챕터 3. 불안, 공감, 그리고 우상숭배

by 정승연

1. 우리가 공감하는 이유 : 감정의 원래 구조

인간은 공감을 통해 살아남습니다. 내 팔이 베였을 때 고통을 느끼는 것은 팔 자체가 아닙니다. 통증 신호는 뇌의 섬엽(insula)과 전대상피질(ACC)로 전달되고, 비로소 뇌가 “나는 아프다”라는 감각을 만들어냅니다. 이것은 단순한 직관이 아닙니다. 2003년 파르마 대학교의 자코모 리졸라티(Giacomo Rizzolatti) 연구팀이 발견한 거울 뉴런(mirror neuron)은 우리가 직접 다쳤을 때 활성화되는 신경 회로와, 타인이 다치는 장면을 보기만 해도 활성화되는 신경 회로가 같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었습니다. 즉, 고통은 단순한 물리적 사실이 아니라 몸에 대한 뇌의 공감적 반응입니다. 공감은 선택이 아니라 우리 뇌의 기본 설계이며, 우리는 그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2. 공감은 감정이다 : 그리고 감정은 행동을 만든다

공감(empathy)이라는 단어는 ‘em-pathos’, 즉 “감정 속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왔습니다. 감정은 수동적인 느낌이 아니라 행동으로 우리를 밀어내는 생존 에너지입니다. MIT의 리처드 데이비슨(Richard Davidson) 연구는 감정이 사고보다 먼저 활성화되며, 우리 행동의 80% 이상을 자동적으로 결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해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감정을 통해 행동한 뒤에 그것을 생각으로 정당화하곤 합니다. 공감에서 감정으로, 그리고 다시 행동으로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것입니다.


3. 감정이 행동을 만드는 이유 : 불안을 줄이기 위해서

하버드 정신과 의사 조지 베일런트(George Vaillant)는 감정을 “마음이 불안을 조절하기 위해 사용하는 시스템”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은 매 순간 고통과 위험을 회피하고 결핍을 해결하며 생존을 확보하려 애씁니다. 감정은 이러한 불안을 가능한 한 빠르게 줄이도록 우리를 행동으로 밀어냅니다. 배고픔을 느끼면 먹고, 외로우면 사람을 찾으며, 두려울 때 도망치고 상처 입었을 때 치료하는 모든 행위는 단 한 방향으로 흐릅니다. 바로 지금 당장의 불안을 해소하는 것입니다.


4. 불안은 자동적인 회피를 만들지만, 이성이 개입하면 탐구가 시작됩니다

불안은 보통 “피해라, 멀어져라”라는 하나의 자동 명령을 생성합니다. 하지만 감정 체계 안으로 이성이 개입하면 완전히 다른 행동 경로가 열립니다. 우리는 타인의 마음을 직접 볼 수 없기에 타인의 의도와 생각은 자연스럽게 우리에게 불안을 일으킵니다. 그 순간 인간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생깁니다.

첫째는 혐오와 회피입니다. 이는 불안을 가장 빠르게 줄이는 방법으로, 상대를 위험하거나 틀렸거나 혹은 열등한 존재로 규정해버리는 것입니다. 이 방법은 즉각적으로 불안을 낮추어 줍니다. 둘째는 존중에 기반한 탐구입니다. 이것은 이성적인 선택입니다. 상대와 하나가 되라는 뜻도 아니고, 무조건 동의하거나 받아들이라는 의미도 아닙니다. 단지 나의 불안을 줄이기 위해 상대를 조금 더 이해해 보겠다는 태도입니다. 여기서 이해는 친절이라기보다, 적대감으로 무너지지 않으면서 불안을 관리하는 성숙하고 전략적인 방식입니다. 이 경로가 없다면 불안은 자동적으로 회피로 흐르고, 회피는 타인을 빠르게 대상화하게 만듭니다.

가령 누군가가 나를 위협적인 표정으로 노려보고 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몸이 먼저 반응하여 불안이 올라가고 즉시 싫어지는 감정이 생길 것입니다. 하지만 나중에 그 사람이 극심한 복통 때문에 몸을 웅크린 채 화장실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이해는 즉시 불안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당신은 어떤 행동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두려움이 만든 자동 반응입니까, 아니면 이해가 만든 반응입니까?


5. 불안은 대상을 찾고, 그 대상은 우상이 됩니다

심리학자 카렌 호나이(Karen Horney)는 “불안은 자신의 대상을 만들어내고, 그 대상은 숭배의 대상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불안을 줄이기 위해 인간은 절대적으로 붙잡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데, 여기서 심리학적 의미의 우상이 탄생합니다. 굶주린 사람에게는 음식이, 경제적으로 불안한 사람에게는 돈이, 버림받은 사람에게는 사랑이 신이 됩니다. 고립된 이는 집단을, 인정이 필요한 이는 자기 자신을,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는 이는 종교를 신으로 삼습니다. 우상은 조각상이 아닙니다. 나의 불안을 완전히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모든 것입니다.


6. 우상화는 피할 수 없다는 실험적 증거들

인간은 공허를 견디지 못합니다. 15분 동안의 완전한 감각 차단 실험(Void Exposure)에서 사람들의 90%가 즉시 붙잡을 무언가를 상상해냈듯, 우리는 즉시 우상을 만들어냅니다. 의미 체계가 흔들릴 때 새로운 절대적 믿음을 만들어 심리적 안정성을 회복하려는 이 '의미 유지 모델'(Meaning Maintenance Model (MMM))은 마음의 자동 방어 장치입니다.


7. 인간은 우상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공감은 감정을 만들고, 감정은 불안을 줄이기 위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그 행동은 안정을 줄 대상을 찾게 되는데, 그 대상이 바로 우상입니다. 즉, 인간이 공감하고 감정을 느끼는 한 우상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이 우상들은 종교적 물건이 아니라 각자의 불안이 만들어낸 심리적 신들입니다. 돈, 사랑, 성취, 지위, 이념, 심지어 “내가 옳다”는 믿음까지도 스피노자의 말처럼 우리가 사랑하는 순간 신이 됩니다. 우리는 매일 작은 신들을 만들며 살아갑니다.


8. 성경조차 하나님을 우상으로 만드는 것을 경고합니다

성경의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명령은 단순히 조각상 숭배를 금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조차 심리적 의존 대상으로 만들지 말라는 경고입니다. 히브리 선언인 “I AM WHO I AM(나는 나다)”은 분류와 정의, 대상화를 거부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고정된 대상이 되는 순간, 그는 더 이상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의 불안이 만든 우상이 되어버리기 때문입니다.


9. 결론 : 성숙은 자기 이해에서 시작됩니다

공감과 감정, 불안과 우상은 하나의 사슬처럼 연결되어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우상을 만드는가 아닌가가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만듭니다. 진짜 위험은 이미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는 우상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성숙이란 우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만들어내는 나의 심리 구조와 불안을 더 분명히 이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불안을 이해할수록 타인을 대상이나 적, 혹은 절대적인 존재로 만들 필요가 줄어듭니다. 이 의미에서 타인에 대한 존중은 도덕적 노력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이해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결과입니다. 그때 우리는 불안에 지배당하는 삶을 멈추고 두려움이 아니라 명료함 속에서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만약 지금 당신이 불안에 끌려다니는 대신 그것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당신의 그 용기를 응원합니다.


작은 에필로그

이 글은 사실 아내와의 말다툼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한가운데서 나는 지적으로 무장한 채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당신에게 공감하고 있어. 당신이 느끼지 못할 뿐이야.”

그 오만한 말 한마디 때문에 집에서 쫓겨날 뻔했습니다. 그 순간 깨달았습니다. 공감을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상대가 그것을 실제로 느끼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을 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간극이, 이 글이 세상에 존재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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