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를 위한 자기 이해의 심리학
타고난 성격이라는 착각
"저는 원래 소심해요."
“아이 성격은 타고난 거라 어쩔 수 없죠.”
심리 상담 현장에서 가장 흔히 듣는 말입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Alfred Adler)는 성격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학문을 개인심리학(Individual Psychology)이라 불렀는데, 그 핵심은 성격이 개인의 기질이 아니라 사회적 맥락 속에서 채택한 전략이라는 점이었습니다. 아들러는 인간이 살아가는 이유를 허구적 최종목적(fictional finalism)이라 불렀는데, 이는 우리가 실제 현실보다 “내가 믿고 싶은 목적”을 향해 성격을 고른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소극적인 태도는 상처를 피하기 위한 전략이고, 불안은 위험을 조기 감지하려는 경계 장치입니다. 이런 성격은 불편하지만 동시에 나를 지켜주는 심리적 방패입니다. 아들러가 말한 열등감(inferiority)과 이를 상쇄하려는 보상(compensation)의 심리 메커니즘과도 연결됩니다.
성격이 전략이라면, 다시 고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는 종종 성격을 운명으로 착각한다는 것입니다.
성격조차 성과로 재단되는 사회
현대 한국 사회에서 성격은 점점 더 성과주의적 기준으로 평가됩니다.
외향적이어야 발표를 잘한다.
적극적이어야 리더십이 있다.
내성적이면 부족하다.
이런 말은 단순한 평가를 넘어 낙인효과(stigma effect)로 이어집니다. 사회심리학에서 말하는 대로, 한 번 찍힌 낙인은 사람 스스로의 정체감을 규정하고, 결국 자기실현적 예언(self-fulfilling prophecy)이 되어 실제 성격 변화를 방해합니다.
상담실에서 만난 한 중학생 아이의 사례를 들어보겠습니다. 발표만 하면 얼굴이 빨개져 “나는 원래 소심해”라고 단정 짓던 아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초등학교 때 발표하다가 친구들의 웃음을 샀던 기억이 크게 남아 있던 것이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 ‘소심함’은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다시 상처받지 않기 위한 방패”로 기능하고 있었던 겁니다.
문제는, 부모와 사회가 이런 성격을 결함으로만 본다는 것입니다. “성격 좀 고쳐야지”라는 말은 아이에게 “지금 너는 틀렸다”라는 낙인을 남기고, 성격을 바꿀 힘을 더 약화시킵니다.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 성격
아들러는 성격이 관계의 장(field of relationships)에서 형성된다고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형제 관계(출생순위)는 강력한 영향을 줍니다.
첫째는 부모 사랑을 잃지 않으려 ‘착한 아이’ 전략을 택하며 보수성과 경쟁불안이 강화됩니다.
둘째는 ‘페이스메이커’를 추격하며 성취동기를 키웁니다. 하지만 끝없는 비교로 자신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중간 아이는 주목받기 어렵기에 독립성을 키우거나, 반대로 문제행동으로 관심을 끌기도 합니다.
막내는 의존적이지만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게으름과 야심이 공존합니다.
외동은 부모의 집중된 관심 속에서 자기 중심성을 가질 수 있지만, 때로는 성숙하게 자라기도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건 경향성일 뿐 절대적인 법칙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문화심리학(cultural psychology)의 연구에 따르면, 집단주의 문화권에서는 ‘소극적 성격’이 오히려 협력성과 겸손으로 존중받을 수 있지만, 개인주의 문화권에서는 같은 특성이 ‘자기표현 부족’으로 비난받기도 합니다. 즉, 성격은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해석하는 방식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현대 심리학과 AI 융합심리학의 보완
현대 심리학은 성격이 유전적 기질 + 환경 경험 + 개인의 선택의 산물이라고 설명합니다.
행동유전학은 불안 민감성 같은 성격 특성에 일정한 유전적 기여도가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격 5 요인(Big Five) 모델은 외향성·신경성·개방성·친화성·성실성이 문화와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발현된다는 점을 설명합니다.
신경과학은 뇌의 가소성(neuroplasticity)을 통해, 반복된 경험이 성격적 반응 패턴을 바꿀 수 있음을 입증합니다.
최근에는 AI 융합심리학 연구도 등장했습니다. AI가 사람의 언어 패턴이나 디지털 흔적을 분석해 성격 특성을 예측하는 시도입니다. 그러나 기계적 점수화만으로 인간을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성격은 수치가 아니라 관계와 의미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철학적 시선: 성격과 자기 선택
철학자들은 오래전부터 성격을 탐구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에토스(ethos)’를 인간의 도덕적 성품으로 보았고, 실존주의 철학자들(사르트르, 키에르케고르)은 인간이 스스로 선택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간다고 강조했습니다. 현대 심리학의 자기 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도 자율성·유능감·관계성이 충족될 때 비로소 인간이 변화를 선택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즉, 성격은 운명이 아니라 자기 선택과 관계적 맥락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철학과 심리학은 만납니다.
변화는 어떻게 가능한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남습니다.
“성격을 다시 선택할 수 있다고 해도, 실제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인지행동치료(CBT)는 성격적 반응을 만들어내는 ‘생각–감정–행동’의 연결고리를 인식하고 수정하는 과학적 방법을 제시합니다.
수용전념치료(ACT)는 성격을 없애려 하기보다, 현재의 자신을 수용하면서도 더 가치 있는 행동을 선택하도록 돕습니다.
생활 속에서도 작은 훈련이 가능합니다.
불안할 때 심호흡 3회로 몸의 신호를 가라앉히기.
“나는 원래 이런 성격이야” 대신 “나는 지금 이 방식을 택하고 있어”라고 말 바꾸기.
매일 저녁 “오늘 성격 덕분에 내가 지켜낸 것” 한 줄 적기.
이런 작은 루틴이 쌓일 때, 성격은 고정된 벽이 아니라 움직이는 패턴임을 알게 됩니다.
부모와 자녀에게 주는 위로
부모라면 아이의 성격 때문에 불안할 때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이의 소심함을 “결함”으로 보지 말고, “이 아이가 무엇을 지키려는 걸까?”라고 묻는 순간 시선이 달라집니다.
소심함은 미성숙이 아니라, 아직 다른 전략을 배우지 못했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불안은 결함이 아니라, 세상을 대비하려는 아이 나름의 방식일 수 있습니다.
부모가 성격을 고치려 하기보다 이해하려 할 때, 아이는 스스로 성격을 다시 선택할 힘을 얻게 됩니다.
성격은 고정된 운명이 아니라, 관계와 선택 속에서 빚어진 삶의 전략입니다.
그 전략을 다시 설계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희망을 줍니다.
“나는 원래 소심해.”
“저 아이는 성격이 그렇잖아.”
이 말 대신,
“우리는 다시 선택할 수 있다.”
이 한 문장이 부모와 자녀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입니다.
이 글이 부모와 아이의 삶을 바라보는 또 다른 시선이 되어, 가정과 학교,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새로운 대화가 시작되기를 바랍니다.
Parenting insights by Prof. Seong-Gon K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