펼쳐진 마을을 지나 어두운 숲속으로 들어가나 싶었는데, 길고 긴 오르막길을 올라가게 되었다. 약간은 숨이 찰 정도의 경사가 이어졌지만, 이전처럼 힘들지는 않았다. 아무리 오르막길밖에 보이지 않더라도 항상 오르막길만 있는 건 아닐 테니까.
사실 오늘은 산티아고에 갈 생각이 없었다. 이게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겠지만 산티아고 5km 전의 monte de gozo라는 마을에서 하루를 보내며 그동안의 생각을 정리하며 산티아고를 맞이할 준비를 할 예정이었다. monte de gozo에 도착했다. 그런데 뭔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단체 수용소 같은 분위기에 쥐 한 마리 보이지 않는 스산한 병동이 수십 채가량 있었다. 총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알베르게가 있다고 해서 론세스바예스같은 마을을 생각했는데, 허허벌판에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알베르게가 이 마을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알베르게처럼 보이는 회색 건물들 사이사이에 약간의 상점이 있긴 했지만, 문이 열린 곳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말라빠진 나뭇잎들만 을씨년스럽게 굴러다닐 뿐이었다. 함께 도착한 석재오빠를 보니 오빠도 이 당황스러운 장면에 표정이 영 좋지 않았다.
“그냥.. 산티아고 오늘 갈까..?”
그래서 오늘 산티아고에 가기로 했다.
저 멀리 화창한 하늘 아래 보이는 곳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다. 도시 안으로 들어왔다. 하지만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이 도시 중앙에 있는 산티아고 대성당 앞이다. 모든 순례자들의 최종 목적지인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걸어서 올라가는데, 곳곳에 최종 목적지를 눈앞에 둔 순례자들이 보인다.
다들 지금 우리와 같은 심정일까. 산티아고 대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은 경사가 있는 편이었다. 굽이진 골목들이 좁게 나 있어 내려오는 사람들과 의도치 않게 스칠 일이 많았는데, 그중 몇몇이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걸어가는 우리를 보고 갑자기 박수를 크게 쳐주었다. 환호를 하며 'Bravo!!'를 외치기도, 하이파이브를 하기도 하며 우리를 응원해줬다. 곧 있으면 산티아고 대성당이 나온다고. 조금만 더 힘내라고. 정말 마지막까지 잘 해냈다고. 오래전부터 걸어왔던 순례길의 끝. 마음 한 켠에 소중히 담아 온 나의 산티아고로 가기 위해 크게 숨을 들이쉬어 본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는 순례자들이 많이 도착해있을까. 우리 앞을 지나간 사람들도, 우리 뒤에 따라오는 사람들도 모두 산티아고 대성당을 향해 걸었을 텐데 다들 잘 도착했을까. 성당 앞에서 무릎 꿇고 한참을 오열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다들 어떤 표정으로 성당을 바라보고 있을까. 감격과 기쁨에 취해 아이처럼 여기저기를 신나게 뛰어다니며 소리를 지르게 되면 어떡하지? 다들 이상하게 바라볼 텐데, 아니야 다들 똑같은 심정일 거야. 하루를 걸었던 이틀을 걸었든 우린 모두 순례길의 마지막을 함께한 사람들이니까. 남 신경 쓸 필요 없이 나만의 의식을 치러야지. 그게 뭐가 되었든 상관없이 하고 싶은 걸 해야겠어. 내 순례길의 마지막은 온전한 나로 마주할 거니까.
이 통로를 지나면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도착하게 된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얼마나 오래 앉아있었을까, 시간이 꽤 흐른 것 같아 주변을 돌아 보니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적당한 알베르게에 체크인하고 산티아고를 무작정 걸었다. 최종 목적지에 도착한 우리에게 화살표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걷고, 또 걷다 보니 작은 공원 앞에 도착했다. 마침 노을이 지고 있었는데 동네 주민들이 산책을 하러 공원에 많이 나와있었다. 사람들이 노을을 보기 위해 모인 서쪽에서, 적당히 찾은 계단에 걸터앉아 많은 생각에 잠겼다.
산티아고. 진짜 산티아고다.
10년 넘게 소중히 간직했던 나만의 꿈을 이루었다. 모든 걸 내려놓고 자포자기하듯 도망쳐 온 순례길. 2017년 6월 18일에 생장에서 시작해 2017년 7월 20일, 이곳 산티아고에 도착하기까지 33일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쉬지 않았다. 화살표가 가리키는 방향대로 매일 걷고 또 걸었다.
생장에서 시작해 피레네를 넘고, 햇빛이 내리쬐는 용서의 언덕을 올라갔다. 기록적인 더위와 계속되는 산행에 발톱이 빠지고 무릎 안쪽 근육이 굳어가는 고통을 겪으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 루비와 유로스도 만나고, 맛있는 양송이 타파스도 먹으면서 잠시 동안 행복에 빠졌었다. 은회색 빛의 호수를 보며 경이로움을 느꼈고, 아픈 프란시스코에게 등산 스틱을 빌려주기도 했다. 토산토스에서 순례자들과 말이 통하지 않을 때 답답함을 느꼈지만 다음날 아침 우리는 서로를 안아주며 서로의 행복과 평화를 기도했다. 키 큰 나무들 사이를 걷다가 멀리서 불어오는 바람에 문득 위로받는 기분이 들어 나의 존재와 행복에 감사하며 울었던 순간도 있었다.
갑자기 쌀쌀해진 아침에 비까지 내려 감기에 걸리진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고, 메세타 평원을 걷기 전 석재오빠를 만나 17km의 까리온을 쉬지 않고 걷기도 했다. 한 수도원 알베르게에서 혼잣말을 하는 외국인 아저씨와 둘이서 같은 방을 쓸 때는 내가 혼자 산티아고에 간다고 했을 때 왜 다들 말렸는지 이해가 되었다. 지독한 더위를 피하기 위해 해가 뜨지 않은 새벽녘에 일어나 도시의 불빛을 등지고 걸었던 적도 있었고, 늦잠을 자서 순례자들 중 거의 꼴찌로 출발하며 머쓱해 하기도 했다. 힐링데이였던 레온에서는 호스텔을 잡고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편하게 쉴 수 있었다. 그림이 가득한 알베르게에 도착해서는 내가 선택한 까미노에 의미를 부여해야만 하는 책임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유모차에 탄 어린아이 두 명과 개 한 마리를 포함해 가족이 다 같이 걷는 순례자들을 볼 때면 괜히 찡한 기분이 들었고, 독수리 아저씨의 상자를 열었을 때는 감동의 순간이 밀려왔다. 영원히 못 볼 줄 알았던 뻬뻬 할아버지를 다시 만났고, 구름이 밀려 내려오는 오 세브레이로에서의 광경에 감탄을 금치 못한 적도 있었다. 사리아부터는 우니클라 우유에 푹 빠져서 매일같이 우유를 마셨고, 그때쯤부터는 자연스럽게 동행이 된 석재오빠와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33일. 지금 나는 이곳 산티아고에 있다.
긴장하면서 걸어온 게 무색해질 만큼 산티아고 대성당은 흔히 볼 수 있는 공사장같이 생겼었다. 레온이나 부르고스에서 봤던 화려하고 멋진 성당을 기대해서였을까, 약간의 허무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성당 앞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있으니 내가 정말 최종 목적지에 온 게 실감이 났다. 나는 산티아고에 오기 위해 10년을 기다렸고, 30여 일을 걸어 이곳에 도착했다. 하지만 뭐랄까. 끝이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까미노는 끝났지만, 나의 까미노는 끝나지 않은 그런 기분. 내일이면 알베르게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함께 아침을 맞이하고, 눈 비비고 일어나 침낭을 챙겨 나와야 할 것 같은 그런 나날들이 계속 이어질 것만 같았다.
까미노를 떠나오기 전 나는 벼랑 끝에 몰린 심정이었다. 무엇을 선택해도 지금의 내 상황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회사부터 과감히 사표를 던졌다. 그동안 일을 하며 모아놓은 돈으로 비행기 표를 샀다. 대학 때도 하지 않은 탈색을 하고 밝은 색으로 염색을 했다. 뭐라도 좋으니 지금의 나만, 지금의 내 모습만 아니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내가 사랑한 스페인은 한 번 와보고 싶었다. 그게 산티아고라면 더 좋을 거라 생각했다. 어린 시절 우연히 알게 된 산티아고에 꽂혀 지금까지 마음 한 켠에 소중히 품어 두었었다. 꺼내면 다칠라 만지면 부서질라 나조차도 볼 수 없게 먼지 쌓인 책장 한구석에 조심스레 숨겨 둔, 마지막 남은 단 하나의 욕심이었다.
떠나오기 전 페이스북에 글을 썼다. 인사는 하고 싶었다. 잘 다녀오라는 친구들의 말에 나는 잘 다녀올게라고 답하지 않았다. 잘 지낼게라고 말했다. 한국에 돌아올 생각은 없었다. 지금의 내가 이렇게나 싫은데 나는 이 모습을 다신 보고 싶진 않았다. 몇 년 동안이나 열정을 쏟아부었던 분야에서의 자부심을 버렸다. 자신감과 자존감도 함께 버렸다.
돌아올 생각이 없었기에 까미노에 대한 준비도 하지 않았다. 남들 다 챙겨가는 등산 스틱도 없었고, 신발이나 가방도 적당히 보고 인터넷으로 샀다. 파스나 구급약품, 호신용품도 전혀 없었다. 길을 걷다 안 좋은 결말을 맞이한다면 그것 또한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산티아고까지 운 좋게 다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었다. 막연한 소망이었다.
왠지 이 길의 끝에서 나는 어떤 결정이라도 할 수 있을 힘이 생길 것 같았다. 그 어떤 결정이라도 쉽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 생각 없이 산티아고에 도착할 수는 없었다. 나를 위해 떠나온 곳이니만큼 나를 위한 생각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나를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동안 있었던 일들과 나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들도 생각할 수 있었다. 내게 영향을 미쳤던 수많은 사람들과 사건들. 그리고 또다시 나.
스스로 질문을 하고 답하는 걸 반복했다. 생각이 멈추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하지만 까미노 중반에 접어들면서부터, 산티아고에 도착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답은 찾지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어렴풋이 들었다. 실제로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앉아 성당을 멍하니 바라보는 그 순간에도 나는 이렇다 할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다만 길을 걸어오면서 내 주변에 떠다닌 형체 없던 질문들의 윤곽을 조금은 그릴 수 있게 되었다. 뚜렷한 질문들에는 어느 정도 대답이 정해졌다. 답은 의외로 간단한 게 많았다.
까미노를 걷고 나서 바뀐 게 있냐고 묻는다면, 나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말 바뀐 게 하나도 없을지도 모른다. 한국에 돌아가면 여전히 취업과 현실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울 것이고, 의견이 맞지 않는 부모님과 싸우면서 도피처를 찾고 있을지도 모른다. 막막하고 답답한 상황에 부딪혀 가며 스스로를 감정에 잠식당하게 내버려 두게 될 수도 있다.
반면, 감정 기복이 심했던 내 성격은 조금은 차분해졌을 수도 있다. 갑작스레 찾아오는 깊은 고립과 우울에 빠질 때면 까미노를 떠올릴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뭘 할 거냐고 계획이 있냐고 물으면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나이를 먹고, 아이를 가지고, 할머니가 되어서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나는 행복했던 나의 까미노를 기억해낼 것이다. 매일 걸어야 했고, 걸어왔으며, 내가 만들어 온 나의 까미노.
이 순간을 기억하며, 이 순간을 떠올리고, 이 순간을 추억하며 그렇게 하루하루를 800km처럼 보내지 않을까. 800km를 80살이라고 생각했을 때 28살인 나는 고작 280km 지점에 와있는 것뿐이다. 긴 레이스였고, 앞으로는 더 긴 레이스가 될 나의 800km.
아마 평생 못 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