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긴 시
천국이 존재한다면,
다툼이 없을 것이다.
다툼이 없다는 것은
갈등이 없다는 뜻이다.
갈등이 없다는 것은
모든 욕망이 완벽하게 충족된다는 뜻이다.
모든 욕망이 충족된다면,
나는 과연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일까?
갈등이 남아 있어도 괜찮다.
우리는 타협할 수 있으니까.
타협은 어렵지 않다.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존중'이다.
그래.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조차
천국이 될 수 있다.
저는 천국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 생각이 당신에게도 울림이 있다면, 당신과 함께 걷고 싶습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나는 당신의 그 선택 역시 존중합니다.
기독교의 대림절 전통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The Kingdom of God is already, but not yet.”
천국은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전히 도착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마냥 기다리는 수동적인 자세가 아니라, 그 나라를 일구어갈 '책임'입니다. 앞선 시에서 저는 존중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썼습니다. 하지만 존중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하고, 자신의 기준으로 타인을 재단하려는 본능적인 충동을 견디는 일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무거운 과제입니다.
그러니 이제, 존중이 지닌 진짜 무게가 무엇인지 함께 찾아가 보고자 합니다. 나의 동행자들이여.
'천국은 없다'고 쓰고 난 뒤, 불현듯 죽음이 두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이 두려움과 함께 살아내기 위해 미리 유언을 남겨둡니다.
사랑하는 아들들에게. 내가 죽은 뒤 어디로 가게 될지 나는 알지 못한다. 사실 아무도 확실히 알 수 없지.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단다. 만약 너희의 기억 어딘가에 내가 존재하는 장소가 남아 있고, 그 기억이 너희를 바로 서게 해주는 작은 기둥이 되어준다면, 나는 그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그 기억이 너희가 살아갈 험난한 세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해준다면, 그곳이 바로 내가 도달한 천국이란다.
사랑하는 아내에게. 나에 대한 기억이 그리움이 되고, 그 그리움이 슬픔으로 부드럽게 스며들 때 이것만은 기억해주었으면 합니다. 나는 그곳에서도 여전히 당신의 편이라는 것을. 그리고 나는 진심으로 당신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만약 당신이 나를 기억하며 우리가 함께했던 삶을 떠올리고 미소 지을 수 있다면, 나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천국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