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onolab Sep 15. 2020

#113 마켓컬리 인사이트  

김난도 저 






고객/공급사/운영 프로세스/라스트핏/조직문화. 이 다섯 가지가 비대면 유통사를 분석하는 5대 축이며, 이 책을 구성하는 주된 얼개다. 아주 간략하게 앞으로 살펴볼 내용을 요약해본다. 


"고객이 '기다린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상품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은 언제일까?"


하지만 마켓컬리는 유통업을 '서비스업'으로 정의하고 출발했다. 많은 상품이 아니라 좋은 상품을, 무조건 싼 가격이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합리적인 가격으로, 모든 사람이 아니라 확실한 타깃에게 최적화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마켓컬리가 정의한 유통업이었다. 


그들이 집중한 고객은 '좋은 품질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사람들'이다. 


마켓컬리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VOC와 고객 리뷰가 운영 전반의 시스템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백지상태에서 시작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객 가치에 무서울 정도로 집착'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다. 


패키지를 전부 바꿔야 하고 손도 훨씬 더 많이 간다. 하지만 '고객이 원한다'는 단순하지만 원초적인 이유 하나로 마켓컬리는 그 모든 고통을 감수했다. 


김슬아 대표와의 대담에서 "본인이 마켓컬리에서 수행하는 업무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김 대표는 예상 밖의 대답을 했다.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과 같은 답변을 기대했는데 그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VOC를 읽는 사람입니다."


공을 많이 들인 제품이 큰 반응을 얻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고, 가벼운 마음으로 론칭했는데 반응이 뜨거운 경우도 있는 것이다. 고객의 반응을 예상한다는 건 그래서 늘 어려운 일이다.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방법은 한 가지다. 이렇게도 해봤다가 저렇게도 해봤다가 다양한 시도들을 계속해보는 것, 즉 검증되어야만 시도하는 게 아니라 일단 부딪쳐보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가설 검증 역량이 현대 경영의 핵심이다. 


장기적 탐욕에 관한 자세한 개념은 뒤에 나올 김슬아 대표와의 대담에서 설명하겠지만, 간단히 말해 '당장은 단기적으로 손해가 나더라도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해가야 한다'는 마켓컬리의 철학을 의미한다. 


당시 제게는 '먹고사는 문제'가 굉장히 큰 화두였고 아무도 이것을 해결해주지 않는다는 일종의 갈증이 있었습니다. 먹지 않고 사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모두 먹는 것만큼은 좋은 걸 먹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깐깐한 주부의 입장에서 볼 때 제대로 된 건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 산업에도 분명 혁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이테크 산업에서 일하는 방식으로 식품을 다뤄본다면 내 삶부터 바뀌는 기쁨을 누릴 수 있겠다' 하는 동기도 작용했던 것 같습니다. 


저는 마켓컬리를 취재하면서 '이게 스타트업이니까 가능했지'라는 생각을 여러 부분에서 했습니다. 물류를 한 번이라도 해본 사람은 말도 안 된다고 할 만한 인들을 많이 했다는 거예요. 그런데도 역설적이게도 경험이 없으니까 방법을 찾아보자고 했던 시도들이 그걸 가능하게 만들어버렸습니다. 대기업이 후발주자로 진출하면 어떻게 할 거냐는 우려도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많았을 것 같아요. 


"한국의 창업가들은 주어진 숙제를 참 잘한다. 그런데 점점 더 큰일을 도모하면서 사고 칠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기업은 다 망한다. 꿈이 커도 망하고, 작아도 망한다면 누군가의 인생을 바꾸고 망하는 편이 낫지 않은가?" 


분명 합당한 돈을 내고 유통 서비스를 이용하는데도 상품을 믿지 못하는 상황, 좋은 상품을 발굴해 소비자에게 잘 설명한다는 유통의 본질을 그 어떤 회사도 지키지 않는 상황, 바로 이런 것들이 소비자로서 제가 가진 문제의식이었습니다. 


저희 연구소에서도 기업으로부터 용역 의뢰를 받으면 고객의 니즈를 찾는 일부터 시작합니다. 라면회사라면 SNS에 라면 사진이 어떻게 올라오는지를 10만 장 정도 들여다보고, 그 회사의 악플만 걸러서 볼 때도 있어요. SNS 시대에는 현상을 진단하는 설문조사보다는 이런 날것의 의견이 고객의 니즈를 파악하는 데 더 유용한 것 같습니다. 


모든 합리적 경제 주체(Homo economicus)는 자기 이익(self-interest)을 추구한다는 것이 자본주의 경제학의 시발점이다. 


마켓컬리가 정의하는 유통은, 나아가 고객 가치의 핵심과 생산자와 상생할 방법은 곧 '좋은 상품' 그 자체였다. 중간자로서 유통은 좋은 상품을 매개로 할 때 존재의 의미가 있고, 좋은 상품이 없으면 좋은 플랫폼이 될 수 없다는 의미다. 


하지만 마켓컬리처럼 '좋은 상품'을 중심에 두고 논의를 전개하면 상황이 달라진다. '좋은 상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제공한다'는 사실이 공급사/소비자/플랫폼 세 주체 모두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포지티브섬 게임'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객은 가치 있는 상품을, 공급사는 합당한 납품가를, 플랫폼은 적당한 이윤을 취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유통의 중심축이 가격에서 좋은 상품으로 옮겨가는 순간 마법이 시작된다. 고객은 가치 있는 상품을 구매할 수 있어서 행복하고, 공급사는 자기 제품의 품질을 인정받을 수 있어서 행복하며, 유통 플랫폼은 적정한 이윤을 확보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그래서 '좋은 상품'은 파트1의 소비 가치와 이번 파트의 상생을 관통하고 있는 키워드다.


고객 지향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향해 매일 발생하는 크고 작은 문제를 해결하고 개선해가는 것. 오늘 하루만이라도 어제보다 더 성장하는 것, 마켓컬리의 혁신은 그런 것이었다. 요컨대 마켓컬리를 설명하는 혁신은 '커다란 한 방'이 아니라 '작은 개선들의 집합'이다. 


마켓컬리의 혁신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아주 기본적인 것을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가는 과정이었다. 


많은 사람이 빅데이터나 인공지능과 같은 기술을 만능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작 필요한 건 인사이트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판단하는 일이잖아요.  누군가의 가설과 창의력 등의 역량은 어떻게 키우려고 하고 있나요? ... 저희 시니어 리더들에게 제가 가장 강조하는 부분 중 하나도 'Connecting the dots'입니다. 여러 개의 점을 보면서 어디에서 깊이 들어갈지를 판단하는 능력이지요. 요즘 'T자형 인재'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평소에는 넓고 많은 것을 보다가 '아, 여기를 파고들어야겠다' 혹은 '여기에 지금 문제가 있네'하고 직관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말씀하신 것처럼 AI는 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한다. 


구조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그들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마켓컬리가 처음부터 그래 왔듯이 언제나 고객의 관점에서 빨고 유연하게 생각하며 오너십을 가지고 대응할 생각입니다. '실패하면 즉각 고친다' 앞으로도 이런 자세가 저희를 계속 먹여 살려주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엇이 쉬운가가 아니라 무엇이 필요한가에 집중했습니다."


온라인 여행사 그룹 익스피디아의 CEO 마크 오커스트롬은 이렇게 말한다. "점차 디지털화되는 세상에서 대규모 실험을 하지 않는 기업은 장기적으로, 그리고 어떤 산업에서는 단기적으로 죽음에 이르게 된다." 






매거진의 이전글 #112 제프리 무어의 캐즘 마케팅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