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가끔 그런 상상을 해본다.
어느 날 내가 정말 할머니가 되었을 때, 누군가가 나를 보고 "참 소녀 같다"라고 말해주면 어떨까.
주름진 손등이며 하얗게 센 머리카락도 분명히 있을 텐데, 그런 나를 보고도 '소녀'라는 단어를 떠올려주는 사람이 있다면—그건 꽤 멋진 인생이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가슴속에 작은 소녀를 하나 품고 산다.
나이를 먹으면서 세상의 무게를 배웠고, 사람 사이의 간격도 배웠지만, 그 작은 소녀는 늘 내 안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다.
걔는 어리광을 부릴 줄 알고, 이유 없는 설렘에 가슴이 뛰며, 반짝이는 것을 보면 꼭 가까이 가서 들여다보고 만져보려 한다.
어릴 적 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전부 ‘무게를 가지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중요한 사람들과 중요한 일을 하며, 중요한 시간을 보내는 것.
하지만 이제는 조금 생각이 바뀌었다.
정말 멋진 어른은 오히려 "가벼운 걸 잃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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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거울을 보는데 조금 놀랐다.
내 눈가엔 아주 얇은 주름이 자리잡기 시작했고, 어쩐지 예전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하지만 그 날 따라, 그런 얼굴조차 조금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 주름은 웃느라 생긴 것이었고, 피곤함은 내가 좋아하는 일들 사이를 오가다 생긴 거였으니까.
그렇게 생각하니, 늙어가는 게 두렵기보단, 살아온 흔적이 다정하게 느껴졌다.
내가 여전히 소녀처럼 살고 있다고 느낄 때는,
새 신발을 신었을 때,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내 마음을 표현할 때다.
그런 순간에는 나도 모르게 손끝이 설레고, 말투가 부드러워진다.
이런 순간들이 쌓이면,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나는 ‘마음속 나이’로는 열일곱 살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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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처럼 살겠다는 건 나이와 상관없는 태도다.
감탄을 아끼지 않고, 사랑을 숨기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미루지 않는 것.
실패에 주눅 들기보단, 다음번을 상상하는 것.
지금 이 삶이 "완성"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아직 한참 더 설 수 있다고 믿는 것.
물론, 사는 일은 쉽지 않다.
뉴스 속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하고, 사람들 사이엔 점점 말보다 침묵이 익숙해진다.
때론 웃는 것도, 울고 싶다는 말도 부끄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래도 그럴수록 나는 다짐한다.
내 안의 소녀를 꺼내어, 손을 잡고 하루를 산책하듯 살아보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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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소녀처럼 살아야지.
그래야 삶이 질리지 않고, 나 자신에게 지치지 않을 테니까.
눈빛이 맑은 사람으로 남고 싶다.
내가 나를 좋아하면서, 어쩌다 누군가의 마음에도 작은 반짝임으로 남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오늘도 커피잔을 들고 창밖을 보며 중얼거린다.
“그래, 괜찮아. 아직 나한테는 예쁜 마음이 남아 있잖아.”
그리고 그 마음 하나면, 세상이 얼마나 삐딱해도 나는 충분히 다시 ‘소녀’처럼 걸어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