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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olab Oct 06. 2017

신 노예 사회가 온다면

#57 사회 신용 

#57 사회 신용, 왜 기본소득이 필요한가 

- 클리포드 H. 더글라스 지음 / 이승현 옮김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고 2h 



이 책은 더글러스가 쓴 [사회신용]의 1933년 개정판을 번역한 것이다. 애초의 번역은 국내에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일어난 직후인 2012년 초에 이루어졌다. 2008년 리만 부도 사태로 발발한 금융 위기를 전 세계 주요국들이 거의 무제한 통화 방출을 통해 진화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발권을 통한 기본소득(국민 배당) 지급을 주장했던 그의 사상이 새롭게 주목받았던 것이다. 따라서 기본소득이라는 개념을 처음 생각해내고 사회운동으로 이끌었던 그의 저술을 소개해서 이해를 좀 더 깊게 하자는 것이 애초 번역의 의도였다. 그런데 금융위기 이후 시간이 경과하면서 위기의식은 익숙함으로 변질되고, 기본소득 논의도 예상만큼의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면서 출판이 보류되었다. 4년여의 시간이 지나서 통화 방출 정책은 주요국들 간의 환율 전쟁으로 비화하는 조짐을 보였고, 위기는 해소된 것이 아니라 파국이 지연된 것일 뿐이라는 우려가 여전히 팽배하다. -p11


갈수록 생산노종자로서의 인간 노동의 중요성이 감소하고, 일자리가 없어서 소비자로서의 구매력을 갖추지도 못한 대다수의 인간군에 대해, 이 경제 시스템은 과연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가치를 어떻게 부여할 수 있을까? 노동하거나 소비하지 않으면서도 의미 있는 인간적 삶에 대한 그의 단상은 오늘날 취미나 직업으로 예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현상을 일정 부분 설명해준다. -p19


더글러스의 사유는 이렇듯 근원적이다. 그러나 케인스가 이론의 자격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던 바와 같이, 사태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근원적인 발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글은 논리적인 명쾌함으로 서술되기보다는 사례와 비유를 통해 에둘러 표현되기 일쑤다. 사고의 전환은 신선하고 문제 제기는 신랄하지만, 그에 뒤따르는 후속 논리는 충분치 않아 아쉬움을 남긴다. 특히 그의 계획을 현실적으로 실행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p21


오늘날 자본주의는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원리에 따라 작동한다. 따라서 자본주의는 인간의 이익이나 이해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본의 이익에 봉사하는 시스템이다. 자본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은 생산을 위한 '노동력'이거나 생산을 통한 이익을 실현시켜줄 '구매력'일 뿐이다. ...마르크스는 인류의 역사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자본가와 노동자의 계급투쟁의 역사라고 말했지만, 앞으로는 자본과 인간의 투쟁의 역사가 될지 모른다.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정부'를 주장하는 자유민주주의는 '자본에 의한, 자본을 위한, 자본의 경제체제' 위에서 이미 사실상 위협받고 있다. -p24




경제적 결정론은 사회적 취약 계층에 속한 사람들 중 98%의 행동에 대해 아주 안정적이고 정확한 설명을 해줄 수 있다. 사실상 그들은 환경에 의해 주어진 제약 조건들에 따라 행동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이 그들의 환경을 만들기보다 그들의 환경이 훨씬 강력하게 그들을 만든다. 그러나 이런 사실은 동시대의 훨씬 운이 좋은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세상에는 한 개인의 사적인 생각이 그들의 주변뿐 아니라 국가와 대륙 전체까지 강력하고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치는 상황도 존재한다. -p35


고전적이고 도덕적인 사회 이론과 밀접하게 연결된 것이 '상벌 이론'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 이 이론은 교육과 경험을 통해서 너무나 친숙해 있어서, 그것이 인위적인 생각이며 본래부터 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기가 어렵다. "선하라, 그러면 행복해질 것이다"라는 진술의 진실성은 선함과 행복함이라는 추상적 성질 사이의 고정된 관계에 의존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선함'이라는 단어가 임의로 부여한 어떤 행동과 '행복'이라고 부르는 반작용 간의 고정된 인과관계에 의존한다. 지나치게 말을 꼬치꼬치 따지는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세상의 산업과 법, 사회 시스템 전체가 이 상벌 이론에 따라 제재를 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그것에 대한 정확한 이해의 중요성을 부인할 수 없다. -p39


기본적인 사실은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세계의 소비 증가율보다 훨씬 더 큰 증가율로 재화 및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고, 우호적인 환경에서는 이런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과 배송이 하루에 7시간 일하는 가용 노동력의 25%를 넘지 않는 고용으로 달성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1마력의 에너지를 1시간 동안 생산 과정에 투입함으로써 적어도 사람 1명이 하는 10시간의 노동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 또한 가능하다. 생산 목적으로 쓸 수 있는 기계 에너지의 양은 사용 가능한 에너지의 극히 일부일 뿐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따라서 이런 점들로 미루어 다음과 같은 추론이 가능하다. 주어진 생산 프로그램에서 필요한 노동시간의 양은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거꾸로 동일한 노동시간에서는 생산량이 증가할 수 있으며, 또한 이 둘의 어떤 바람직한 조합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주어진 프로그램에서 노동시간당 증가된 생산량이 고용을 감소시켰다. 그리고 사실상 지난 수십 년간 우리는 실업 문제로부터 자유로웠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또 지난 50년 간 어떤 산업국가에서도 자체적으로 생산한 것을 가용한 노임과 봉급, 배당만으로 모두 구매할 수 있었던 적이 없었고, 결과적으로 모든 산업국가들은 그들의 제품을 수출할 시장을 찾아야만 했다. -p45


상벌 이론은 구약의 모세에서 기원하고, 금융과 법률도 그 주된 영감은 동일한 원천에서 오는 것이며, 견제 없는 집산주의의 논리적 귀결들을 보여주는 전쟁 전의 독일이나 전쟁 후의 러시아 같은 나라들은 유대인 지도자들의 직접적인 영향에 따랐다. 유대인들은 다른 어느 곳보다 인종주의적인 관점을 보인다. 또 삶의 행보에 있어서 그들의 성공은 주로 그들 자신의 이상에 부합되는, 환경에 대한 그들의 적응력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사회주의, 페이비언주의, 또는 '거대 사업' 등 어떤 이름으로 위장하고 있든지 간에 그 모든 형태의 집산주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집산주의 이론 자체를 고발하면서, 그 주범으로 유대인을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강조하건대, 어떤 경우에도 심리의 대상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으로서의 유대인이고, 그에 대해 필요한 처방이라면 이는 그들의 집단행동을 분쇄하는 일일 것이다. -p54


유용한 접근 방식은, 그렇게 할 자유가 있을 때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정도까지 원하며, 그 숫자가 생산 프로그램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를 고려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체의 실제적인 자유가 늘어날 가능성은 (현상 유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주장하는 것처럼) 개인들 간에 권리를 두고 계속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 의존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는 자동적이지 않으며, 또 소위 자연의 법칙이라 부르는 것에 의하지 않는 규제를 제거하려는 지속적 시도에 의존한다. 이런 관점에서 지금 우리가 규젣ㄹ의 입법을 고려하는 것에 대해 결코 낙관적으로 생각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p62


그것은 논리적이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로 발생하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공급을 초과하는 수요를 만들어 '가치'를 창출하는 과정을 광고라 부르고, 공급이 수요보다 항상 적게 공급을 제한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태업이라고 부른다. 광고는 모든 광고 게시판에 전시된다. 반면 태업은 광고의 상업적 보완재로서 우리 현존 문명에 가장 널리 퍼진 특징 중 하나이면서도, 일반 대중들은 실제 태업이 일어나는 정도를 눈치채지 못하고 지나친다. 태업의 조악한 경우들은 주로 취약한 군중들 사이에서 드러남에도 불구하고, 태업은 어떤 즉정 사업이나 직업 계층에 국한되지 않는다. 만약 시장에서 가용한 노동력을 전부 없앨 수 있다면 노동 가치가 곧바로 상승할 것이라는 가설이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파업이 근거하는 유일한 이론이라 말할 수 있다. 더 고상한 태업이라고 해도 이보다 다소 복잡할 뿐 원론적으로 동일하다. 거대 사업의 근대적 목적은 최소의 재화로 최대의 화폐를 획득하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최소의 총비용으로 최대의 총매출을 얻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생산과 보관 과정에서 배분되는 '비용' 또는 구매력을 감소시키고, 필수재의 가격 담합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뛰어난 사업 수완으로 평가된다. -p68


"화폐는 가치의 표준 또는 척도다. 표준이나 척도로서의 첫째 요건은 그것이 불변할 것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화폐제도는 만족을 주지 않으며 화폐는 불변의 것이 아니다. 따라서 문제는 화폐단위를 표준화하는 것이다." ... 이 문제에 관심을 갖는 물리학자들에게 떠올랐던 첫 번째 생각은 금융에 '센티미터-그램-초'라는 단위 시스템을 적용하는 방안을 찾는 일과 비슷한 것이었다. 그러나 화폐문제와 관련해서 현재 전달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생각은 그것이 가치 측정의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화폐제도의 적절한 기능은 재화 및 용역의 생산과 분배를 지휘하는 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것은 '보상' 체계가 아니라 '명령' 체계이며, 또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정책에 부속하는 행정 메커니즘이며, 세계의 화폐 관리가 그토록 엄청나게 중요한 것은 그것이 다른 어떤 행정 메커니즘보다 상위에 있기 때문이다. -p81


그러나 어떤 사물이 한때 건전하고 바람직했다는 이유로, 그것이 반드시 영원히 이로울 것이라고 받아들여야 할 필요는 결코 없다. 주로 산업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그리고 그에 못지않게 교육의 보편적인 확산의 결과로 인해, 일반 대중에 대한 기만과 실용적 필요성이나 편의주의에 기초하고 있는 세계 조직 시스템은 과거에는 아마 용서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이제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실제로 사악한 것이 되었다. -p85


따라서 오늘날 대안은 변화와 무변화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쪽으로의 변화와 더 나쁜 쪽으로의 변화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실질적인 가치가 있다. 만일 상벌의 제재와 함께 현재 시스템이 만족스럽게 또는 견딜만하게라도 작동하고 있다면, 비록 그 제안에 적용된 논리가 명백하게 이로움을 준다는 걸 증명한다 할지라도, 더 나은 대안에 대한 논의만큼 아카데믹한 논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는 전적으로 그 반대이다.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무차별적이거나, 사회주의거나, 공산주의거나, 아니면 제국주의거나 어떤 종류이건 간에 오늘날 적용될 수 있는 모든 방법과 제재 수단을 가지고 어떤 종류의 제안이라도 촉구되지 않는다면, 현재의 사회 및 산업 시스템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 거의 확실하다.  -p89


여기서 알 수 있는 첫 번째 요점은 어느 한 시점의 진실이 일주일 후에는 진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이다. 만약 어느 날 세상에 그 재화를 생산하는 데 소요된 가격으로 모든 재화를 구입할 충분한 화폐가 존재하고, 그 화폐 중 일부가 새로운 재화를 만들기 위한 비용을 지불하는 데 할당된다면, 그렇게 할당된 ㅘ폐는 새로운 재화의 원가를 형성하게 된다. 그리고 그 즉시 재화의 최소한의 총가격인 총원가와, 가정에 의해 이전과 정확히 동일한 금액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화폐 금액 사이에 차이가 발생한다. 이는 아무도 추가적인 액수의 화폐를 '저축'하지 않더라도 진실이다. -p99


은행 대출을 그 대출의 결과로 생산된 제품들을 파괴하지 않은 채로 상환하면, 상환액과 같은 가치를 갖는 가격만큼의 물건을 유통시키지 못하게 된다. 그로 인해 판매용 재화와 그것을 구입할 화폐 간의 괴리를 더 심화시키지 않고서는 그 가격에 해당하는 물건을 팔 수도 없고, 기계류 등의 경우에는 그런 기계를 사용해서 만들어지는 소비재에 대해 대금을 청구할 수도 없게 된다. 이는 매우 명백하다. 그런데 은행 대출의 상환은 그 재화의 최종 생산자가 바로 선행하는 제조 단계에서 발생한 이익과 비용을 상환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연쇄' 과정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 여기서 더 나아가 앞에서의 논의를 살펴보면, 저축은 신용의 창출에 그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은행 신용에 의한 조달과 소위 자본이나 저축에 의한 조달 간의 차이는 단지 정도의 차이일 뿐 같은 종류라고 할 수 있다. -p103


소비자는 프로세스의 개선에 따른 혜택을 가격 인하라는 형태로 누릴 수 없을 뿐 아니라, 고정된 생산 프로세스 아래에서 안정된 가격을 기대할 수도 없고, 생산된 재화의 가격에 포함되지 않은 구매력의 공급이 없는 생산 프로그램에 대한 어떠한 통제권도 가질 수 없다. 만약 생산자나 유통업자가 손실을 보고 판매한다면, 이 손실은 소비자에게 그만한 구매력을 공급해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생산자나 유통업자가 손실이 나는 가격에 팔지 않겠다고 한다면, 이런 구매력의 공급은 다른 원천에서 구해야만 한다. 구매력을 도출할 수 있는 유일한 원천이 있는데 그것은 은행이 원래 받았던 화폐보다 더 많은 금액을 빌려줄 수 있도록 해주는 바로 그 원천과 동일하다. 그것이 일반 신용이다. -p111


만약 절약이 생산되는 재화에 대한 우리의 소비를 사실상 감소시키거나 적어도 안정시키면서, 노동시간과 직업적인 노동자의 수가 동일하게 남는다면, 실업이 정착될 뿐 아니라 해마다 이런 노동자들의 생산품 중 점점 더 많은 부분이 해외로 수출되거나 또는 어떻게든 더 많은 생산 조직들이 건설되어 문제가 기하급수적으로 복잡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상황하에서 모든 국가가 수출을 하려고 할 것이며, 오늘날 다른 행성으로 재화를 수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국가 간 분쟁이 일어나리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다. 게다가 '저축'의 구매력이 과도한 가격과 약탈적인 세금에 의해 끊임없이 좀도둑질당하는 것을 볼 때 '더 저축하라'는 주문은 가장 무지한 사람이라도 뻔히 알 수 있는 거짓말인 셈이다. -p129


이제 지적할 첫 번째는 이 복잡한 과정의 결과가, 단순히 지폐의 인쇄 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4천만 파운드에 대해 국민이 연 4~5%를 지불한다는 중요한 사실만 제외하면, 정부가 직접 4천만 파운드를 지폐로 공급한 것과 정확히 동일하다는 것이다. 4천만 파운드가 생겼지만 가격에 미치는 효과는 동일하고, 납품업자는 화폐를 무료로 사용하지 않고 그들의 당자 차월에 대해서 6~7%를 지급한다. 그러나 만약 4천만 파운드가 세금 또는 자본과세를 통해 상환되면, 국민은 납품업자가 6~7%를 지불하는 것과 함께 1년에 5%와 그 양쪽의 이유를 더해서 지불할 뿐 아니라, 노임과 봉급과 배당으로 받았던 돈에서 4천만 파운드 전액을 지불해야 한다. 내가 알고 있는 한 아무도 그 지폐를 세금으로 상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4천만 파운드가 상환되면, 부채 원금과 상환액은 서로 상쇄되고, 은행의 손익 계정에 부과된 이자 금액만 올라간다. 그러나 우리가 본 바와 같이, 은행 대출의 상환은 동일한 금액의 가격에 해당하는 물건의 유통을 정지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이는 단지 새로운 대출이 새로운 이자 부담과 함께 창출되어야 함을 의미할 뿐이다. -p141


이제 한눈에 이것이, 소수가 부자여서 다수가 가난하다는 노동자-사회주의자의 단순한 생각을 그럴듯하게 해주는 듯이 보인다. 이는 시간적 선후 관계를 인과관계로 오해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 과정을 통해 소수만이 부자가 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부자가 되고자 하는 희망을 갖는다. 그래야 그들의 협력이 가능하게 된다. 그러나 부가 만약 전체 주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된다면, 가시적인 형태로의 그들의 전체 부는 아주 적은 금액일 뿐이다. 진행되는 주된 경향은 신용에 대한 통제를 거대 조직에, 주지하다시피 잠재적인 형태로 대형 은행이나 보험회사의 수중으로 집중하는 것이다. -p149



"유럽에서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여기 미국에서 다가오는 변화의 징후를 지나치기 쉽다. 그러나 나는 변화가 오리라 확신한다. 기아를 모면한 것 외에는 아무것도 이룬 게 없이 그저 노동만 하고 사는 목적 없는 삶, 그리고 고달프고 쳇바퀴 같은 불행한 운명이 예정되어 있는 아이들이 태어날 거라는 깨달음은 수백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 오클랜드 게데스경, p160



금융은 생산 프로그램을 감독하고, 또 언제나 감독해왔다. 금융은 신용의 기술이며, 신용의 원천은 (비록 신용 전체의 기초는 아니라 해도) 소비자여야 한다. '노동자 위원회', 소비에트, 기타 등등은 그 업무가 정통 은행의 업무보다 하위에 있는 조악한 신용 분배 조직들이다. 유효수요를 제외하고는 산업 시스템으로부터 온갖 요소를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래도 (나무뿌리를 캐고 열매를 따러 나무에 오르기까지) 그 유형에 있어서 아무리 원시적이라 해도 어떤 종류의 산업 시스템인가는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욕구와 필요나 소비하는 능력에 대한 믿음을 빼앗아버리면, 한 톨의 씨앗도 심지 않고 어떤 도구도 손에 들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의 문명이 회복할 수 없는 파국에 직면하고 있는 것은 기술적 능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유효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p171


오늘날 현존하는 상황에서 눈에 띄는 사실은 세계가 불안정하다는 것이다. 삶에 대한 전망을 단지 자기가 사는 마을의 범위까지만 확장해봐도, 누구나 변화가 오고 있을 뿐 아니라 진행 중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오늘날 세계의 모든 국가들에서 활약 중인 세력들에 대한 약간의 포괄적인 통찰만으로도, 현재 진행 중인 변화는 우리가 어떤 한계를 설정할 수 없는 극한까지 진행될 것임을 깨달을 수 있다. 말하자면 현재 금융 및 사회 시스템의 붕괴는 확실하다. 아무것도 그것을 막지 못할 것이다. "다시 1914년으로"는 순진한 꿈일 따름이다. -p182


다시 말하건대 '성공한' 사람들의 호응을 얻기는 거의 어려울 것이다. 대체로 가장 유망한 종류의 마음은 금융적 갈망으로부터 항상 자유로웠지만, 동시에 근대 세계의 기술과도 익숙한 마음이다. 혹은 다른 한편으로 육체노동이든 지식 노동이든 간에, 진정으로 과학적 기질을 지닌 사람들이 실질적으로 포함되어 있는 부류에 속하면서도 예술적인 진취성을 지닌 노동자다. 불행히도 이 후자의 계급은 효과적인 압력을 행사하기에 사회의 모든 부류들 중에서 기질상으로나 조직상으로 가장 준비가 덜 되어 있다. -p186



 




책을 읽으며 어떤 풍경이 떠올랐다. 동네에 중고교 보습학원이 많은데, 매일 밤 10~11시만 되면 도로 한 차선을 데리러 온 학부모 차량이 채운다. 그 정도 정성이라면 교육비로 적게는 40~50만 원, 크게는 100~200만 원 은 매월 들어갈 것이고, 그 외에도 다수의 과외나 대외활동 등을 시키고 있을 것이다. 개중에는 똘똘한 아이들도 있겠지만, 대다수는 간신히 중간선을 맞추는 정도일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들은 '나보다는 나은 삶을 살기 바라는 마음'으로 그 뒷바라지를 하고 있을 것이다. 부모가 물려줄 재산이 많은 금수저가 아니라면, 맞벌이거나 외벌이거나 그저 버티는 직장생활을 하고 있을 것이다. 또 그러한 부모라면 아마도, 학창시절을 성실히 보냈고 그래서 대한민국 상위 몇%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성실한 노동자일 확률이 높다. 많은 시간, 똘망똘망 커가는 자녀를 보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다가도 일상에서 문득, '인생이란 무엇일까'라거나 '잘 사는 삶'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이따금 그 풍경이, '모두가 고단한 삶'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것이 '잘 사는 삶, 성공한 삶'이라고 배워오기는 했지만, 정말 그러할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해보면, 이제는 무엇을 만들어내는 '노동'이 너무도 쉽게 이루어지는 시대다. 곧, 사람이 아니어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사람의 본질은 '노동'이라기보다는 '소비'에 가까워 보인다. 국가경쟁력이 화폐가치를 기반으로 한다는 거창한 얘기를 하지 않더라도, 국가의 성장을 위해 '어린이'는 나라에서 키워줘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더 많은 소비자를  양산하기 위해서 말이다. 기본적인 생활이 보장된다면, 그렇게 아등바등 교육에 힘쓰며 공부에 재능 없는 아이를 고통스럽게 할 필요도, 자식이 다 시어 빠진 레몬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오렌지라고 믿으며 투자할 필요도 없지 않을까. (책에서 얘기하고자 했던 것이 이런 건 아닌 것 같지만....) 물론, 그 선순환을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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