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만 하더라도 카메라는 비싸고 무거운 가전제품 중 하나였다. 내 기억 속의 그것은 멀리 여행 갈 때 아버지가 조심스레 내 보인 까맣고 묵직한 기계일 뿐이었다. 셔터를 누르면 '찰칵'하는 소리가 났고, 곧이어 '차르르'하는 소리가 났다. 필름이 감기는 소리다. 시간이 지나 필름 카메라는 점점 골동품이 되어갔고 누군가의 수집품이 되었다. 어느 순간 카메라는 필름 카메라가 아니라 DSLR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어 있었다. 그 후 무게를 가볍게 만든 디지털카메라가 생겨나더니 언젠가부터는 핸드폰에 카메라 기능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손쉽게 찍을 수 있는 핸드폰 카메라는 그렇게 오래된 역사가 아니었다.
핸드폰 카메라의 장점은 아무래도 편의성이다. 우리는 이제 어디를 가더라도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되었다. 저장도 간편하다. 컴퓨터에 따로 옮길 필요도 없이 클라우드에 업로드되고, 클라우드에 연동되어있지 않더라도 핸드폰 내에 저장이 된다. 갤러리 어플을 켜면 그동안 찍은 사진이 날짜별로 정리되어있고 따로 위치를 적어두지 않아도 GPS 정보가 입력되어있다. 요즘 나오는 스마트폰은 사진을 자동으로 구분해 분류해두기까지 한다.
그런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여행이나 졸업식 같은 특별한 이벤트뿐만 아니라 매일같이 찍어대는 일상 사진들은 다 어디에 있을까. 당연히 내 핸드폰 속에 있겠지. 근데 막상 필요할 때는 그 사진이 어딨는지 도통 모르겠더라. 누가 물어봐서 사진을 보여주려고 할 때, 오랜만에 추억을 회상하고 싶어 사진을 찾을 때, 잘 나온 사진을 업로드하고 싶을 때, 한참이나 갤러리를 뒤적이던 내 모습이 뭔가 어색했다. 분명히 기억을 하고 싶고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어 찍은 사진일 텐데 막상 필요할 땐 찾을 수조차 없다니.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붙잡기 위해 찍었던 사진들이 오히려 잊기 쉬운 시간을 만들어버리더라.
그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즐거웠던 여행을 한 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쉬지 않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지만, 막상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사진 정리할 생각에 막막해졌던 적. 심지어 요즘 사진들은 용량도 크다. 4박 5일 여행 한 번 다녀오면 1GB는 거뜬히 넘는 사진과 영상들이 핸드폰에 가득 차 있다. 분명 잘 나온 사진들을 정리해 친구들과 공유하고 몇 년 뒤에라도 문득 생각날 때 다시 찾아볼 요량으로 찍었던 것들인데, 어쩌다 이렇게 애물단지 신세가 되어 내게 부담만 주게 되었을까.
내 핸드폰 속 사진들은 내가 의도한 사진의 용도를 다 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혹은 사진을 찍을 때 즐거웠으니 그것만으로 사진의 용도를 다 하게 된 걸까. 찍기 쉬웠던 것만큼이나 정리하기는 어려웠다는 거란 걸 알았어야 했다. 하나도 놓치기 싫었던 과거의 기억이 오히려 현재를 멈추게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3월 어느 날부터인가 무심코 찍어대는 사진의 양을 줄이기로 했다. 이건 핸드폰 저장용량 부족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서도, 기억을 정리하기 위해 시간을 소모하는 나를 보지 않기 위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순간의 소모를 위한 캡처는 그 날이 지나면 대부분 지웠다. 꼭 필요한 사진은 폴더를 따로 만들어 저장해두었다. 특별한 이슈가 없던 작년 10월 한 달 동안 찍은 사진이 250개가량이었던 것에 비하면, 3월에는 103개, 4월에는 74개로 줄어들었다. 물론 정리하지 못 한 스크린샷들과 비슷한 구도의 중복사진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내 작은 프로젝트가 완벽히 성공했다고는 볼 순 없었지만, 그래도 의미 없는 사진들이 반 이상 줄어들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오늘도 매일같이 잊고 싶지 않은 순간을 붙잡고 있다. 그 당시에는 잊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던 기억들이 오히려 내게 정말 소중한 시간을 덮어버리는 건 아닐까. 이젠 나를 구성하는, 나를 지켜주는 소중한 순간들을 내가 지킬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