삽시도에 다녀왔다. 섬의 생김새가 화살을 꽂은 활과 같아 삽시도란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오래전부터 꼭 가보고 싶었던 섬이었는데 지난 주말 오랜 여행 친구와 함께 1박 2일로 다녀왔다.
아산에서 한 시간 삼십 분쯤 달려 보령에 도착했을 땐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배 시간은 오후 한 시였지만 우린 열한 시쯤 도착했다. 왕복 배표는 온라인에서 예매했지만, 자동차 선적 표는 현장에서 두어 시간 전에 끊어야 한다고 해서 두 시간 일찍 도착한 것이다. 대천항에 도착하기 전 잠깐 길을 잘못 들어 우린 원산도까지 이어진 해저터널로 들어가고 말았다. 해저터널은 원산도까지 8km 가까이 이어져 있어, 대천항을 옆에 두고 왕복 16km를 더 달렸다. 여행길엔 늘 예기치 않은 일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이번 여행에선 시작부터 계획에 없던 해저터널을 달린 것이다. 그래도 뉴스로만 들었던 해저터널을 덤으로 다녀왔으니 다행이다.
차 선적 표를 끊고 터미널 근처 분식집에서 김밥과 라면으로 점심을 먹었다. 삽시도에선 먹을거리를 살 수 있는 곳이 없다고 들어, 여객터미널 근처 마트에서 간단히 장도 보았다. 저녁에 마실 맥주와 안주용 스낵, 아침을 위해선 햇반, 김치, 미역국, 인스턴트커피를 샀다. 승선 시간까지 시간이 남아 바닷가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삽시도에서 둘러볼 곳들을 찾아봤다. 작은 섬에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네 개나 있었다. 거덜너머, 수루미, 진너머, 밤섬 이름도 독특했다. 물이 빠지면 바닷길이 드러났다가 밀물 때면 섬이 된다는 면삽지 풍경도 아름다웠다.
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선 계속 비가 내렸고, 우린 차와 함께 배에 올랐다. 사십 분쯤 달린 배는 삽시도 아래쪽에 있는 밤섬선착장에 도착했다. 우리가 예약한 펜션은 밤섬 해변에서 숲 쪽으로 조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초록 잔디 정원에 나무 외벽의 아담하고 예쁜 건물들 몇 개가 흩어져 있었다. 온통 초록으로 덮인 비 맞은 잔디와 나무들, 건물 외벽의 갈색 나무 빛깔에 마음이 편안해졌다. 펜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편백 나무 향이 진하게 풍겨왔다. 복층구조의 내부는 작았지만, 창이 많아 답답하지 않았다. 잠깐 이렇게 작은 집에서 꼭 필요한 물건들 몇 개만 놓고, 단순한 삶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리지 못해 끌어안고 사는 것들이 수두룩한 내겐 아직 요원한 Minimalism!
우리가 머문 펜션 '편백하우스 '
우린 먼저 펜션 주인아저씨가 추천한 수루미해수욕장으로 향했다. 숲길을 조금 걷자 활처럼 휘어진 해수욕장이 나왔다.
“와, 와, 이렇게 예쁠 수가!”
저절로 감탄이 쏟아졌다. 입구 왼편엔 크고 작은 바위들이 바다 쪽으로 뻗어나가 있고, 오른편엔 솔숲에 감싸인 1km의 휘어진 해변이 아름다운 풍광을 자아내고 있었다. 해변은 친구랑 나 둘 뿐이어서 더 고요하고 호젓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고운 모래밭은 걷다 보니 그곳에 우리만 있는 게 아니었다. 젖은 모래밭에서 작은 게들이 제집을 들락거리고, 이리저리 달리기에 바빴다. 우리 발소리와 기척에 게들의 움직임은 더 분주해졌다. 우리도 게들처럼 우산 끝으로 모래밭에 그림을 그리며 뛰어다녔다. 해변 가운데쯤 무리를 지어 앉아있던 갈매기 떼도 우리가 다가가자 한꺼번에 날아올랐다. 흐린 바닷가 바다 빛깔 갈매기가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며 우리가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우린 해변을 걷다가 솔 숲길로 들어서 ‘삽시도 둘레길’ 이정표를 따라 걸었다. 숲길에서도 걷는 사람은 친구와 나 둘 뿐이었다. 한 시간쯤 숲길을 걸으며 걷기 좋은 계절에 다시 와 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수루미해변 입구
수루미 해수욕장
날아오르는 갈매기 떼
우린 숙소로 와 차를 타고, 저녁 먹을 만한 곳을 찾으러 나섰다. 윗마을에 있는 술뚱선착장과 오천초 삽시분교를 둘러보고, 바닷가에 있는 ‘삽시도 회식당’을 찾았다. 식당 앞에는 팽나무 한 그루와 아기자기한 꽃밭이 기다랗게 가꾸어져 있었다. 식당 홀에서 바라보는 창밖 풍경에 마음이 젖어들었다. 저만치 비 내리는 뿌연 바다와 그 앞에서 비를 맞고 있는 팽나무 한 그루, 그 옆에 하얗고 파란 테이블 한 쌍, 접어놓은 빨간 파라솔, 창 앞에 늘어놓은 갖가지 모양의 다육이 화분들, 식당 홀 창문에 흘러내는 빗방울까지 비 내리는 바닷가 풍경의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사람의 손길이 닿아 빚어낸 풍경은 수루미해변의 순수한 아름다움과는 또 다른 멋과 운치를 전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이 식당에서도 역시 손님은 친구와 나 둘 뿐이었다.
식당 홀에서 바라본 창밖 풍경
운치 있는 창밖 풍경과 광어회와 소주에 친구와 함께했던 지난 여행 이야기, 잊지 못할 온갖 에피소드가 더해지면서 웃음소리가 높아졌다. 식당 주인과 일하시는 분들도 옆자리에서 저녁을 먹으며 얘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우린 자연스럽게 말을 섞으며 함께 웃고 떠들며 따뜻하고, 재미나고, 특별한 저녁 시간을 보냈다. 밖이 어두워지면서 바다가 잘 보이지 않자 재치 있게도 식당 주인이 실내 불을 껐다. 멀리 바다 건너 섬의 불빛과 완전히 어두워지기 전 여름 저녁 바다의 풍경은 우리를 현실 너머 아주 먼 곳으로 데려다주었다. 아홉 시가 다 되어 숙소에 돌아와서도 낮에 보았던 수루미해변의 풍경과 갈매기 떼의 비상, 여름 밤바다의 풍경과 처음 만난 사람들 이야기와 웃음소리가 한동안 흘러 다녔다.
2023. 7. 7. 여행 첫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