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햇살이 커튼 사이로 스며들 때, 나는 오늘도 무사히 하루를 시작할 수 있음에 감사했다.
어제는 잠들기 전까지 ‘너무 지쳤다’는 말만 되뇌었다.
하지만 다시 하루를 시작할 수 있는 이 평범한 기회가,
내게는 기적 같은 선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아이들이 잠든 사이, 거실 바닥에 무릎을 꿇고
소리 내어 말씀을 읽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이 말씀이 나의 하루를 붙드는 줄기 같은 말씀이 되었다.
완벽하지 못한 하루였어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이 시간이
하나님의 시선 안에서는 얼마나 귀할지 생각하며
부드럽게, 하지만 단단히 마음을 붙잡는다.
나는 **HSP(Highly Sensitive Person)**다.
사소한 말에도 상처받고, 집 안의 소음에도 금세 피곤해진다.
사람들과 마주하는 것이 두렵고, 아이들의 짜증 소리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을 때가 많다.
정말 사소한 자극에도 금방 에너지가 고갈되고,
어떨 땐 아무 일도 안 했는데도 하루가 끝나면 녹초가 되어버린다.
과거의 나는 이런 나 자신이 싫었다.
왜 이렇게 유리처럼 약할까, 왜 다른 사람들처럼 아무렇지 않게 살아가지 못할까.
하지만 요즘 나는 조금씩 생각을 바꾸고 있다.
이 연약함은 나의 약점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되는 **通路(통로)**일 수 있다는 걸,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주님은 나에게 강함을 강요하지 않으신다.
오히려 너그럽게 말씀하신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이 말씀이 내게 얼마나 큰 위로와 자유가 되었는지 모른다.
내가 잘하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나를 들고 주님께 나아올 때
그분이 나를 대신 강하게 붙드신다는 믿음.
이 믿음 하나로 오늘도 하루를 견딘다.
오늘 아침에도, 아이들이 엉엉 울며 하루를 시작했다.
하루의 첫 소리가 ‘엄마아아!’라며 터지는 울음일 때면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이 나올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은 마음을 다잡았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를 키우고 있다.
이 아이들을 품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일이 될 수 있다.’
세탁기를 돌리며 기도했다.
“하나님, 이 작은 수고도 주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되게 해주세요.”
설거지를 하며 찬양을 틀었다.
“오늘도 내 입술에 감사가 머물게 해주세요.”
아이에게 간식을 챙기며 말했다.
“이 일상을 통해 사랑을 배우게 해주세요.”
누군가에게는 아주 하찮게 보일 수 있는 하루의 풍경이지만
이 모든 것이 쌓여 내 믿음이 자라고,
내 안에 말씀이 살아 움직이고 있다는 걸 나는 안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조금 더 잘하려는 노력’이 아니라,
‘지금 여기를 믿음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내 성격도, 환경도, 조건도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지 않지만
그 안에서 ‘하나님이 주신 하루’라는 시선을 잃지 않으려 한다.
작은 거라도 제대로,
작은 일도 기쁘게 감당하는 것이
지금 내 믿음의 표현이고,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나의 사랑 고백이라고 믿는다.
나는 HSP다.
조금 더 힘들고, 조금 더 예민한 존재일지 몰라도
그만큼 더 깊이 느끼고, 더 섬세하게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민감함이
내 아이들과 이웃을 향한 따뜻한 시선으로,
나를 찾아온 이들을 위한 위로의 글로 쓰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연약하지만,
말씀으로 중심을 잡고, 주님께 붙들려 하루를 살아낸다.
언젠가 이 모든 작은 헌신들이 모여
주님 앞에 향기로운 제사로 드려지기를 바라며.
하나님, 감사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기쁨으로 충성하며 살겠습니다.
빛과 소금의 삶, 제 작은 하루 속에서도 이루어 주실 줄 믿습니다.
연약하지만 주님을 붙든 저를 통해 오늘도 역사해 주세요.
아이들의 눈을 통해, 제 안의 작은 믿음을 통해
주님의 사랑이 흘러가게 해 주세요.
오늘도 그 믿음으로, 이 조용한 하루를 살아냅니다.